밤마다 내 그림자가 들려주는 말
모두가 그렇듯, 나에게는 다양한 페르소나가 있다.
창업가, 작가, 강사, 강연가, 인터뷰어, 사진작가, 온라인 커뮤니티 리더...
와 같이 내가 판매하는 서비스 상세 페이지에 빼곡하게 기록하는 페르소나 이외에도 말이다.
난 우리 부모님의 딸이기도 하고, 내 동생에게는 언니이기도 하다.
세계 여권 파워 2위를 과시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프리 패스와도 같은 그 여권을 갖고 세계를 누비는 여행자다.
아, 이제는 단순 여행자가 아니구나.
그토록 바라던 '노트북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냈으니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정체성도 있다.
때로는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기도 하다. 특히 풀 메기 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농부...
오늘 공원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 그림자 사진을 찍어 보았다.
밤이 될 때면 우리 집 앞에 있는 흰 벽은 내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다른 자아를 보여주듯, 저 그림을 내게 보여준다.
가장 친근하면서도,
가장 낯선 나...
저 그림자가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많다.
'넌 진실로 살고 있니?'
'너에게 스스로 진실하게 대하며 살고 있니?'
'사회화된 욕망에 침식 당하여 너를 똑바로 보지 못하는 건 아니니?'
국가, 미디어, 학교, 가족, 친구, 동료, 수많은 SNS와 메시지들...
내 눈을 가리거나 내면의 에너지를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들은 내 일상의 곳곳에 침투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요소들 중에는 소중한 가치도 물론 있다.
그럼에도 때로는 내게 가장 가까운 존재가 역설적으로는 가장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생각한다.
먹고사니즘이 너무나도 중요한 이 세상에서 나를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페르소나는 사업가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게는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경제 전반이나 투자 공부를 하는 것보다도 훨씬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그림자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와일드(Wild)>.
주인공인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가 부모님의 이혼과 엄마의 사망 등 여러 아픔을 딛고 약 4,300km에 달하는 PCT(Pacific Crest Trail)를 걸어내는 이야기다.
(난 이 영화를 눈물 콧물을 아낌없이 줄줄 흘리며 보았다.
강력 추천.)
셰릴은 그 길을 지독하게 걸으며 아파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치열하게 자신을 돌아본다.
성찰한다.
그런 경험을 해 보면 한 사람의 삶은 이전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
세상이 주입하고 요구하는 상(狀)에서 반드시 벗어나고 싶다.
벗어나야 한다.
2020년도에 지역 도서관에서 니체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을 함께 읽었는데 1장의 마지막은 408절 '저승 여행'이었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에 작성한 후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니체는 살아 있는 자들을 그림자로 보았다.
창백하고 불안하며 탐욕스럽게 삶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여겼다.'
살아 있어도 산 사람이라고, 죽었어도 죽은 사람이라고 보지 않았던 니체...
저 그림자는 내게 끊임없이 묻고 있다.
너는 너와 네 생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냐고.
그저 그림자처럼 맴맴 떠돌다가 이 세상을 뜨는 건 아니냐고.
거짓 자아로 점철된 삶을 살다가 그냥 이 생을 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늘 스스로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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