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팸플릿을 차곡차곡 수집해 온 나와 그들과의 이별
오늘 여러 가지를 비웠다. 아주 오랫동안 함께한 친구들도 모두 떠나보냈다. 그중에는 여행 당시 이용한 기차, 항공 티켓과 공연 팸플릿이 있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차곡차곡 수집해온 아이들이었다.
나는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감수성과 호기심 부자이기에 내게 공연과 여행은 채식주의자의 비빔밥과 같은 존재였다.
대학 입시를 마치고 수백 편의 공연을 보았다. 셀린 디온과 같은 굵직한 세계적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 가을날의 락 콘서트, 해금 연주가 신날새의 연주를 비롯한 국악 공연, 노트르담 드 파리와 같은 라이선스 뮤지컬, 오디션과 같은 창작 뮤지컬,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과 같은 대학로 연극들...
공연장에서 가져온 팸플릿도 상당했다. 내가 관람한 공연을 떠올리며 추억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것을 하나하나씩 수집했다.
나는 여행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배스킨라빈스의 *그랜드 사이즈 컵에 아이스크림을 한가득 담아내듯 여행 경험을 아주 풍부하게 쌓아왔다. 그랬기에 소유한 여행 티켓도 상당한데 그중에서도 특별한 애착을 가져온 아이들이 있었다.
(*그랜드 사이즈: 가장 작은 싱글 레귤러 사이즈의 20배에 달하는 '역대급 크기'이다.)
나는 태국 소재의 *마히돈 국제대학(Mahidol University International College)에서 공부를 한 경험이 있다. 교환학생으로서 한 학기를 수학했다. 교내에서 매해 Mahidol University International Night라는 행사가 열렸다.
(*영어로는 Mahidol이라 표기되어 마히'돌'로 읽어야 할 것 같지만, 태국어 식 표기에 따라 마히'돈'으로 발음한다.)
이 정보를 미리 얻고는 제대로 참여를 하기 위해 한복까지 미리 한국에서 챙겨갔다. 오로지 그날만을 위해서 말이다. 한복 빨(?)이 커서 그곳에서 나는 Miss Mahidol 선발대회에서 2등까지 올라간 기염을 토했다.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보내고는 휴학 신청을 했다. 관광 대국인 태국의 호텔에서 꼭 일해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사무이라는 섬에 위치한 '콘래드 코사무이'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당시 대륙과 섬을 오갈 일이 잦았다.
코사무이와 수랏타니(코사무이와 가까운 대륙 지역) 구간 배 티켓들뿐 아니라, 나의 마음을 홀딱 빼앗아간 미얀마로의 첫 여행을 도와준 에어아시아 양곤행 티켓도 내 방에서 늘 나와 함께했다. 작년에 네팔만 세 번 갔을 때 여러 번 이용한 대한항공 티켓 등 '모든' 여행 티켓을 소지했다. 마치 공항에서 곧 탑승을 앞두고 있는 사람처럼...
한복을 입고 참가한 행사 날의 기억이 너무나도 소중해 달고 다니던 참가번호표까지 심지어 간직했다. 오늘 그들에게 '너희들이 없다고 해서 내 추억까지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라고 말을 건넸다. 이후 재활용지를 담는 박스로 인도했다.
소지한 물건이 원체 많아서 버리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고 몸도 지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예전보다 빈틈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한다.
빈 구석이 드러나는 만큼 내 정신에는 숨구멍이 늘어난다.
버린 양이 엄청나기에 차마 개수를 셀 엄두는 안 난다. 이렇게 버리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소유한 물건이 몇 개인지 정확히 알 날이 올 수도 있으리라 기대해보며...
자, 다음에 버릴 것은 무엇인가?
* 영어실력과 내면 성장을 모두 얻어갈 수 있는 알짜배기 모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