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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자료들을 버렸다. 100점 받은 시험지도!!

공수래공수거.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간다.

# 고등학생 때 시험지도 차마 못 버린 이유



오늘 신문과 공부 자료 위주로 버렸다. 책상 서랍 안에 넣어 둔 신문들, 파일 안에 스크랩 해 둔 신문들,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 사용한 공부 자료들을 말이다. 고등학생 때 나는 수포자(수학포기자)였으나 국어, 영어, 사회 과목에는 강한 편이었다. 



영어 성적은 좋았지만 사실 그 외에는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 아니었다. 고2 때부터 국어와 사회 계열 과목 성적이 급상승했다. 내가 마음가짐을 확 바꾸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나에게 더 이상은 부끄럽기 싫었으니까. 핸드폰을 정지하고 방 안에 있는 폭신한 구름 같던 라텍스 침대를 뺐다. 그만큼 의지가 결연했다. 



수업 시간에 초 집중하며 선생님의 농담까지 받아 적고, 교과서를 읽고 또 읽었다. EBS를 끼고 살았다.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고 하셔서 두려운 마음을 안고 갔더니 "눈빛이 달라졌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똘공, 똘공!!+_+ (당시 흔히 사용하던 단어였다. '똘똘하게 공부한다.'의 준말)



한 번은 정치 과목이 굉장히 어렵게 출제된 적이 있었다. 전교에 만점을 받은 학생이 다섯 명이 채 안 되었고, 우리 반에서는 나 혼자였다. *정치 과목 담당 선생님은 그런 나를 두고 "이건 대단한 겁니다."라고 친구들 앞에서 말씀해주셨다. 박수를 두 번이나 받았다. 


(*여담이지만, 작년에 사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어느 식당에서 우연히 선생님과 마주쳤다. 사촌 네 동네였기에 우리 집 근처가 아니었는데도..)



그때의 기억은 마약과도 같아서 시험지를 고이고이 보관해왔다. 뿐만 아니라 당시 공부할 때 썼던 여러 자료물을 다 모아두었다. 청소년기의 학업 열정에 기름 가득 부은 흔적이 거기에 다 묻어있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작별했다. 사진을 찍고는 말했다. '이제 안녕. 아무리 기분 좋았던 과거라도 난 거기서 자유로워질 거란다.'라고.


신문도, 토플책도, 사회과 부도도, 시험지도, 이집트 문명도 모두 모두 잘 가시게~~

# 답답한 딸이어도 버리기는 계속된다. "공수래공수거"!!



오늘은 재활용 품목 버리는 날이라 내 다 버리고 왔다. 엄마랑 같이 나갔는데 버리는 나의 행동을 보고는 답답하다고 했다. 모처럼 맘먹고 정리해보려 하는 건데 속상하고 화도 났다. 그러면서 엄마가 또 이해가 되었다. 나는 왜 이럴까 싶었다. 정리도 못하고, 미루고, 남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냥 하는 걸 못 하는 나... 



그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내가 잘하는 점을 계속 상기하려고 했다. 자괴감의 늪에 빠지면 너무나도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아니까. 비록 단점도, 빈틈도 적지 않은 나지만 장점도 분명 있으니까. 센스를 장착하고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다른 재주가 있는 나를 아껴주고 싶다.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나는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보려고 계속 시도하는 중이다.



비우면서 얻는 유쾌한 감정이 크다. 하지만, 싫은 이전의 내 모습을 계속 마주쳐야 한다는 사실은 참 어렵다. 정리 안 한 대가를 지금 다 치르는 셈이다. 물론 응당 치러야 하는 게 맞다. 그동안 버리기 작업을 무지하게 하고 싶었으면서도 물건으로 만들어진 정글이 무시무시했다. 맞서 싸우기 싫었기에 공존을 택했던 내가 미워질 수밖에 없다. 



무서워서 그냥 동거했지..



그래도 버리다 보니 가속도가 붙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붙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이 어렵지, 버리다 보니 꽤 자연스러워졌다. 아직 버릴 건 한참 남았지만 말이다. 만우절, 오늘 특히 나를 부정하고 싶어 졌다. 그동안 이렇게 살아온 나라는 존재를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도 '그런 내가 있었나? 그 과거가 사실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질감이 드는 나를 만날 수 있기를... 그런 마음으로 나는 내일도 비워낼 테다!! 



감각 뛰어난 정리 달인까지는 이생에 못 되어도, '공수래공수거'를 외치며 계속 버리기는 할 수 있으리라. 내년 만우절에는 프로 미니멀리스트의 길에 서서 웃는 나를 고대하며!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간다.

* 영어실력과 내면 성장을 모두 얻어갈 수 있는 알짜배기 모임 :)

<하루 15분 영어 필사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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