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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기생충'과 김연아의 '죽음의 무도'의 공통점

대한민국 국력의 위대함

어제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4관왕에 올랐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KBS1 FM의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는 '죽음의 무도'가 흘러나왔다. 바로 피겨 스케이팅 계의 전설, 김연아 선수가 2009년 월드 챔피언십 대회에서 사용한 배경음악이었다. 


아카데미 수상과 월드 챔피언십에서의 금메달. 그것은 과연 봉준호와 김연아만의 힘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두 사람은 어마어마한 인물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가진 힘, 즉 국력이 탄탄하게 뒷받침해주어 탄생할 수 있었던 '왕자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 자리의 뒤에는 혹독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시절을 이겨내고, 결국 꽃을 피워낸 우리의 처절한 역사가 있었던 덕분이라고 믿는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는 저서 <가보지 못한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당시 우리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작가는 6.25 전쟁 당시 추운 겨울날, 총상을 입어 다리를 다친 친오빠를 수레에 끌고 가는 상황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이 너무나 힘겹게 느껴졌다고 한다. 수레가 오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땅에 내려앉자 '차라리 잘 됐다, 나 혼자만이라도 이 재수 더럽게 없는 가족으로부터 벗어나자.'라는 생각을 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피난을 가야 한다는 사실도 사무치게 서러운데, 추운 때에 당신보다 더 무거웠을 오빠까지 수레에 싣고 가야 했다니⋯. 그 대목을 읽으며 내 가슴도 무척이나 아려왔다. 오죽했으면 소중한 가족들도 그냥 다 버리고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가지셨을까. 그 상황에 처했더라면 나 역시 그러한 생각에서 자유롭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도 그때 생리만 멎은 게 아니라 성장도 멎어버린 것 같다. 반세기도 넘어 전의 추위, 굶주림, 불안, 분노 등 원초적 감각의 기억은 그로 인하여 감기도 걸릴 정도로 현실적인 데 비해 현재 누리고 있는 소비사회의 온갖 풍요하고 현란한 현상들은 그저 꿈만 같다.

번화가의 환상적인 조명, 무수한 한강 다리를 장식한 아름다운 불빛,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로를 은하수처럼 흐르는 차들의 행렬을 바라볼 때는 더 그렇다. 그런 것들이 거기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가 혼이 빠져 보이는 환상만 같다.

심지어는 내가 소유한 넉넉한 물질이나 약간의 명성 그런 것까지 실제가 아닌 초라한 내가 잠시 현혹된 헛것이지 싶다. 어쩜 그렇게 혹독한 추위 무자비한 전쟁이 다 있었을까. 이념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박완서 作, <가보지 못한 길이 더 아름답다>

우리 조상분들께 꽤나 외람된 표현이 될 수 있겠으나, 오늘 '기생충'으로 '제왕'의 자리에 오른 봉준호 감독을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수십 년 전 누군가가 '벌레'처럼 지내야 했던 시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다.

누군가는 우리나라를 '헬 조선(부정의 기운이 너무나 강한 이 단어가 난 정말이지 싫다.)'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을 쓴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부조리도, 모순도 많은 사회이기에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에 나도 공감을 한다. 단, 대한민국을 비판해야 할 부분은 비판하되,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을 절대 당연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민족주의가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 위험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원래도 나는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감사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식으로 그 사실에 더더욱 감사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봉준호 감독과 김연아 선수와 같은 우리나라 출신 '월드 클래스'들이 많이도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그것은 '벌레'와 같은 운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현재 '죽음의 무도'가 아닌, '영광의 무도'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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