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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을 맞으며

by 운해 박호진

경칩도 지났고 곧 입춘이다. 다시 봄이다. 지난 주말에 20도를 넘겨 116년만의 3월 중순 더위였단다. 그런데 주초엔 매서운 꽃샘추위가 닥쳐 영하 4도로 뚝 떨어졌다. 추위가 봄을 시샘해도 이미 부풀은 꽃망울을 어찌 멈추랴. 동백도서관에서 우체국에 이르는 가로에 매화가 활짝 피었다. 좀 지나면 겨울을 이겨낸 초목이 뾰족이 움을 틔워 봄볕을 탐색하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양서류들은 눈 녹은 물을 즐기며 산란을 준비하겠지. 내가 살던 남녘은 벌써 꽃 잔치가 벌어졌단다. 봄을 맞아 아이들은 학년이 오르고 새 학기가 시작되어 가슴 설레고 막 사회에 첫발 내딛는 청년들은 희망에 부푼다. 사람들은 봄을 맞아 저마다 희망을 키우려고 부산해 진다. 건강을 챙기려고 관계를 넓히려고 미래를 다지려고.

3월로 용인에 이사 온지가 만 2년이 되었다. 되돌아보니 참 빨리도 지나갔다. 이런 저런 까닭이 있어 덜컥 이사는 왔으나 낯선 곳이라 지리와 문화 모든 것이 생소하였다. 집 정리가 대부분 끝난 후에 바깥으로 활동을 넓혔다. 용인 시내 뿐 아니라 경기도 일원의 유적과 숲, 호수를 찾아다니며 길을 익히고 눈과 귀를 밝혔다. 간간히 서울과 인근에 사시는 집안 형제들과 모임도 가졌다. 무엇보다 아들네 딸네와 가까워져 수시로 내왕하며 어울려 행복한 나날도 많아져 보람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만나는 사람이 가족과 친지로 한정되다보니 일상에서 뭇 사람의 냄새가 그리워 졌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떤 모임도 참여할 수 없었고 서로 사람을 기피한 탓이 크다. 마스크 속의 이웃은 엘리베이터에서 건성으로 인사만 나누었지 누군지 모른다. 겨우 앞집이나 아랫집만 인사를 텄다.

그런 중에도 사람들 틈에 들어가려고 나름 노력도 하였다. 지난해에는 용인시파크골프협회에도 가입하고 임원으로 피선되어 두어 번 만남을 가졌고 3년 만에 개강한 노인복지관 수업에도 몇 과목 등록하여 수강도 하였다. 하지만 포곡의 파크골프장은 개장 얼마 후에 폭우로 시설물이 몽땅 떠내려 가버려 구장을 못쓰게 되었고 따라서 협회일도 흐지부지 미루게 되었다. 노인복지관의 배움터에는 영어회하며 일어, 하모니카 따위를 등록하여 다녔는데 예전부터 다니던 분들이 대부분이라 그들끼리의 대화에 선뜻 끼지를 못했다. 물론 낯가림이 심하고 매사에 소극적인 내 탓이 크지만.

다시 봄이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파크골프협회의 기흥클럽장을 맡은 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마침 그가 사는 곳이 인근이고 성씨도 나와 같고 나이도 동갑이어 반갑다. 여러 차례 통화하면서 적극적이고 쾌활한 그이에게 친근감을 느낀다. 거의 매일같이 이러저러 소식을 전해 온다. 앞으로 운동을 통하여 좋은 친구가 될 성싶다.

지난해 말에는 모교 동기의 재경 모임에도 나가서 신고(?)도 치렀다. 다들 언제 이사를 왔는지 명부를 보니 무려 60여명의 동기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 그 중에 동기회 모임에 적을 두고 나오는 친구가 서른 명이 넘는단다. 50년 넘게 안 본데다가 희끗희끗한 얼굴이 생소하지만 다들 반겨주었다. 시간을 두고 옛 기억을 되살리며 이름도 외우고 낯도 익히어 그들 곁으로 다가갈 참이다.

올해에도 기흥노인복지관 아카데미의 문학반에 수강 등록을 했다. 지난 학기에 는 내가 청일점이라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웠는데 이번에는 남자 분들도 여럿 등록하여 반갑다. 코로나 이전에 이 수업에 참여한 이도 두어 분 있지만 대개는 처음인 분들이다. 출석 때 마다 서로 밝게 인사하고 매주 써오는 수필을 통하여 서로를 조금씩 알아간다.

다시 봄이다. 최근엔 마스크 벗은 얼굴도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인연을 반기며 이봄에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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