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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

어디까지 알아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by 운해 박호진


“너 저 친구 알아?” “응.” “요즈음 뭐 하고 지낸 데?” “그것까지는 몰라.” “앵? 그게 아는 거야?”

어디까지 알아야 안다고 하나? 이름, 나이, 사는 곳, 성격, 직업, 종교, 취미, 가족 관계 등등 사람을 제대로 알려고 하면 알아야 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안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이 아닐까. 사물이나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이름만 들어도 안다, 한번 보기만 하여도, 한두 번 겪기만 하여도 안다고 한다. 그러니 “네가 알긴 뭘 알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그래!” 하며 핀잔을 듣는 일이 다반사다. 우리가 흔히 “안다”라고 말하지만, 과연 어디까지 알았을 때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두어 번 접하고 “알겠다.”하고 어떤 사람은 평생을 연구하고도 “아직도 모른다.”고 한다.

IT와 AI의 발달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SNS에는 각종 정보가 혼란스럽게 떠돌아 때론 무엇이 참인지 헷갈린다. 검색사이트엔 지식과 정보가 무궁무진하다. 손가락 몇 번 터치에 세상의 모든 걸 다 알려주니 배우고 익힌 것이 무색할 따름이다.

은퇴 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지도와 강의를 하고 있다. 내가 맡은 강의의 ppt.자료를 최근에 up date 하면서 필요한 자료를 아주 쉽게 구하였다. 예전에는 몇 권의 책을 들춰보고 작성하였는데 이젠 검색어 몇 개 두드려서 찾아낸다. 그렇게 아는 게 지식일까? 아니면 검색 기술인가?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손가락이 아는 것은 아닌지.


안다는 정도는 몇 단계로 분류한다.

먼저 단순한 인식의 단계이다. 어렴풋이 기억하거나 마치 스쳐 지나간 풍경처럼 뚜렷한 이해 없이 익숙함이 생긴 단계다. 단순히 개념을 들어본 것에 불과하다.

다음은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단계이다.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설명 할 수 있을 때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설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이해도를 점검하게 되고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세 번째가 적용할 수 있는 단계이다. 알고 있지만 막상 현실에서 적용하지 못한다면 반쪽짜리일 뿐이다. 수학 공식을 외워도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개념을 응용하고 활용할 수 있을 때 그 지식을 자신의 것을 만든다.

네 번째 단계는 분석과 통찰의 단계이다. 개념을 응용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더 나아가 자신만의 이론이나 방법을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배운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통찰을 만들어 낸다.

마지막이 창조적 활용과 가르침의 단계이다. 지식이 자신만의 이해와 만족에 머물지 않고 창조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타인에게 전파되고 널리 알려지며 학습자가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가수의 노래가 있다면

1) 한두 번 들어본 적이 있다.

2) 제목과 가사를 알고 흥얼거릴 수 있다.

3) 가사와 리듬을 외우고 멋지게 따라 부를 수 있다.

4) 노랫말의 배경, 인기도 등을 알고 노래의 장점을 파악하고 평을 할 수가 있다.

5) 다른 사람에게 그 노래를 가르치고 잘 부를 있도록 고쳐 줄 수가 있다.

등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그렇다. 익혀서 알고, 내가 실행 할 수 있고 평가할 수 있으며 남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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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은 절대적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조금 더 알아가는 과정에서 겸손해진다. “나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말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내가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의 깊이와 폭을 새삼 가늠해 본다. 나는 과연 어느 정도를 아는 걸까. 세상일 모든 것에 오히려 무지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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