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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Happy? No happy.

by 운해 박호진

녀석이 새벽녘에 배게 곁으로 파고든다. 높은 온기가 싫어서 밀어내어도 꿈쩍도 안 한다. 사람 냄새와 함께해야 편한가보다. 낮에도 나만 쫄쫄 따라다니니 어떨 땐 귀찮기도 하다. 소파에 앉아 TV라도 볼라치면 냉큼 옆자리를 차지하여 체온을 나눈다. 우리가 나들이를 준비하면 측은한 표정을 짓는 게 재미있다. 외출 시에 주는 간식을 먹는 재미에 그러겠지, 설마 외로움이야 타겠나 싶다. 슬며시 다독여 준다.

아들네가 결혼 10주년을 넘겼으니, 식구(?)가 된 지도 10년이 다가온다. 안사돈이 암 투병할 즈음 적적함을 달래려고 분양받아 기르던 녀석이다. 일 년도 못 버티고 떠난 후에 며느리가 강아지를 서울로 데리고 오려 하자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아들은 길길이 뛰며 집에 들이는 것을 반대하였고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황급히 떠난 엄마를 눈물로 그리워하며 마지막에 곁에 있던 녀석을 키우고 싶어 하니 어쩌겠나. 우리 부부도 집안에 동물을 들이는 것이 탐탁치 않았지만 결국 아들을 설득하였고 그들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녀석이 해피다.

오랜 세월 함께하며 관심도 가고 은근히 미운 정도 든다. 자주 드나드니 해피도 나를 잘 따른다. 아들네가 집에 다니러 올 때에 해피도 데려와 2, 3일씩 지내니 마냥 박대만 할 수 없다. 그러나 싫은 일도 한둘이 아니다. 거실 바닥에 실례를 하지 않나. 가죽 소파를 박박 긁어 놓질 않나. 잘못 간수한 음식물을 먹어 치우질 않나. 이따금 성질나면 아무 데나 오줌을 싸대고. 한번은 생일 파티한 날 저녁에 야단이 났다. 식탁 아래에 어슬렁거리다가 손자가 떨어트린 초콜릿케이크를 냉큼 주워 먹었겠다. 강아지는 초콜릿을 먹으면 큰일난단다. 하필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이니 은근히 걱정이다. 여기저기 검색하더니 마침 동네에 야간에 진료하는 동물 병원이 있어 급히 달려갔다. 위세척하고 검사하고 야단도 그런 야단이 없었다. 눈이 휑하게 초췌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해피에게 “살아 돌아와 고맙다.” 했다.

아들네가 긴 여행을 떠나며 해피 돌보미가 되었다. 예전에는 애견 호텔에 맡기고 갔었다. 그 비용이 만만찮거니와 맡겨두면 늘 스트레스를 받더란다. “그 삯 절반만 다오. 내가 봐 주마.” 그렇게 해서 여행 떠날 때마다 맡아서 돌본다. 이번 여행은 일정이 길어서 우리가 아들네에 가서 돌보기로 하였다. 해피에게 고구마 간식을 주며 ‘집잘 지키라’하고 두어 시간 외식하고 돌아왔더니 현관부터 엉망이다. 외출 다녀와 버리려고 챙겨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뜯어서 난장판을 만들었고 쓰레기 중에 제대로 맛난 게 없어서 짜증 났던지 똥오줌을 갈겨 놓았다. 해피! 이리 와! 고함쳐도 어디 숨었는지 꿈쩍도 안한다. 발걸음 소리만 나도 쫒아 나와 짓던 녀석인데 안 나타나니 은근히 걱정이다. 음식 중에 뭘 잘못 먹고 탈이 났나? 궁리 끝에 좋아하는 사과를 깎아놓고 부르니 침대 아래에서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 눈치를 본다. 죄지은 건 아나보다.

오~ 해피! 난 No happy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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