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 아버지의 궁금증

아버지 뭐하시노?

by 운해 박호진


아버지에 대한 많은 기억 중의 일화다. 학창 시절에 자취하는 친구들이 자주 집으로 놀러 왔었다. 이야기도 하고 바둑도 두곤 했는데 끼니때가 되면 밥을 먹고 가기도 했다. ㅡ 집까지 놀러 오는 친구는 몇 안 되기에 식구들 모두 얼굴은 익히 아는 사이다.

한창 놀고 있노라면 외출서 돌아온 아버지가 친구들에게 늘 물어보는 것이 한결같다. 性이 뭐고? 집은 어디고? 아버지는 뭐 하시노? 형제는 몇이고? 이쯤 되면 호구조사보다 세세하다. 만날 때마다 매번 유사한 질문에 친구들은 공손히 대답하지만, 속으론 성가실 것이다. 아버지는 더 나아가 우리들 이야기에 끼어드시고 장기나 바둑의 훈수까지 하셨다. 매번 어머니가 나서서 "아이들 불편소, 그만 나오소."하고 불러낸 후에야 온전한 우리들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의 뭐든 물어보는 습관은 나중에 며느리를 들이면서 더 늘어났다. 나들이하면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가 궁금하고 새로운 살림살이나 물건을 보면 용도나 사용법을 세세히도 묻는다. 사돈 팔촌의 대소사까지 시시콜콜 묻곤 하셨다. 9남매 모두 공통으로 겪은 일이었으니 숱한 질문과 대답은 백과사전만큼 많았으리다. 그 많던 질문과 답을 다 품고 가셔서 지금도 기억하고 계실까.

방송의 개그 프로그램에 ‘거지의 품격(2012년)’이란 코너가 있었다. 거지 분장의 허경환이 커피점에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긍금하면 오백 원!"이란 멘트로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는 그 돈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아 폭소를 자아내는 개그다. "궁금하면 오백원!"이란 멘트는 동안 유행하여 대화 중에 쓸데없는 질문을 차단하는 역할도 했었다.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묻지 말라는 말로 쓰였다.

아버지는 직업이 궁하여 어렵게 사시면서도 9남매를 번듯하게 키우셨다. 궁핍한 시대를 사시다가 빠르게 변하는 물질만능의 시대를 맞으며 이것저것 사물이나 용처가 궁금하셨을 것이다. 내 친구의 가정사가 뭐 그리 알고 싶었겠나. 다들 사는 형편이 고만고만했으니 말 붙이며 편안히 하라는 의도였겠지. 또 새 식구들이면 다정의 표현 방법이었으리다. 그러나 늘 반복된 질문 공세에 친구나 며느리는 매우 무안했으리다.

나도 나이 들며 외모도 행동거지도 점점 아버지를 닮아간다. 말버릇마저도 아버지 판박이다. 가족들 대화 중에 끼이고 싶어지니 말참견도 늘어난다. 아들 며느리 직장 일에도 아는 척 훈수 든다. 아내의 핀잔을 듣고서야 슬그머니 물러난다. 만만한 손자 손녀에게는 온갖 걸 다 물어본다.

내 나름의 친근감이나 호감을 나타내는 방편이고 관심과 사랑의 표현인데 다들 귀찮아하는 눈치다.

옛날 아버지의 밀착 질문들이 떠오른다.

“아버지! 저승에서도 궁금해하시어 남의 말에 끼어들면 다들 성가셔 하여 함부로 묻기도 어렵지요? 훗날 저가 오백 원 동전 잔뜩 모아서 찾아뵐게요. 그때까지는 궁금해도 참고 있으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구별의 속살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