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와 석모도
어느덧 가을도 끝자락이다. 기온은 초겨울과 같다지만 단풍은 얼추 달력과 맞추어 물들어 거리와 공원길은 아직 붉은빛이다. 바다를 보기엔 늦은 감이 있지만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석모도, 강화도 서쪽의 작은 섬이다.
강화는 거리로는 80Km,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지만 서울을 지나다 보니 선뜻 나서기가 어려운 곳이다. 강화도 행정구역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이다.
교동도, 석모도 등 11개의 유인도와 1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주도인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이며 고려 때 몽골군이 침략하였을 때(1231년) 고려의 임시수도이었고 흥선대원군 집권 시절의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 때에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국방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강화대교를 지나자마자 먼저 갑곶돈대를 찾았다. 돈대는 해안이나 접경지역에 쌓은 소규모의 관측 또는 방어시설을 일컫는다. 갑곶돈대는 방어시설로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이후 몽골과의 항전 시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요새였고 병인양요 때에 프랑스 함대를 맞아 격렬한 전쟁을 치른 곳이다. 그 시절 사용하던 포 하나가 썰렁하게 전시된 곳이지만 폭 1Km 남짓의 강화해협을 내려다보며 선조들의 장엄한 전투를 상상해 본다. 갑곶돈대 곁에 갑곶순교성지가 있다. 1866년 프랑스 성직자 9명을 처형하자 프랑스 함대가 갑곶돈대에 상륙하였고 이후 강화지방에서 혹독한 박해가 시작되어 갑곶 성지가 보이는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가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그 터에 세워진 갑곶순교성지성당을 찾으며 숙연해진다. 성지 입구에 순교자의 넋인 양 붉디붉은 단풍이 처연하다.
강화에는 명소가 많지만, 짧은 해를 고려하여 숙소가 있는 석모도로 향했다. 석모대교를 지나 남쪽으로 가노라면 칠면초 군락지가 펼쳐진다. 칠면초는 갯벌이나 염분이 많은 땅에서 자라는 한해살이풀인데 계절마다 색갈이 달라져 칠면초란 이름이 붙었다. 11월의 칠면초는 단풍같이 짙은 붉은색이다. 광활한 늪지대에 끝없이 칠면초가 펼쳐져 있다. 갯내음을 뒤로하고 다음 찾은 곳은 민머루해변이다. 1km 남짓의 백사장은 석모도의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일몰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데 짙은 해무로 흐릿하여 갈 길을 재촉하였다.
숙소는 석모도자연휴양림이다. 경인 서북부 권역의 유일한 휴양림으로 넓은 들판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여장을 풀고 다시 석모대교를 지나 강화도 천서리 횟집 마을에서 저녁을 먹었다. 평일이라 한산하여 편안하게 정취를 감상하며 바다 맛에 빠져든다. 추천하는 농어, 방어 등으로 특별한 만찬. 소주 두 병이 금세 비워진다. 운전하는 아내가 참 예쁘다.
숲속의 아침은 새 울음소리로 시작된다. 숲이 황량하여 새소리도 처량하다. 낙엽 떨군 앙상한 가지에 앉아 슬픈 목소리로 겨울의 먹거리 잠자리를 걱정하나 싶다. 휴양림 인근의 계곡을 따라 석모도수목원이 조성되어 있다. 간편식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수목원 산책에 나섰다. 탐방로 데크길은 안전하고 쾌적하게 거닐 수 있었다. 고산습지원, 고사리원, 암석원, 유리 온실, 생태체험관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여름철에 서해의 푸른 빛과 잘 어울리었을 짙은 녹음을 상상해 본다.
강화하면 대표적인 명소가 전등사이다. 강화군 길상면 정족산 자락에 있는 전등사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로,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창건되었다 한다. 고려 시대에는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찰로 중하게 여겼으며 중화궁주가 옥으로 만든 법등을 기증하면서 진종사라는 절 이름을 전등사(傳燈寺)로 바꾸었다. 지금의 모습은 1614년에 큰 화재로 타버려 1621년에 재건한 것이다. 대웅전, 약사전, 철종(鐵鐘), 목조서가여래상 등 문화재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절 곳곳에 거목이 여럿 버티고 있어 이채로운데 경내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는 보호수이다. 1615년 재건 때에 심었다고 추정하니 수령이 400년을 넘었다.
귀갓길에 강화대교를 지나니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이정표가 보인다. 언제 다시 오나 싶어 먼 길을 돌게 되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김포시의 북쪽 조강(組江 : 한강하구의 옛 이름)을 내려다보는 곳이다. 애기봉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 위치하여 입장하기 위하여 신분 확인이 필수이다. 해병이 지키는 출입 초소를 지나며 잠시 긴장하였다. 이곳이 한국전쟁 당시에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154고지라는 사실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평화생태 전시관에서 조강의 역사와 역할에 대한 영상물을 관람하고 출렁다리를 건너서 애기봉 전망대로 향했다. 애기봉이란 표지석 곁에 망배단(望拜壇)과 평화의 종이 있어 실향민의 아픔을 짐작케 한다. 전망대에서 조강 건너편의 북녘 땅을 바라다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전망대 건물 2층에 스타벅스가 자리하여 이채롭다. 찬바람 피하여 따스한 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이며 일정을 정리한다.
가벼이 석모도에서 하룻밤 묵어 오려던 계획이었는데 천주교순교성지와 고려의 역사가 깃든 전등사, 분단의 상징인 애기봉을 다녀오며 되새길만한 뜻깊은 여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