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문다

을사년을 보내며

by 운해 박호진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빨리 간다고 느낀다. 왤까? 별스런 계획도 없고 기다림이 없어서 일 것이다. 손꼽아 기다리는 일이 있으면 하루하루가 더디게 가지 않던가. AI의 답은 과학적이다. 새로운 경험이나 환경에 접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예측 가능한 일상이 반복되니 뇌가 처리할 정보가 적어지면서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낀단다. 즉, 어릴 때에는 모든 것을 개별적인 기억으로 받아들이지만 나이가 들면 비슷한 경힘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뚱그려져 기억이 단순화되고 시간이 짧게 느껴진단다. 아무튼 올해도 참 빨리 지나간 느낌이다.

2025년 乙巳年. 퇴직 후 10년이 지났고 노년이 시작되는 첫해였다. 한해를 어떻게 지냈나? 뭘 하고 뭘 남겼나. 다이어리와 일기장을 들추어 본다. 일정표에는 한주도 빠끔한 적이 없으니 꽤 바쁜 한해였다.

가장 많은 흔적이 여행이다. 제주 열흘살이를 시작으로 국내 십여 곳을 다녔고 해외여행도 세 차례 다녀왔다. 졸업 55주년 행사로 고향 마산에서 고등학교 동기 70여명이 함께한 1박 2일이 기억에 남았다. 이런 저런 일로 거의 매주 아들 딸 손주들과 오가며 어울린 일은 용인에 이사 온 보람이다. 물론 먹이고 챙겨주는 수고는 항상 아내 몫이었다. 결혼 45주년을 맞은 지난달에 아들 며느리가 멋지고 맛난 자리를 마련해주어 위안이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용인아카데미 문학교실의 참여가 큰 보람이다. 개근은 아니지만 거의 참석한듯하다. 어디에서 내 글을 발표하고 듣는 이가 경청하여 박수로 호응 해 주겠나. 늘 따뜻이 맞아주는 글벗들에 감사하며 참여하다보니 일기쓰기와 헬스와 더불어 일상이 되었다. 올해 내가 쓴 글이 25편이고 매주 받은 다른 이들의 글까지 합치니 두툼한 책 2권 분량이다. 동행한 분들의 정성들인 글은 재미도 있었지만 지식으로 쌓이고 지혜가 되었다. 주고받는 글은 삶의 활력소이고 자존감의 층만이었다.

퇴행적이고 후진적인 면모의 뉴스들은 기억에 담지 말자. 그런 중에도 AI는 단연 올해의 이슈이었다. 단순한 도구를 넘어 스스로 업무를 수행하고 이미지, 음성,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여 인간과 유사하게 인식하고 판단한다. 제조업, 금융, 의료, 헬스케어 등 산업 전반 뿐 아니라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도 사람과 동등하거나 앞서기도 한다.

이달은 연말 행사로 바쁘다. 소속된 OO재단의 성과발표회와 서울지역 형제 모임이 지난주에 있었다. 이번 주엔 OO협회의 행사가 2건이고 다음 주엔 의성에서 처가 형제모임이 있다. 재경동창회, 친목회, 손자 연주회 등 빠질 수 없는 일들이 일정표에 가득하다. 또 6개월 만에 한 달 휴가를 내어 귀국하는 사위를 맞는다. 그런 중에 내년의 개략적인 계획도 구상해본다.


9988이라 했던가? 천만 다행으로 99세까지 산다고 해도 이제 남은 삶이 4분의1도 안되며 실질적인 건강 수명은 12년 남짓이란다. 다가올 날들도 지난날만큼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우선 건강 상태부터 챙겨본다. 건강검진 결과는 주의 경보다. 과체중, 고혈압 전단계, 당뇨 전단계 등 대사증후군이라고 관리하란다. 모든 게 체중 줄이기가 우선이라는데 가장 힘든 일이다. 나름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왕성한 식욕으로 체중은 늘 그대로이다. 현재 상태로만 유지되어도 좋으련만 확신이 없다.

건강 다음은 배움의 지속이다. 노년에도 인지 기능유지와 삶의 만족도 증가, 사회적 관계를 위하여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한단다. 내년부터 사회 활동을 줄이는 만큼 배움의 폭을 넓혀야겠다. 마침 내년 4월에 사는 곳 인근에 새로운 종합복지관이 개관한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기대한다.

새해에 가족의 건강과 화목, 손자 손녀의 바른 성장, 건강한 이웃과의 따뜻한 교류, 나라의 안정을 바란다. 한걸음 앞서 나가지는 못하더라도 흔들리거나 멈추는 일 없는 새해를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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