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의 추억

커피를 마시며

by 운해 박호진

하루의 시작. 분쇄기에 로스팅 원두 홀빈 두 숟가락을 넣어 스위치를 누르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이내 고운 입자로 바뀐다. 커피메이커에 종이 거름망을 놓고 커피 분말을 쏟아 넣는다. 물은 400cc, 내 입에 맞춤 커피다. 주방에 구수한 커피 향이 퍼지면 예쁜 잔에 따르고 아내와 베란다에 마주 앉아 향과 맛을 즐긴다. 어떨 땐 달콤한 믹서커피가 당기기도 한다. 문득 커피 둘, 프림 셋, 설탕 둘의 황금비율로 주문하던 옛날 다방 커피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통학길에 새로 들어선 2층 건물에 신식 다방이 생겼다. 그 이름도 세련된 아세아다방. 늘 그 안이 궁금하였다. 까까머리가 자라면 맨 처음 해보고 싶은 것이 그 다방 출입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구식 다방은 여러 번 들어가 보았다. 처음은 누나가 맞선을 볼 때이었고 그 후로 누나가 데이터 할 때에도 따라다녔다. 처음엔 어른들이 딸려 보냈겠지만, 나중에는 누나가 혼자 갈 엄두가 안 나는지 늘 나를 데리고 다녔다. 본의 아닌 훼방꾼이 되었었다.


그 시절 다방 손님은 여러 부류다. 거만스럽게 소파에 눌러앉아 마담이나 레지와 노닥거리는 하릴없는 사내들이 제일 큰 단골이었다. 애교 떠는 젊은 아기씨 손목이라도 잡아보거나 마담 언니 엉덩이 한번 툭 쳐본 값으로 쌍화차를 시켜주곤 하였다.

맞선을 보는 장소도 다방이다. 중매쟁이가 남녀를 마주 앉히고 서로를 소개해 주고는 자리를 비켜준다. 그러면 남녀 간 데면데면한 분위기에 천편일률적인 대화가 시작된다. 선보는 날 다방에는 낯선 손님이 많다. 양가의 식구들이 모르는 사람인 양 멀찌감치 앉아서 지켜보는 탓이다. 양가 아낙들은 돌아가서 입방아 찧을 거리를 열심히 탐색한다.


다방은 약속 장소이고 지역의 비즈니스센터 격이었다. 손님 면담이나 상담에 다방은 훌륭한 사무실이다. 대서(代書)나 부동산 거래 때에도 사무실처럼 요긴하게 활용하였다. 전화기가 귀하던 시절이라 전화를 걸거나 걸려 온 전화의 호출 서비스도 해주었고 전화 메모도 필수 서비스였다.

또 무료한 시간 보내기에도 다방은 적격이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실내 구석에서 테트리스 같은 게임도 하였고 탁자 위의 둥근 통에 동전을 넣고 그날의 운수가 적힌 띠지를 뽑아 보기도 하였다.

그 시절 다방 메뉴는 참 다양하였다. 그중에 인기 메뉴는 모닝커피이다.

블랙커피에 달걀노른자를 띄우고 설탕과 프림을 듬뿍 넣은 메뉴이다. 고급으로 치면 쌍화차가 있다. 대추, 밤, 잣 등 견과류를 가득 넣고 달여 낸 차이다. 여기도 화룡점정은 역시 달걀노른자이었다.

커피 외에 생강차, 대추차, 인삼차도 있었다. 여름엔 냉커피, 미스카루(미숫가루) 오랜지쥬스, 밀키스, 요구르트, 사이다, 콜라, 박카스 등 온갖 마실 거리는 모두 팔았다. 심지어 달걀 반숙, 완숙도 메뉴에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방에서는 매상을 올리기 위해 홍차에 위스키를 탄 “위티”라는 메뉴도 내놓았다. 원래 ‘위스키 티’는 홍차에 위스키를 조금 넣는 수준이지만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법망을 피하여 홍차보다 위스키량을 훨씬 많이 넣어서 팔았다. 사내들은 거들먹거리며 위 따(위스키 티 따불)를 주문하였다.


70년대에 본격적으로 생겨난 음악다방은 음악 감상 공간으로서 손님의 신청곡을 DJ가 사연과 함께 들려주었다. 대화보다는 벽면을 가득 채운 LP판에서 나오는 고음질의 음악을 즐겼다. 간혹 매혹적인 DJ의 목소리에 반하여 엉뚱한 메모를 창구에 밀어 넣는 아가씨도 있었다. 다방과 관련한 노래 들이 생각난다. 찻집의 고독(나훈아), 찻잔(노고지리), 그 겨울의 찻집(조용필), 낭만에 대하여(최백호) 등 가요가 아직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만남과 사교의 장소로 이용하던 장소에서 농어촌을 중심으로 커피를 배달하여 영업하는 티켓다방이 성행하더니 급기야 퇴폐업소로 변질되어 외면받고 쇠락하여 이젠 다방은 찾아보기도 어렵다.

사랑을 꽃피우고 아련한 추억을 묻어둔 다방. 요즘의 세련된 카페와는 다른 정과 멋이 넘쳐났었다. 젊은이들이 밥값에 버금가는 커피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문화가 되었다. 커피숍이 무려 12만 개에 달하고 연간 1인당 400잔을 마시어 세계 2위라 하니 우리 국민의 커피 사랑은 참 대단하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에는 돈이 아까운 나이, 식당에서 제공되는 공짜 커피나 자판기에 동전 넣고 뽑아먹는 커피가 맛나다. 집마다 필수품으로 챙겨둔 커피믹스는 우리나라의 7대 발명품이란다.

그 달콤한 맛에 삐져든다.


* 우리나라 7대 발명품 : 커피믹스, 밀폐용기, 화장용 쿠션 팩트, 이태리 타올, MP3, 우유팩, 응원용막대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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