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다섯 번째 편지이구나.
그저께의 파티를 기억하니?
네가 고대 1차에 합격을 했잖니.
네가 보낸 문자 속에
글자들이 웃으며 춤을 추고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 한다는
네 목소리에도 기쁨이 가득했지.
그렇게 우린 축하를 했다.
합격했다는 결과를
사진으로 담아 보여주는
네 마음이 얼마나 뿌듯했을지
엄마는 지금도 그 생각에 웃음이 난다.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가서는
이미 독립이라도 한 듯
넌 혼자서 한다고 하지.
데리러도 안와도 된다고.
네가 벌써 어른이 된 듯
기쁘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단다.
엄마 품에서 떠난다는 정해진 사실을
실감하기 때문이겠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우린 축하하며 작은 파티를 한다.
이번에도 치사로 말이다.
떡볶이까지 더했으니
조금 더 큰 파티일까?
너도 엄마도
넘치는 기쁨을 그대로 넘치게 두었지.
행복은 저절로 우리것이 되고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이야,
하루 사이에 풀 죽은 네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린다.
카이스트 발표말이다.
합격하면 바로 엄마에게 연락할 거고
아무 연락이 없으면 떨어진 줄 알아라고 했지.
네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우린 이미 알고 있지 않니.
그곳에 원서를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장한 일인지 말이다.
원서를 낼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되겠니?
너만 해도 너희 학교에서
유일하지 않니.
그럼에도
네 마음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지?
작년에 네가 다니는 학교에서
이미 카이스트 합격자를 배출했기에
2년 연속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엄마는 생각했다.
카이스트에서 2년 연속으로
같은 학교 출신을 뽑아줄까.
특히나 적은 인원을 뽑는 건데.
엄마의 우려는
엄마만의 것이 아니었지 않니.
너의 담임선생님도
그 점이 우려된다고 하지 않았니.
그러니 실망은 내려놓으렴.
너를 뽑지 않은
카이스트가 바보인 거다.
그러니
이젠 낙담은 그만하렴.
카이스트에 가고자하는 많은 이유가운데
경제적인 것이 크게 차지 하는 것 같아
엄마는 마음이 아프다.
그곳에 가야
경제적으로 부담이 없다는 네 말을 들을 때
엄마 마음이 많이 아프더구나.
고대 연대 면접을 위해
서울 숙소 잡은 이야기에
넌 다시 한숨을 쉬지.
돈이 많이 든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서울을 잘 몰라서 그런 건지
엄마의 서툰 실력으로 검색해서 그런건지
숙박비만도 장난 아니다.
서울이라는 곳이
좀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야,
그런 걱정은 하지 말래?
그건 엄마 몫이란다.
그동안 너무도 잘 하고 잘 챙기는 너를 보며
엄마가 너무 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역할에 대해서 말이다.
잘 하니깐.
엄마도 잘 챙기고
스스로도 잘 챙기니깐.
야무지게 잘 하고 잘 챙기니깐
알아서 잘 할 거라고
엄마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미안하다.
네가 얼마나 부담이 되었을까.
어릴 때부터 그랬지.
만약 대학을 간다면
입학은 시켜주겠다고.
다니는 건
네 스스로 다녀야 한다고.
우리 형편 뻔이 아는 너에게
그런 말을 장난처럼 했으니.
그게 엄마 생활 신조이기도 하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구나.
네 말 대로
기숙사를 가더라도
최소 먹고 자고 입는 것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마 월급으로 어림도 없구나.
그러니
네가 더 간절히 카이스트를 원했다는 생각에
더 마음이 아프다.
이건 아픈 정도가 아니다.
가슴을 후벼파는구나.
대학 공부를 스스로 해내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기특한 일인데
돈 걱정까지 하게 했으니.
정말로 못난 엄마다.
정말로.
그렇다고
갑자기 없는 돈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늘에서 돈이 떨어질 리도 없고.
땅에서 돈이 솟아날 리도 없고 말이다.
식상한 이 표현을 하고 싶더라.
그래야 현실을 똑바로 보고 살 것만 같다.
엄마는 그동안
현실보다는 이상을 좇아 온 것 같다.
경제 개념도 없고.
이러니
네가 너 불안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래도 아이야,
걱정은 내려놓으렴.
부자는 아니어도
그래도 우리 행복하게 살아왔지 않니.
엄마가 경제 개념이 없어도
빚내면서 살지는 않지 않니.
작은 것에 만족하며
하루하루 행복해하며 살아왔지 않니.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우린 헐벗지 않는다.
굶지도 않고
추위에 벌벌 떨지도 않아.
그러니 아이야,
그 걱정은 엄마몫으로 두고
넌 지금 네가 할 일에 몰입하렴.
하긴
엄마가 말하기가 무색하게
넌 어제부터 더 본격적인 면접준비를 시작했지.
선배 이야기를 하더구나.
1차 합격 발표 나고
서울에서 단기 면접 준비해주는
학원을 다녔다는 네 선배 이야기 말이다.
담임 선생님이 이야기를 해줬다고 했지?
그건 너도 그렇게 하라는 권유였겠지?
필요하면 했으면 한다.
그런데도 넌 혼자 하겠다고 하는구나.
이번에도 스스로 해보겠다고 하는구나.
그것이
우리 형편 때문에 내린 결정일까봐 걱정이다.
그런 학원이 있는지조차 관심 없던 엄마라
참 할말이 없다.
아이야,
형편 걱정
돈 걱정은 내려 놓으렴.
그것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되는 게
엄마는 더 가슴 아프단다.
네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태권도 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지.
그 때 한 달에 십만 원.
그 돈이 없어 널 보내지 못했다.
2학년 때 보내준다고 하고서는…….
어쩌면 학원을 다니지 않고 공부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이 든다.
혼자서 공부 잘 한다고
스스로 찾아 공부 한다고
칭찬만 할 줄 알았지
너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엄마다.
오늘도
네게 참 많이 미안하구나.
아이야,
실패를 실패로 두지 말자.
새로운 기회로 보자.
앗!
이것은 엄마에게 하는 말이다.
넌 이미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기회를 향해 달리고 있으니.
아이야,
이젠 더 깊이
네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할게.
오늘도 네게 미안함으로
끝을 맺는다.
소중한 아이야,
나의 아이야,
넌 이제 시작이란다.
고대 1차 합격 발표 소식에 기뻤던것만큼
주민등록증 발급으로 더 설렜던만큼
우리 행복하자.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엄마가,
우리 형편이,
네 선택을 좌우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아예 안할 수는 없겠지.
너무 크게 차지하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말이다.
오늘 글은
형편없구나.
실패를 실패로 두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엄마가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엄마도 정신차릴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너다.
엄마에게도
너에게도
잊지마.
그건 변함없다는 걸.
소중한 내새끼.
사랑한다.
아이야.
2025년 10월 18일 토요일.
아침 6시 21분.
밤새 내린 비는 그쳤다.
이제 곧 날이 밝을 거야.
이 새벽을 너와 함께 한다.
사랑한다.
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