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 귀신이 된 필이

by 필이

중급 레인에 사람들이 없다.


“언니, 중급 레인에 요양보호사 언니 혼자 있거든요? 우리도 저리로 갈까요?”


“사람들이 없나? 내는 마 있는가 없는가도 모린다.”


“가요. 저기 가서 우리 자전거 타기 해요.”


“그라까?”


둘은 조용히 주인 모르게 담을 넘는 도둑이 된다. 아니, 이건 짝꿍 언니를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니 안 되겠다. 다시, 작꿍 언니와 필이는 엄마 몰래 담장 넘어 도망가는 개구쟁이가 된다. 앗! 이건 또 엄마 말 안 듣는 아이가 되어버리네? 하하하. 아무튼, 언니와 필이는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철책선을 넘어 중급 레인으로 간다.

짝꿍 언니는 자전거 타기를 제법 잘 한다. 필이는 물 속이긴 하지만 자전거 페달을 밟으니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 같다. 이제는 페달 밟기는 하지 않고 발을 살짝씩 땅에다 대었다 떼는 걸 한다. 퐁퐁 뛰는 것이 달에 착륙한 바로 그 우주인이다. 그래도 우주인보다는 좀 빠르긴 하다.


짝꿍 언니를 마주 보고 함께 걷는다. 짝꿍 언니는 앞으로 가는 것이고 필이는 뒤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마주 보고 갈 수가 있다.


“어째 이래 앞으로 안 가꼬. 뭐가 보여야 남 따라 라도 할 낀데.”


“언니, 그래도 내가 어디 있는지는 보이지요?”


필이가 움직일 때 언니 고개가 따라 움직이는 걸 본다. 그러니 희미하게나마 사람을 알아보는 게 아닐까? 희망을 가진다.


“허연 게 거 안 있나. 귀신 나오는 거 그거 있제? 귀신 나올 때 흔들흔들 하면서 안 나오나. 그거 맨치로 흐리멍텅한 게 사람이 흔들리듯이 그래 보인다.”


“네? 그럼 제가 귀신이에요?”


언니가 '허연 거'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웃음이 터지는 걸 간신히 참는다. 아니 참을 새도 없이 바로 빵 터진다. 순식간에 필이는 귀신이 된다.


“그면 제가 귀신이네요? 히히히히. 언니야 내 안 보이지롱.”


목을 눌러 목소리를 낮추면서 천천히 음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다가 하이라이트 ‘히히히히’ 부분에서는 입을 옆으로 찢어서는 귀신이 된다. 마지막에는 약 올리는 귀신이 된다. 표정은 볼 수 없으니 목소리로 귀신이 된 필이가 언니 가까이로 다가간다.


“허연 게 보인다 안카나. 귀신맨치로 그래!”


“그니깐요. 지가 귀신이에요. 히히히히히.”


짝꿍 언니와 필이는 한바탕 귀신 놀이에 빠진다. 얼마나 웃었는지 언니도 필이도 눈물이 찔끔 난다. 아니, 이건 파란수영장 물방울인가? 파란수영장도 같이 놀자고 언니와 필이 눈에 들어왔나 보다.


실컷 웃었는가. 이번에는 언니와 나란히 걷는다. 중급 레인에 사람이 없으니 이곳이 곧 산책길이 된다. 눈이 안 보이는 언니가 걸어도 다리가 시원찮은 필이가 걸어도 넘어질 염려 없이, 넘어져도 다칠 염려 없이 걸을 수 있는 산책길. 언니와 필이는 이 길을 걸으며 또 하나의 행복이라는 이름을 새긴다.


“짝꿍 언니야, 언니가 아는 얼굴 중에 젤로다가 예쁜 사람이 저라고 생각하세요.”


“젤로 예쁜 사람이?”


“네, 젤로 예쁜 사람 얼굴을 떠올리면서 저라고 생각하세요. 알았죠?”


“그라지 뭐. 하하하하. 젤로 예쁜 사람이 함 보자~.”


언니가 제일 예쁜 사람 얼굴을 떠올릴 틈도 없이 재미있는 상상이 이어진다.


“그라다가 언니 갑자기 눈이 좋아져가지고 사람 얼굴 다 보이고 그라는 거 아이가? 그래가 내가 옆에 있는데도 못 알아보고 막 그라는 거 아이가?”


“그래 그래 목소리는 필인데 젤로 예쁜 사람이 어딨노. 찾는 거지. 하하하하.”


언니랑 필이랑 오늘, 완전 쿵짝이 잘 맞다. 레인 끝에 다다르도록 산책길이 끝나도록 언니와 필이는 상상의 나라에서 신나게 논다.


“거, 뭔 얘기를 그래 재밌게 하노?”


레인 끝에 있던 요양보호사 언니다. 언니는 짝꿍 언니와 필이가 상상의 나라에서 신나게 놀 때 옆에서 열심히 수영을 한다. 그래도 우리의 웃음소리는 다 들렸나 보다.


앗!

당연한 건가?

완전 개봉된 상상의 나라였으니?


“짝꿍 언니가 내 얼굴도 안 보인다고 해서, 언니가 아는 얼굴 중에 제일 예쁜 사람이 저라고 생각하라고 했어요.”


말하며 또 웃는다. 미스코리아가 되어 망토를 걸치고 왕관을 쓰고 손에는 요술봉을 들고 우아하게 걷는 필이를 상상한다.


“아름다운 밤이에요! 호 호 호”


짝꿍 언니는 한순간이나마 다시 눈을 뜨는 걸 상상하며 웃는다. 필이 목소리와 필이 얼굴을 서로 선으로 이으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같은 것 찾아서 선을 긋는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아이들이 많이 하는 선긋기 바로 그것. 요양보호사 언니도 상상의 나라로 초대한다.


“맞는 말이지. 젤로 반겨주는 사람이 제일 예쁜 사람이지. 안그렇나?”


“맞다. 맞다.”


요양보호사 언니와 짝꿍 언니는 한 살 차이로 원래부터 아는 사이라 그러더니 금방 짝짝꿍이 맞는다.


필이는 오늘 영화 세 편을 찍는다. 공포 영화에 하얀 옷을 입고 흔들흔들 등장한 허연 귀신 영화 한 편!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 되어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감성 영화 한 편! 앞이 안 보이던 친구가 기적적으로 눈을 떠서 친구를 찾는 영화. 목소리는 그 친구인데 자기가 알던 예쁜 사람이 없어 친구를 옆에 두고도 찾아 헤매는 우픈 코미디 한 편!


앗! 한 편이 더 있다. 시골 수영장에서 언니들과 찐친이 되어 신나게 노는 생활극 한 편! 이러다 정말로 배우 섭외 들어오는 거 아닌가? 하하하하하. 필이는 혼자 상상하며 또 웃는다.


짝꿍 언니야,

언니랑 재밌는 영화 촬영해서 좋다.

우리 또 놀자!

그러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

그래야 많이 놀지.

영화도 더 많이 찍고.

알았제 언니야.

허연 귀신 필이는

오늘도 신나게 아침을 시작한다.




오필리아처럼~

필이~^^*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