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수영장 언니들은 수영복이 몇 벌씩 있다는 말에 팔랑귀 필이는 수영복을 사게 된다. 하나 달랑 있는 수영복은 벌써 10년하고도 더 넘은 것이다. 오래도 입었다. 물론, 수영장 자체를 그렇게 많이 가지 않으니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거의 날마다 수영을 하지 않는가. 언니들처럼 많이는 없더라도 적어도 입고 벗고 할 두어 벌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수영복을 살 이유를 마구마구 갖다 붙인다.
언니들이 말해준 수영복으로 산다. 반바지인데 원피스처럼 아래위가 붙은 수영복. 이걸 뭐라고 부르는가. 바로 '반신수영복'. 이름이 참. 특이하다고 해야 하나, 솔직하다고 해야 하나. 반신이라니. 몸의 반을 가려준다는 의미일까? 혼자 생각만 한다.
드디어 새로 산 수영복을 입는 날이다. 수영복은 입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아래위 떨어진 수영복을 아주 편하게 입다가 다 붙어 있는 이 녀석을 입으려니. 이것 참 나원 참. 히말라야 등반하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 것인가. 다리를 겨우 끼우고 상의가 어떻게 된 것인지, 등이 울퉁불퉁 헐크가 되어 버린다. 끈 사이사이 살이 퉁퉁 튀어나온다는 말이다. 어찌어찌 겨우 입고서도 이것 참. 나원 참. 속옷만 입은 듯한 이 기분은 무엇인지. 이름도 반신만 겨우 가리는 것인 듯 '반신수영복'. 얇디얇은 천 조각 하나 걸친 채 필이는 얼른 킥판을 가져다가 배를 가리고 물 속으로 들어간다.
“수영복 샀는가베? 예쁘네.”
요양보호사 언니의 말에 투정으로 답한다.
“아, 근데요. 이거 무슨. 옷을 안 입은 것만 같고. 원래 이래요? 도저히 일어서지를 못하겠어요.”
그렇다. 초급은 물이 허리에도 오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 일어선다면 필이 배가 그대로 보이게 된다. 동그란 모양의 필이 배가! 새로 산 수영복이 필이 배를 더욱 잘 보이도록 동그라미를 더 크게 더 선명하게 그려준다. 일어날 수 없다. 물속을 지켜야 한다.
“하하하하하.”
요양보호사 언니가 너무 크게 웃는다.
“아니, 이게 옷이 붙어 있어가지고 배가 너무……. 아, 도저히 못 일어나겠어요. 이거 무슨. 배가... 이렇게....아....”
원래 입던 수영복은 워터파크 같은 곳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아래위가 따로 떨어져 있는 수영복. 아래는 반바지, 그것도 이중 구조로 되어 있어 아주 단단한 느낌의 반바지이다. 위는 민소매 쫄티 같은 느낌이다. 당연히 배를 이중으로 가려준다. 반바지 위에 상의를 덮어주니 일단 안심이다. 아무리 쫄티라고 해도 그래도 상의가 덮어주는 그 맛이 안정감을 준다. 배를 이중으로 눌러주는 느낌마저 드니 안정감은 당연하다.
이건 다르다. 생전 원피스 디자인을 입지를 않는다. 적어도 필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원피스 디자인은 배가 도드라지게 보이기 때문이다. 앗! 자랑스럽게 배를 내밀던 시절 원피스를 입은 적이 있다. 바로 울 아이를 가졌을 때다. 그때 입은 임부복이 원피스로 된 것이다. 아하! 그렇구나. 그러니 원피스를 입으면 임산부가 된 듯 배가 동그라미로 보이는구나! 새로운 진리를 깨친 필이다. 사실, 지금의 배는 우리 아이 만삭 때보다 더 동그라미다. 그러니 원피스 디자인을 입을 수가 없다. 아하하하하. 이건 웃어야 하는 건가. 울어야 하는 건가. 하아, 이것 참.
“니 배 아무도 안 본다. 니가 그래 말하니깐 쳐다보는 거지. 니 배를 뭐하랄고 볼끼고?”
“그렇지요? 그래도 이거 참. 이거 속옷만 입고 있는 것 같아가지고. 수영을 못하겠어요.”
“예쁜 거 입고 수영을 와 몬해? 그게 속옷이면 이건 뭐꼬?”
언제 온 것인지 발차기 쌤이 자신의 수영복을 가르키며 말한다. 발차기 쌤은 전형적인 수영복이다. 이름이 원피스 수영복이란다. 발차기 쌤 것은 뭐랄까..... 몸에 붙어 있는 면적이 좀 더 작다. 많이 작다. 상의는 끈으로 되어 있고 하의는... 아, 여기까지! 더 했다가는 또다시 19금이 된다.
“초급, 중급은 다 이렇게 바지로 된 거 입거든. 고급만 넘어가면 이것도 불편해서 못입는다. 접영하고 하면 바지가 땅겨서 불편해. 이거 한 번 입고 나면 바지로 된 거 그거 불편해서 못입는다.”
“아~~.”
요양보호사 언니도 필이도 동시에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요양보호사 언니도 이것은 처음 안 것인가 보다.
“인나 봐라. 예쁘구만.”
언제 언니들이 이렇게나 모인 건가. 세상에나. 마스터 레인에서 3총사처럼 나란히 나란히 재미있게 수영하는 언니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미희 언니는 언제 우리 말을 들은 걸까. 그래도 레인이 옆 옆인데. 어떻게 알고.
“못 일어나겠어요. 배가.. 너무.. 동그래요.”
언니들도 필이도 한바탕 웃음 잔치다. 다행이다. 남자분들은 없고 늘 보던 언니들 몇 명만 있어서.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두 가지 실험을 한 영상이다. 하나는 야구장인데 한 남자가 쫄라맨 옷을 입고 경기를 관람한다. 일어서서 환호도 하고 같이 응원도 하고. 경기를 마치고 난 후 근처 사람들에게 쫄라맨 옷 입은 사람에 대해서 물으니 사람들 대부분이 못 봤다고 답한다.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영상은 한 모둠이 활동을 하는 영상이다. 1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동그랗게 서서 춤을 추기도 하고 게임 같은 것도 한다. 이번에는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이 그 사이로 지나다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결과다. 고릴라를 봤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타인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신이 하는 것에 빠져있기에 누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필이는 청소년기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상상속청중'을 만든다. 언니들이 아무리 예쁘다고 칭찬해줘도 어쩔 수가 없다. 수영을 한 건지, 안한 건지. 시간은 흘러 어느덧 물에서 나가야 한다.
킥판으로 배를 가리면 되겠지?
응, 다행이다. 킥판이 있어서.
혼자 묻고 혼자 답한다.
“언니, 먼저 갈게요. 내일 만나요.”
당당하게 인사하며 킥판 두는 선반까지 무사히 간다. 아,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킥판을 두고 나면 또다시 수영복만 달랑 입고 있다. 배를 가릴 그 어떤 것도 없다. 이것 참. 빨간목욕탕을 그렇게 다녀도 이렇게까지 부끄럽진 않았는데. 이건 뭐지?
수영복 디자인이 문제다. 이 녀석은 배를 너무 동그랗게 만들어준다. 윽. 언니들이 보지 않게 얼른 가자.
“가나? 예쁘네.”
미희 언니가 큰 소리로 인사한다.
네, 언니. 그렇게 크게 인사를. 반갑게 인사를. 그건 좋은데. 사람들이 다 쳐다봐요. 언니.
웃는 건지 우는 건지 필이는 팔로 얼른 배를 가린다. 커다란 양푼이에 나무젖가락 두 개 달랑 올려져 있는 것 같다. 팔로 이 배를 어찌 다 가릴 것인가. 그래도 최선을 다해 가려본다. 손바닥을 쫙 펼쳐서.
“예쁜데 와그라노?”
“네?”
또 미희 언니다. 이번에는 어찌 목소리가 더 커진 것만 같은가. 언니 목소리에 수영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필이를 쳐다본다. 아니, 쳐다보는 것만 같다. 아직 청소년기 ‘상상속청중’을 벗어나지 못한 필이가, 언니들만큼 크려면 얼마나 더 자라야 할까. 근데 이건 뭐가 자라야 하는 거지?
얼굴 두께? 익숙함?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