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추억을 가득 담고

by 필이

아들아,

열한 번째

편지를 쓴다.


이 글만큼은

네가 깨기 전에 쓰고 싶어

살짝 일어나 이렇게 글을 쓴다.


폰으로 쓰다

도저히 안 되어 노트북을 열었다.


어둠에 노트북 불빛이 환하다.


너에게 빛이 갈까

조심스럽다.


아들아,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이다.


물론,

아직 거제도 1박 2일도 남았고

또 얼마든지 남은 날 동안

어디든 다녀올 수 있으니

마지막이라 말할 수 없긴하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이번 여행은 남다른 것이지 않니.


대학 원서를 준비하며

이제 정말 너와의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린

추억을 더 많이 만들자고 했지.


넌 첫마디에

여행을 하자고 했다.

좀 길게 하는 여행.


산책도 많이 하고

편안한 그런 여행을 하자고 말이다.


그러면서

우린 이곳,

부산을 떠올렸다.


서울은

네 연세대 면접과

엄마의 출판사 계약 일정을 포함한

쉼이 있는 여행의 서막이다.


부산이야 말로

네가 처음 말한

우리 추억 여행으로 정해진 곳이지.


부산 해운대는

우리가 해마다 오는 곳이다.


엄마의 엄마.

너의 외할머니가

해운대와 가까운 기장에 모셔져 있기에

자연스럽게 해마다 이곳을 온다.


언제는

바다를 실컷 봤지.


해뜨는 바다

한낮의 바다

해지는 바다

밤바다까지.


기어이

모든 바다를 다 봐야한다며

넌 엄마를 깨워

그렇게나 바다로 데리고 갔다.


바다는 엄마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곳인데 말이다.

너도 바다를 좋아하는 게냐?


가만보니

그걸 물어보지 않았네.


네가 일어나면 물어봐야겠다.


이번 여행 중에

이틀은 네가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


오고 가는 하루씩을 빼고

온전히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세 날 중에 두 날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보내는 날로 정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날이

바로 그 날이다.


네가 일어나자고 하는 시간에 일어나고

네가 먹자고 하는 것을 먹고

네가 하자고 하는 것을 하고


바다 보고

맛난 거 먹고

좋은 카페 가고


크게 다르지 않은 날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네가 모든 것을 정할 수 있다는 그것이

너를 기쁘게 하는 것 같더구나.

책임도 느끼는 것 같고.


무계획도 만들고

네가 모든 것을 정하니

엄마는 아주 편안한 여행을 했다.


네 번째날인 어제는

엄마 북토크할 북카페에

다녀오느라 해제가 되었지.


정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루를 보낸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아니?


사실은 말이다.

아이야,

이건 엄마 버킷리스트에 있는 내용이란다.


엄마가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번에 기억이 났다.


버킷리스트 영화를 보고는

버킷리스트를 만들며

챙기던 때가 있었다.


엄마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네가 하자는 대로 하며 보내기-


하루였는지 일주일이었는지는

엄마가 집에 가서 노트를 봐야 알겠다.


네가 어렸을 때였는데 말이다.

하루 온종일은 아니지만

한 번씩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보냈다.


그럼 넌 아주 신나했지.


뭘 하며 놀고 싶은지

뭘 먹고 싶은지

엄마가 뭘 해줬으면 좋겠는지


별것도 아니고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넌 아주 신나했다.


네가 뭔가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나 좋았던 게냐?


생각해보면

엄마의 교육은 이것이다.


생각하는 아이,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것.

네 길을 네가 선택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니

작은 것이라도

네가 선택할 수 있고 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 당연한 것이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고

네 삶을 만들어가는 원초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글을 쓰면서

깨달은 이 사실에

엄마가 뿌듯해진다.


잘 키운 게 맞구나

하는~^^;;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아이를 잘 키웠냐고 하면

엄마는 늘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잘 키운 게 아니라

아이가 잘 큰 거라고.


생각해보니

엄마가 잘 키운 것도 맞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이것말이다.


네가 선택하게 하고

네가 정하게 하고

네 생각을 묻는 이것!


이 단순한 것이

너를 네 삶에 책임지는 아이로

키운 것이란 걸

오늘 아침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아하.

그래서 엄마가

오늘 이 아침에 꼭 편지를 쓰고 싶었던 걸까?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라.


그것을 그 마음을 간직한 편지를 쓰고 싶어

어둠 속에 노트북을 열었는데 말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다니!


엄마도 당당히

네게 말할 수 있겠다.


엄마가 널

잘 키웠다고 말이다.


처음 쓰려고 했던 글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살짝 당황하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넌 두 번째날 함께 했던 노을빛 바다를 말했다.


해가 지려고 준비할 때부터

넌 해운대가 한 눈에 보이는

가운데 돌계단에 앉자고 했지.


그러면서

하늘이 움직이는 그림이 되는

그 모든 것을 함께 하자 했다.


엄마,

저 구름 좀 봐.

저거 용이야.

보이지?

불을 뿜고 있잖아.

이거는 갈비뼈 새야.

저건 입이고.

이렇게 날고 있잖아.


넌 하늘에 구름을 보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편의 동화인지

만화인지 모를 이야기를

구름이 변하는 모양 따라

너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지.


나중에 완전

길쭉하게 날씬해진 용을 보고는


용이 불을 다 뿜어내서

갈비가 되었다고 말하더구나!


엄마가 좀 많이 웃었지?

너도 같이 말이다.


갈비새는 그 모습이 하나도 없이 흩어져버렸다.

구름이 있었다는 흔적만을 남긴 채 말이다.


하늘 색은 또 어떻냐.


엄마 이쪽 그라데이션 좀 봐.

하늘이 무슨!

엄마 이쪽 하늘 좀 봐.

내가 좋아하는 파란이다.

회색파란

보라 파란


엄마가 대답했지.


한 대 맞아서 멍든 것 같구만.

ㅎㅎㅎㅎㅎ


엄마의 장난에 넌 펀치 날리는 시늉을 하며

하늘을 한 대 때리고 왔다고 했지.


그러면서

또 하늘 색이 달라졌다며 말이다.


추운 줄도 모르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해운대 바다가

해지는 하늘이

온통 우리것이 되는 시간이었다.


너도 나도

잊지 못할 추억을 또 하나 새긴 거지.


엄마는 말이다.


너와 날마다

네 컷 사진 찍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첫날 네 컷 사진을 찍으며

넌 날마다 사진을 찍자고 했지.

날마다 달라지는 변화를 보자면서.


우린 해마다 해운대 올 때면

네 컷 사진을 찍는다.


해마다라고 해봤자

사진을 찍은 건

3년 전이 처음이었지.


그때 어쩌다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그렇게 찍고는

우리 해마다 해운대 올 때마다

사진을 찍자고 했잖니.


엄마의 뚱뚱하고 못생긴 얼굴이 나오는 게 싫어

사진 찍는 건 썩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다.


이런 엄마에게 네가 그랬지.


엄마는 사진 찍는 건 좋아하면서

왜 엄마 자신은 안 찍어?


그러게 말이다.


인스타만 해도

자신을 찍은 사진들로 넘쳐나는 세상인데

엄마는 왜

자신의 모습을 담는 건 이리도 꺼려지는 걸까.


넌 그냥 한 말이었을텐데

엄마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뚱뚱해지고

늙으면서

점점 자신이 없어진 건 아닌지.


이 생각은 좀 더 넣어둘게.

이것만으로 한 편의 글을 쓸 것 같아서 말이다.


너와 찍는 네 컷 사진이 참 좋다.


갖가지 표정과 포즈를 취하며

재미나게도 찍는다.


가장 중요한 건

너와 함께 한다는 것이지.


어제 저녁으로 4장이 되었다.

너와의 추억이

재미있게 담긴 네 컷 사진이 총 4장.


여행의 하루하루를

담은 듯 행복하다.


시간이 꽤 지났구나.

어느새 해가 다 떴나 보다.


닫아놓은 커튼 사이 틈으로

빛이 제법 환하다.


네가 곧 일어나겠구나.


이 글을

나중에 다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쓴 거라.

^^;;


사랑하는 아이야,

소중한 아들아,


어쩌면

이렇게

긴 시간 편안하게 하는 여행은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매해 이곳

부산 해운대로 오는 건

엄마 혼자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엄마를 만나러

엄마는 꼭 와야 하거든.


그 자리에

너와 함께였는데 말이다.

내년부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이제 넌

네 삶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할테니.


진짜 네 삶.

엄마 품을 떠난 어른이 된 네 삶!


그 삶을 응원한다.

이번 여행이

든든한 응원군이 될 것이야.

그렇지?


너에게도

엄마에게도

의미 있는 여행이다.


고맙다.

아이야,

엄마와 함께 해줘서


엄마 다리 아픈 것 챙겨가며

엄마가 힘들어 할 때마다

쌀포대처럼 엄마를 짊어지고 가겠다는

너 덕분에 얼마나 웃었는지.


참 행복한 여행이다.


고맙다. 아이야,

그리고

사랑한다. 예쁜내새끼야.


우리

이제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시작해볼까?

^^*





2025년 11월 8일 토요일

아침 7시 49분

글을 쓰다 아침이 밝아버렸네.

헤헤헤


그나저나

어둠 속에서 노트북을 했더니

엄마 눈이 더 침침~~

아하하하하


사랑하는 마음

가득가득 담아


억수로 사랑하는 엄마가^^*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