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리셋하는 마음으로!

by 필이

임시 저장글 150개가

모두 사라졌을 때를 기억한다.



처음엔 웃음만 나온다.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으니

나오는 것이라고는 웃음뿐!


망연자실.


다행인 건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 날이 울 아이 연대 면접하는 날이라

더 깊이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생각이 이쪽으로 흐르려고 하다가도

아이의 면접에 집중이 되어

그저 웃기만 한다.


아이의 면접이 끝나고,

아이마저 친구를 만나러 가고,

필이는 혼자 있게 된다.


그러면서 상념이 시작된다.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숨이 차오른다.


되돌릴 수 없는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도 큰 일이 벌어졌음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스스로에 대한 책망!

자신에게 퍼붓는 비난이 솟구친다.


숨이 막혀온다.

숨이 차다 못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조여온다.

피가 막혀 머리가 핑 돌기 시작한다.


새벽에 혀 밑에 넣은 응급약처럼

마음에도 응급약이 필요하다.


멈춘다.

멈춰야 한다.


그리고

가만히 바라본다.


부주의했음을 인정한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잘못을 인정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일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마음의 요동에 대해서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한다.


마음 한 켠에

홀가분함이 있음을 느낀다.


임시 저장글이 쌓여 130개가 넘었을 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정리를 한다.


발행할 글 발행하고

삭제할 글 삭제하고

100개까지 낮추었을 때 기뻤음을!


그것이 어느 순간

다시 쌓이고 쌓이더니

150개가 되었다.


지난 달부터 글 발행을

많이 하지 않은 탓이 크다.


발행은 하지 않고

언젠가는 쓸 거라며

임시 저장을 하기 시작한다.


점점 더 쌓여만 가는

임시 저장글을 보며

나도 모르는 마음이 있었던 걸 알게 된다.


무거움!


그렇다.

쌓여만 가는 임시 저장글에

무거운 마음 또한 한 켠에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핸드폰 갤러리에

쌓여만 가는 사진들을 보며

언젠가 정리해야지 하는 마음처럼


마음이 그렇게나

무거웠던 것임을 느낀다.


정리하지 못한 갤러리처럼

정리하지 못한 임시 저장글들이,


발행하지도 않으면서

쌓여만 가는 임시 저장글들이,


점점 더 마음을 짓누른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허탈하면서도

'0'이 된 임시 저장글을 보며

오히려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을 먹는다.


모든 것이 리셋되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비록 우리 삶은

모든 것을 리셋할 수 없겠지만

글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미 써놓은 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이제부터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밀린 듯 쫓기 듯

글을 쓸 필요가 없다.


놓아버리니

쥐고 있던 것을 어이없이 놓게 되니.


비로소 가벼워진 느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여전히 아쉽다.


150개 속에는 그 순간에 풀어낸

필이의 마음도 있으니.

그것은 다시 복원조차 되지 않는 것이니.


여전히 아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리셋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다시 임시 저장글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다급해지려고 한다.


글에 쫓기려고 한다.


비우자!

어쩌면 임시 저장글 150개가 사라진 건

꽉 차 버린 마음을 비우고자 하는

필이의 무의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비우자!


리셋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비우며 살자!


이것이 오늘의 결론이다!




오필리아처럼~

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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