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우리 아이 과외하러
인근 소도시로 가는 것은.
그동안 주말마다
엄마가 일정이 있어
과외 선생님이 집으로 와주었다.
모처럼 엄마가 쉬는 주말
아이와 함께 과외하러 간다.
신난다.
콧노래가 흥얼흥얼.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소풍 가듯 나들이 가듯
즐겁게 간다.
"잘 하고. 있다 보자. 사랑해."
오늘은 "응."이라는 대답조차 없이
고개만 까딱하고는 간다.
아이가 들어가는 걸
보고 가려고 잠시 기다린다.
이상하다.
아이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몇 번 초인종을 누르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전화기를 든다.
그러더니 이쪽으로 걸어온다.
"과외 선생님이 전화를 안 받으셔."
"응? 오늘 수업하는 거 맞대매?"
"어......."
과외 선생님 엄마에게 연락한다.
"지금 집에 와 있다고? 걔 지금 학교일텐데? 이번 주에 학교에 뭐 있다고 못 온다고 그랬는데. 전화를 안 받아?"
"응, 언니. 아, 잠깐만."
과외 선생님 엄마는
5년 전 다리 수술할 때
병원에서 만난 언니다.
퇴원하고도 서로 연락한다.
언니 딸이
우리 아이 과외 선생님이 된다.
"엄마, 내가 잘못 봤나 봐. 지난 주 문자 보니깐 이번 주에 수업 못한다고 했어."
아이는 손에 든 핸드폰을 보며
이야기한다.
엄마 눈을 피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까?
아이를 쳐다보며 통화를 마무리한다.
"언니야, 우리 애가 잘못 알았나 봐. 미안해. 괜히 걱정끼쳐서."
아이가 차에 탄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다.
"이번이 몇 번째고? 한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고 잘못도 할 수 있지. 그런데 그게 반복되는 건 아니지 않나? 최근 들어 벌써 세 번째다. 이건 아니지 않나!!"
그렇다.
최근 들어 선생님과 약속이 엇갈린 게
오늘로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선생님이
우리 마을 근처 카페에서 수업하기로 한 걸
우리 아이가 잊어버려 펑크를 낸다.
두 번째는 날짜를 착각했지만
다행히 아이가 있는 곳으로
선생님 가서 수업을 한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
다행이라면
이번에는 우리가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선생님이 오시거나 했다면!
하아~~
'이성적으로 생각해야지'
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나 전달법'으로 표현해야지'
개똥이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로지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무리 화가 나도
인신공격은 하지 않는다.
하지 않으려 정신줄 붙들어 맨다.
오직
아이가 한 행동에 대해서만
화를 낸다.
"니가 아무리 공부를 자기주도적으로 잘 해도 무슨 소용이 있노. 자기와의 약속은 그렇게도 잘 지키면서 남과의 약속은 왜 이런 식으로 하노. 자신과의 약속이 중요한 것 이상으로 남과의 약속이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하면 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된다. 한 번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나?"
화는 낼수록
더 화가 난다는 걸 느낀다.
정신줄 놓지 않으려 애쓴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를 생각해봐라. 그래야 앞으로는 이런 일이 안 생기지 않겠나."
"이번 일은 내가 무조건 잘못한 거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뭐가 잘못인지 정리를 해볼게."
아이는 기운이 다 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정리는 무슨 정리?
이 일에 신경을 안 쓰거나
대충 쓴 거지.
속으로만 말한다.
잔뜩 풀이 죽어서는
나름 심각한 아이에게
더이상의 화는 소용없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고,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훨씬 많을 텐데. 더이상은 이런 일이 안 생겨야 안 되겠나!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안 생길지 생각해봐라."
집에 도착한다.
아이는 집으로 올라가고
엄마는 걷는다.
산책이라기보다
그냥 걷는다.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어
그냥 걷는다.
터벅터벅.
요동치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어
그냥 걷는다.
터벅터벅.
얼마만에 이렇게나
화를 낸 건지 모른다.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인가.
내게 묻는다.
오며가며 버려진 시간이 아깝다.
그것에 화가 난다.
소풍가듯 나들이가듯
즐거운 길이 망쳐버린다.
그것에 화가 난다.
하지만
정작 화가 나는 진짜 이유는
두려움이다.
아이를 믿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지는 마음이다.
아이 스스로 잘 해나가고 있기에
웬만한 걸 아이가 하게 한다.
아이가 선택하고
아이가 책임지고
그런데
이번 일로
다시 예전처럼
엄마가 과외 수업을 챙겨야 하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은 알 것이다.
아이를 가르쳐본 선생님들은 알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하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다.
그것이 빠르고 확실하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아이는 성장하지 못한다.
언제나 엄마에게 의지하게 되고
스스로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아이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아이가 선택하고
아이가 책임지게
해주어야 한다.
속이 터져도
속에서 열불이 나도
아이가 스스로 하게
기다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필이의 교육방침이다.
아니 삶의 방침이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맡길 것이다.
하지만 두려운 것은,
만약 한 번이라도 더
이런 경험을 갖게 된다면
아이는 좌절하고 만다.
다시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좌절해버릴까 두렵다.
아이를 믿지 못하게 될까
두렵다.
아이를 믿지 못하면
결국 아이는
스스로 일어서지 못한다.
걸으며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
이것이 진실이다.
화가 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그 어떤 순간에도
아이를 믿는다고 하고서는
이 일로 흔들리다니!
엄마 자격 실격이다.
터벅 터벅 걷는 걸음 속에
마음의 요동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집에 간다.
아이는 아이방에서
엄마는 엄마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띠릭!
카톡이 온다.
아이에게서 온 카톡이다.
내용이 길다.
지금 이 글보다도 길다.
아이의 이야기가 궁금한가?
나도 궁금하다.
아이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오필리아처럼~
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