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원 벌써 들어왔던데?"
"어, 안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 그거 일단 내 통장에 넣어줄 수 있어? 통장에 백만 원 들어왔다는 거 남기고 싶어서."
"그거 괜찮은데?"
처음이다.
그동안도 장학금 몇 번 탔지만
이렇게 통째로 자신 통장에 넣어달라고 하는 건 처음이다.
이번 장학금에 대한 의미가 남다른가 보다.
까먹기 전에 바로 넣어준다.
아이는 계획이 있다.
엄마, 아빠에게
각각 이십만 원씩 용돈을 준단다.
이십만 원은 자신이 필요한 거 산단다.
문제지랑 기타 필요한 거라나?
남은 사십만 원은
정기예금 통장에 넣을 거란다.
이 정기예금 통장은
독립할 때 사용할 목적으로 조금씩
모아놓은 것이다.
이제 백만 원 조금 넘어 모였다.
이래서 독립을 어찌 하려고.
참.
아무튼,
이 계획의 실천을
자신이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엄마 통장에서
바로 저금하고 아이 몫만
아이 직불카드 통장으로 넣어주었는데
갈수록 자신이 하는 영역을 넓힌다.
짜식!
많이 컸군!
아니 크고 있군!!
기특한 마음에 아이가 말하자마자
바로 입금해준다.
이것이 어제 저녁 상황.
다음날 그러니깐 오늘 아침.
아침밥으로
키위와 참외, 음양수를 마시며
식탁에 앉는다.
"엄마, 오만 원 권 네 장 있어?"
"있겠냐?"
아이의 뜬금없는 말에 바로 튀어나와 버린다.
사실이다.
요즘 세상에 현금이 어디있는가.
천 원 이천 원도 다 계좌이체가 되는 세상인데
현금이 따로 있을 리가 없다.
"왠지 이십만 원을 현금으로 주고 싶어서. 오만 원 권 네 장을 봉투에 담아서 이렇게 주고 싶다는 말이지."
편지 봉투를 두 손으로 잡고 엄마에게 내미는 시늉을 한다.
아하,
엄마 용돈 이십만 원 이야기인가 보다.
"그래? 그러면 받는 맛이 나긴 하겠다."
현금을 찾으러 가니 마니 이야기하다가
라떼 이야기로 흘러 버린다.
"엄마 때는 첫 월급 타면 빨간 내복 사줬는데, 빨간 속옷 사 드린 것도 같고. 빨간색 속옷 입으면 뭐 좋다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그라면 나도 빨간 속옷 사줄까?"
"푸하하하하하"
"이렇게나 좋아한다고?"
빵 터졌다.
고3 아이가 자기 첫 월급 타서
엄마 빨간 속옷 사줄 생각하다니.
엄마의 터진 웃음에
아이도 덩달아 신난다.
"빨간 속옷 사줘야겠네. 엄마가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우리 그때 칭다오 여행 갔다 올 때 생각나나? 빨간 속옷 입으면 좋다고 백화점에서 빨간 팬티 샀잖아. 아빠 꺼 하고 니꺼 하고."
"어, 용 그림 그려져 있고."
"그래, 그거 아빠도 니도 안 입어가지고 내가 입고 있잖아."
맞다.
빨간색 사각팬티.
기껏 중국 백화점 가서 사온 것인데
안 입는단다.
용무늬가 너무 세다나?
요즘 세상에 빨간 팬티를 누가 입는다나?
결국 부자가 안 입는다고 해서
엄마가 입고 있다.
물론, 집에서!
사각 팬티를 입으면 편하다.
지금은 사각 팬티를 구입해서 입을 정도다.
물론, 여성용 사각 팬티를!
"요즘 빨간 속옷이 있을까? 중국도 아니고."
벌써부터 아이가 첫월급 타서
빨간 속옷 사줄 기대에 부푼다.
빨간 속옷이 없을까 걱정이다.
"용 그림은 좀 그렇고 토끼나 곰이나 귀여운 그림 있는 걸로 사줄게."
아이의 당당한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 맞다. 니 서울에 있을 거니깐. 서울에는 그런 거 많겠다. 빨간색 속옷도 있겠다. 캐릭터 귀여운 거 막 그런 거."
갑자기 눈이 반짝반짝.
아이가 당장 첫 월급이라도 타는 것만 같다.
상상만으로도 왜이리 기쁘지?
이제 고3 아이를!
벌써 첫월급 타는 아이로 성장시켰네?
아이가 어떤 무늬 속옷을 사올까?
상상하는데
입꼬리가 올라간 채 내려올 줄 모른다.
아침 내도록
내 입은 스마일을 유지하고 있다.
언제 내려오려나.
오필리아처럼~
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