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단상] 유통기한 지난 천마차

by 필이

가을입니다.

당당히 가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침입니다.


시원한 아침에

기분까지 좋아집니다.


믹스커피를 마실까?

동백꽃차를 마실까?


차가 담긴 통을 뒤적여 봅니다.

그리고 차를 꺼냅니다.


필이 손에 들린 것은

믹스커피도 동백꽃차도 아닙니다.


콘프레이크 천마차입니다.

율무차 옆에 있던 이 녀석이

필이 손에 들어옵니다.


잊고 있던 녀석입니다.

언제적 것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유통기한 소비기한도

다 지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날짜도 적혀있지 않아

먹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필이는 먹을 것입니다.

그러고 싶습니다.


따뜻한 물을 끓입니다.


천마차 가루를 머그컵에 붓고

따뜻한 물을 붓습니다.


아직 냄새는 괜찮습니다.

오래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보니

먹어도 되겠습니다.


걸쭉해지도록

숟가락으로 젓습니다.


죽보다 묽은

맑은 스프 정도가 될 정도로

젓습니다.


율무차의 고소함과는 또다른

고소함이 필이 코를 자극합니다.


한숟가락 떠서 입에 넣습니다.

아!

티 스푼이 너무 작아 맛이 나지 않습니다.


다시 한 숟가락!

아!


안되겠습니다.

아예 컵을 손에 쥐고 마시기 시작합니다.


아래쪽에 가라앉은 것은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 먹습니다.


아~~~!

맛있다.


콘프레이크 천마차!


사회복지사로 몸담던

성심원에서 처음 알게 됩니다.


어르신들 심부름으로

천마차를 삽니다.


읍에 있는 삼거리 슈퍼쯤 되는

그곳에만 팝니다.


우리 어르신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이

이곳에는 많습니다.


때론 온라인으로 주문합니다.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주문을 해서 사다드립니다.


갈 때마다

천마차를 타주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어르신의 천마차 사랑은

필이의 믹스커피 사랑과 닮았습니다.


허기질 때 먹으면 허기가 사라집니다.

든든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 때 먹으면 힘이 납니다.

어르신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이 사랑한 천마차에

필이도 반하고 맙니다.


어르신 것 주문할 때

필이 것도 주문합니다.


천마차 사랑에 빠질 때쯤

필이는 그곳을 그만 두게 됩니다.


사회복지사라는 일이

필이의 다리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기에

필이에게는 무리입니다.


허리 무릎 손목까지

파스며 보호대를 착용하고


재활치료를 받아가며

즐겁게 일을 하지만


끝은 정해진 것과 같습니다.


짧은 시간!

어르신들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은 필이입니다.


그만 두는 날!

눈이 퉁퉁 붓도록 울 수밖에 없습니다.


차 통 속에 숨겨져 있던 천마차 하나가

어르신들의 사랑을 다시 꺼내줍니다.


엄마처럼 챙겨주시던 어르신들!

그 사랑을 필이는 기억합니다.


엄마처럼 따스하던 어르신들!

그 마음을 필이는 간직합니다.


천마차를 사랑하던 어르신은

이제 필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천마차를 타서 따실 때 먹어라며 주던

그 어르신은

이제 필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죽기 전에 고향 땅 가고 싶다 하셔

함께 강원도를 다녀왔건만

필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이 생과 이별하기 위해 떨어진

그 절벽마저 다녀왔건만

이제 필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르신!

필이를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건강하게만 계셔주십시오!

건강하게 더 오래오래 사십시오!


필이가

다음에 떡 해서 갈 때까지

또 떡 해서 갈 때까지

또또 떡 해서 갈 때까지


해마다 떡 해서 갈 때마다!

그렇게 계셔주세요.


건강하게 그곳에!


유통기한 날짜마저

지났을지 모를 천마차 한 잔이

많은 것을 가져다줍니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