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끼악. 이거 꿈입니꺼

춘자 앞에 나타난 모자 쓴 이는

by 필이

“어서오십시오. 청취자분들에게 인사 먼저 해주시겠습니까?”


앵커는 모자를 쓰고 등장한 이가 자리에 앉아 잠시 숨 고를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인사부터 시킨다. 생방송이라 어쩔 수 없다. 춘자만이 여전히 꿈속에 있는 듯 커다랗게 뜬 눈으로 모자를 쓰고 등장하여 자리에 앉는 이를 바라본다. 단 1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커다란 눈을 감지도 않고 깜빡거림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커다랗다 못해 얼굴만해진 눈으로 말이다.


“안녕하세요. 김선희의 뉴스로 깨우는 아침 청취자 여러분, 솔도밴드에 노래하는 솔입니다.”


아, 꿈이 아니다. 춘자는 여전히 믿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앵커 한 번 쳐다보고 솔님을 한 번 쳐다본다. 꿈 같은 현실을 설명해주기를 기다리며 이번에는 앵커의 입을 쳐다본다.


“특집 인터뷰답게 특별한 분을 한 분 더 초대했는데요. 춘이님이 너무 놀라셔서. 춘이님, 괜찮으세요?”


앵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자세히 보면 눈가에 눈물마저 맺힌 듯하다. 너무 웃어서 맺히는 눈물이.


“아, 야. 아니 네. 괘안십니더. 지가 마이 놀래가지고예. 이게 꿈인가 생신가 싶어갖고예. 아직도 거 머시기냐. 잘 안 믿어지기는 하는데예. 우리 솔님이, 아이고마. 솔님 이름도 못부르겠네. 어째 솔님이 여를. 지가 아직도 꿈인가 싶어갖고…….”


춘이야말로 횡설수설 기쁨이 너무 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여전히 앵커는 웃음이다. 게다가 솔님까지 웃음이 한가득이다. 웃음의 행복이, 행복한 웃음이 스튜디오 안을 가득 메운다. 스튜디오는 행복의 공간이 된다.

“청취자 여러분, 보이는 라디오로 보시는 분들은 춘이님 얼굴이 보이지요? 라디오로 듣고 계신 청취자분들도 춘이님 목소리에서 느껴지실 거예요. 춘이님이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행복한 아침을 함께 열 수 있어서 저도 너무 행복합니다.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이어가보도록 할텐데요. 솔님, 지금 한참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어떠셨나요? 제작진 말로는 흔쾌히 수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뉴스 프로에서 출연 요청이 왔다고 해서 놀랬습니다. 알고보니 우리 춘이님 출연에 깜짝 게스트로 출연하는 거라더라고요? 당연히 와야죠. 춘이님 축하도 해드리고 싶고. 깜짝 놀라게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요.”


이번에는 솔님이 크게 웃는다. 웃음이 판치는 아침인 건가. 웃음이 가득한 스튜디어이기에 그런 건가. 한마디 할 때마다 터지는 웃음에 방송은 시사 프로그램의 특별 코너인 ‘화제의 인터뷰’가 아니라 주말 저녁 웃음을 책임지는 예능 프로그램인 것만 같다.


“바쁘신 중에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도 늦게까지 촬영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른 시간 나오기 쉽지 않았을텐데요?”


“아,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새벽에 자고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는 편이라. 우리 일이 그렇기도 하고요. 밤 촬영은 괜찮은데 이렇게 이른 아침에 촬영하는 건 좀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춘이님 만난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서 왔어요.”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시는데요. 춘이님? 괜찮으시죠?”


춘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음을, 괜찮지 않지만 괜찮음을, 답한다.


“춘이님 저서, 《목욕탕으로 가는 길》 추천사를 써주셨더라고요? 어떻게 추천사를 써주게 되셨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저도 궁금하고요.”


“언제였죠? 춘이님?”


솔님은 춘이를 바라보며 묻는다. 춘이는 솔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생각이 멈춰 머리가 하얘지는 현상을 겪고 만다. 아니다. 솔님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미 춘자 머리는 하얀색으로 변하고 만다. 이제야 제빛으로 돌아오고 있는 머리에 눈 마주침으로 또다시 하얗게 변하고 만다. 그러니 답을 할 수가 없다. 애시당초 솔님은 춘자에게 답을 구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작년, 아니다. 재작년 콘서트였죠? 콘서트 마치고 팬 사인회를 했는데요. 춘이님이 마지막에 사인을 받으셨죠. 그쵸? 그때 글을 쓰고 있다고 책 나오면 추천사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써드린다 약속했지요. 진짜 책이 나온 거예요. 그러니 당연히 약속을 지켜야죠. 다른 책과는 다르잖아요? 우리 이야기로 시작하는 책인데 당연히 써드려야지요. 아니, 추천사를 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마지막에는 의도적으로 춘자 쪽을 향해 말을 한다. 이번에는 춘자 얼굴이 벌겋게 변하기 시작한다.


“팬과 한 약속을 지키는 아티스트, 아티스트를 통해 삶을 다시 살게 된 팬. 두 분의 이야기가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네요. 그럼 이번에는 책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볼까요? 솔님은 추천사를 쓰셨으니 《목욕탕으로 가는 길》을 당연히 읽으셨을텐데요. 읽고 어떠셨나요?”


“추천사에도 썼는데요. 춘이님 일기장을 살짝 엿본 느낌? 춘이님의 솔직함이 그대로 담겨 있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이 목욕탕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기에 다녀오면 춘이님이 느낀 것처럼 몸도 마음도 다 치유될 것 같고요. 오래전에 아버지와 목욕탕 가던 생각도 났어요. 아, 실제로 이 책 읽고 나서 아버지와 목욕탕을 다녀왔어요.”


“네? 책을 읽고 느낌을 바로 실행하신 건가요?”


“그렇다기보다는, 추천사를 쓸 때는 대표글을 보내주셨어요. 출판사에서요. 전체를 다 읽지는 못하고 쓰게 되었거든요. 책이 나오고 선물로 주셔서 전체를 읽게 되었는데, 때마침 본가에 갈 일이 있어서 갔다가 또 때마침 아버지와 시간이 맞아 같이 목욕탕을 다녀왔던 거예요.”


“어떠셨어요? 아버지와 목욕탕을 다녀오신 기분? 아버지가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요?”


“네, 아버지가 해가 서쪽에서 떴냐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좋아하셨어요. 제가 등도 밀어드리고. 목욕 마치고 바나나 우유까지! 어릴 때 생각도 나고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춘이님? 괜찮으신 것 맞죠?”


“야, 괘안십니더. 좀 마이 놀래가 인자 좀 괘안아지는데예. 그게 또 이래 심장이 막 뛰고 그라네예.”


스튜디오는 여전히 넘쳐흐르는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시간은 무지개 위에서 미끄럼틀을 탄다. 어느새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인이 들어온다.


“마지막 질문만을 남겨 놓고 있는데요. 춘이님, 앞으로 계획 청취자분들에게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야, 아까 말한것맨치로 《목욕탕으로 가는 길》 다음 이야기가 또 책으로 나옵니더. 거도 우리 솔님이 추천사를 써주신다고 해가 참말로 감사하고예. 그라고 지가 꿈꾸는 게 있는데예. 우리 솔도밴드 분들하고 북콘서트를 하는 겁니더. 솔도밴드 분들 노래도 듣고 춘이 책 이야기도 나누고 하는 그런 북콘서트예. 그거 하는 게 지금 제 꿈입니더. 그거를 꼭 하고 싶습니더.”


“솔님이 대답해주셔야겠는데요?”


“춘이님과 함께 하는 북콘서트 좋습니다. 춘이님이 책을 멤버 모두에게 선물주셨거든요. 멤버들도 이 책 다 읽었다고 언제 한 번 이야기한 적 있었어요. 책 내용이 너무 좋다고. 춘이님 글에 빠진 거죠. 우리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도 감동이고 책 사이사이에도 우리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함께 북콘서트 한다면 우리가 영광입니다.”


또다시 춘자의 머리는 하얘지고 얼굴마저 하얗다 못해 누런빛이 난다. 무지개 위에서 미끄럼틀 타던 것은 시간이 아니라 바로 춘자다. 춘자는 지금 무지개 위에서 미끄럼틀 타고 우주에서 춤추며 노래한다. 기쁨이 너무 커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은 기쁨이 우주로 날아오른 것이다. 우주에 떠도는 모든 별들이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반짝이며 춘자를 축복한다.


춘자와 솔도밴드가 함께 하는 북콘서트! 정말 이루어질까? 또한번 꿈꾸는 춘자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