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어둠 속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너

by 필이

아들아,

서른 두 번째 편지를 쓴다.

이 편지가 몇 번째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구나.

우리 그런 거 예견하지 말고 살자.

너무 정해놓고 살면 피곤한 것 같아.

그치? ^^


엄마는 새벽 3시쯤 깨었단다.

피곤이 덕지덕지 붙은 기분에 다시 누웠지.

잠은 오지 않고 눈만 감고 있었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소리가 들리더구나.

거실로 나가보니 네가 씻고 있는 소리임을 알게 되었다.


분명 6시 50분 버스라고 했는데,

그래서 엄마에게 5시 40분에 깨워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시계를 잘못 본 것인지 몇 번을 확인해야 했다.

시계는 맞더구나.


의아한 채로 우선 미지근한 만들기 물을 위해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잠시 후 네가 씻고 나오더구나.


"엄마, 문자 봤어?"


첫마디가 이것이었다.

문자를 봤을 리가 있니.

물소리에 일어나 바로 나왔는 걸.


그제야 문자를 확인한다.

기숙사 배정 시간이 11시라고 버스를 5시차로 바꾸었다고 되어 있더구나.

네가 스스로 일어나 챙기겠다는 말과 함께.


네가 한 말처럼 넌 스스로 일어나 챙기고 있었던 거다.

이것참.


당겨진 버스 시간에 엄마도 조금 빠르게 움직인다.


해가 뜰 생각도 하지 않는 어둠 속에 우린 출발한다.

손을 꼭 잡고서 말이다.


왼손으로는 장갑을 낀 채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장갑을 벗고 맨손인 채 너의 손을 잡고.


멀지 않은 길이라 금방 도착했지.

여전히 어둠인 세상에 시외버스 터미널만 불이 켜졌더구나.


터미널 버스 대기석에 앉았다.

버스가 서는 곳에 간이역처럼 작게 만들어진 곳.

이곳엔 너와 엄마, 둘뿐이었다.

엉덩이가 따듯한 게 좋더구나.


손을 꼭 잡고서 있는 잠깐의 시간.

무슨 말을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구나.


아,

하늘 이야기를 했다.

하늘을 보고 사는 것에 대해서.


하늘을 안 보고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도 살 수 있는 건가하며

대답을 필요로하지 않는 말들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버스가 왔다.

넌 버스에 오르고

엄마는 네가 보이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창문마다 커튼이 내려져 있어 커튼 틈 사이로 너를 찾았다.

넌 맨 끝자리에 앉았더구나.

다행인지 커튼이 걷어져있어 너도 엄마를 보았지.


엄마는 손을 흔들고 폰으로 너를 담았다.

너도 손을 흔들고 엄지척을 하고 있더구나.


너의 엄지척.

언제나 함께 해주는 너의 마음.


시외버스는 너를 태우고 새벽 고요를 가르며 떠나갔다.


너를 쫓아가듯 얼른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지만 네가 탄 버스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여전히 어둠인 길을 이번에는 혼자서 운전하며 와야 했다.

불을 켜놓고 갔으니 집은 밝음이다.

그럼에도 불 꺼진 네 방은 어둠이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네 방 불도 켜놓고 갈 걸 그랬을까?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태엽 감긴 인형처럼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방으로 왔다가 다시 거실로 갔다가.

네 방을 들여다 봤다가 다시 방으로 왔다가.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가 다시 방으로 왔다가

커피포트에 물이 다 끓었음을 알고도 뭘 해야 할지 멍한 채로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아니 느끼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일기장을 펼치고 글을 쓰는 순간,

눈물이 떨어지더구나.


어쩌면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없었던 것은

진짜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밀어놓은 방어기제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물살 터지듯 터져버릴까 봐.


아직은 아니다.


넌 서울 연세대로 오티를 갔을 뿐이다.

그 여정이 2박 3일일 뿐이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아닌데

아닌 걸 아는데


이놈에 눈물은 왜......


그건 아무래도 새벽이어서 그런가 보다.


네가 일어나 떠난 시간이

너무도 어두운 새벽이어서 그런가 보다.


네 스스로 일어나고 네 스스로 챙기고

네 스스로 버스 예약 다 해서

네 길로 가는 너!


너무 예쁜 아들이라 눈물난다.

엄마의 부족함 때문에

아픈 엄마 때문에

너무 빨리 커버린 게 아닌가 눈물난다.


지난 토요일이었다.


싱어게인 4 전국투어 콘서트 첫 시작인 <부산>콘에 가게 되었다.

공연도 보지 않는다는 네가 엄마와 같이 간다고 했지.

왜냐고 물으니 넌 이렇게 답했다.


"엄마랑 같이 있으려고. 이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이 안 남았잖아. 난 카페 가 있으면 되니깐 괜찮아."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너를 안은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우린 요즘 시도 때도 없이 허깅을 하지.

"사랑해"를 연발하고.


그래,

네 말처럼 얼마 남지 않은 날,

우리 더 많이 함께 하자.


함께 하는 추억 소중한 기억

더 많이 만들자.


사랑한다. 내새끼야.

잘 다녀와.

엄마도 잘 있을게.

씩씩하게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보고프면 보고픈 대로


너를 생각하며 엄마 할일 잘 해내며 살고 있을게.


사랑한다. 내 새끼야.

잘 다녀와.



2026년 2월 11일
수요일 아침 7시 49분

결국 쓰고야 만다.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더구나.

보고픈 대로
사랑하는 대로
표현하며 살련다.

예쁜 내 새끼.
사랑하는 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