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엄마]새벽 4시! 서로가 다르게 깨어있는 시간!

by 필이

새벽!

시간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 3이라는 숫자이지만


분을 가리키는 숫자가

이미 50을 넘고 있으니


이것은 4시 가까운 시간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맞겠다.




새벽 4시 가까운 시간!


깬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다시 눕는다.


방문 얇은 틈으로

불빛이 강하게 들어온다.


이건 분명

거실 불이 밝혀 있는 것이다.


아이가 불을 끄지 않고

자러 간 것이 틀림없다.


엄마가 본 마지막 아이 모습이

거실에서 인쇄를 하고

원서를 챙기는 것이었으니


이것은 합리적인 의심이다.


방문을 연다.

불을 끄기 위함이다.


"아, 놀래라!"

"아, 깜짝이야!"


동시에 놀라는 소리가 터진다.


방문을 여니

거실 한복판에 아이가 있다.


엄마는 이 시간에

더군다나 거실에

아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한다.


아이 또한 이 시간에

엄마가 깨어

방문을 열 거라는 생각을 못한다.


서로 생각못한 일이 벌어지니

각자 놀라고 만다.


"이 시간까지 안 잔 거야? 어제 거의 다 했다면서?"


걱정이 묻은 목소리다.

새벽이라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오프라인 접수 다 한 거고, 이건 온라인 접수하는 거."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아이의 목소리.

라고 하기엔 기쁨에 찬 목소리다.


"온라인 접수까지 다 끝냈다. 원래 하기로 한 학교는 8군데인데, 1군데 더 했다. 혹시 모르니깐!"


긴장하고 중요한 일을 끝마친 것이다.


다시 확인하고 필요하면 수정도 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서 접수를 마쳤다는

홀가분함이 목소리에 묻어있다.


새벽 4시에 들리는 목소리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신남까지 묻어 있다.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목소리로 들린 것은

아마도 엄마의 자책에서 들린 목소리인 게다.


엄마가 대학에 대해서 알아야 한단다.


아이가 갈 수 있는 대학,

갈만한 대학, 알아보고 비교하고

아이에게 추천도 해주고 해야 한단다.


엄마는 이런 것에 젬병이다.


아이가 행복한 길,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단,

엄마가 해주는 것은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오직 한 길만을 가르쳐주는 세상에

오직 한 길만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세상에

그게 아니다고 말해준다.


세상에는

사람수만큼의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게 한다.


스스로 느끼게 한다.


그 많은 길 가운데

자신이 행복한 길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선택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는 것또한

아이는 이미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힌다.


엄마의 교육관이 확실하다고 느끼지만!

이것이 필이에게는 옳은 것이라고 느끼지만!


한 번씩 이게 맞나?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우리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다.


"나도 큰 학교 다닐 걸 그랬다. 학원도 다니고. 친구들이 다 끼리끼리 모여서 어울린다. 내가 너무 놀기만 한 것 같다."


오랫동안 괴로워한다.

울기도 한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신나게 놀았단다.

아무 생각없이 놀았단다.


2학년이 되니 공부가 달라진단다.

혼자 하는 것에 한계가 느껴진단다.

벽이 있단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보니

저만치 앞서가는 것으로 보인단다.


친구들은 제각각

끼리를 이루어 다닌단다.


같은 학교 출신

같은 학원 출신


아예 큰 도시의 학교라면

이야기가 달라질까?


작은 시골 학교.

거기에 아이가 다닌 학교는

전교생이 20명 정도 되는 아주 작은 학교!


그나마 황금돼지띠 해에 태어나

울 아이가 다닌 반은 아이들이 5명이다.


1명인 학년도 있어

다른 학년과 통합하기도 한다.


이렇게나 작은 학교에서

중학생이 되면서 면 단위 학교로 간 것이다.


1학년 때까지는

신나게 놀며 즐거웠단다.


2학년이 되어

'실컷 놀았으니 공부 좀 해볼까'


마음 먹고 보니

친구들과의 격차가 느껴지더란다.


학원 하나 다니지 않은 아이라

학원생 끼리 모이는 틈에도 끼지 못한단다.


같은 학교 출신 아이들은

모두 학원을 다녔고 다니고 있으니

그 끼리끼리에 어울리고


자신 혼자 외톨이라는 느낌이 든단다.


이때 잠시 흔들린다.

엄마의 교육관이!


아이를 자유롭게

자연 속에서 키우고 싶었던

엄마의 교육관이 과연 옳은 것인가.


아이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아무 것도 시키지 않고 실컷 놀게 한 것이

과연 잘한 것인가.


오랫 동안 괴로워 하던 아이는

여러 명의 멘토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차차 제 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 공부한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꾸려간다.


그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언젠가 아이가 한 말을 기억한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하고, 공부 하나 안하나 지켜보고 그랬다면, 어쩌면 나는 공부 안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하게 해주었기에

스스로 한 것이라는 것이다.


자유롭게 해주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준 엄마란다.


그것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주었단다.


아!

이걸 무슨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에게서

자신을 잘 키워주었다

듣는 이 기분을!


마음이 울컥한다.


울 아이가 어디 대학에 갈지 모른다.


대학 조차 가라는 말을 하지 않은 엄마다.

대학 가지 않고도

행복한 길이 얼마든지 있다고.


아이는 공부가 좋단다.

새로운 걸 알아가는 게 재미있단다.


이또한 엄마가 공부하라 잔소리 했다면

전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엄마가 잘한 건 맞는 것이겠지?


새벽 4시 가까운 시간!


아이는 남은 온라인 접수한 서류 마저 챙기고

엄마는 다시 자러 들어간다.


"이 서류 잘 가지고 있어야 돼. 만약 합격하면 2월에 원본 서류를 다시 제출해야 하거든. 중요한 서류야! 카이스트에 합격하면 필요없긴 하지만. 아, 카이스트 합격하면 좋겠다."


그래.

네가 가는 곳이 어디든

네가 행복하다면

그것이면 된다.


네 가는 길!

엄마가 마음껏 축복하고 응원하마!


사랑한다.

아이야.




오필리아처럼~

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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