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 언니와 제법 친해진다. 막내딸을 가슴에 묻고 그 충격으로 눈이 멀어버린 언니. 담담히 말하던 그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막내딸인 필이는 짝꿍 언니가 가슴에 담긴다. 그래서인가. 언제나 수영장에 가면 언니를 찾는다. 제일 먼저 언니를 찾아 인사한다.
"짝꿍, 왔어요."
큰소리로 말한다. 수영장에서는 왠지 큰소리로 말해야 할 것만 같다. 언니가 두리번거린다. 짝꿍 필이가 왔음을 알리기 위해 손을 내민다.
"언니, 손. 손잡는다요."
그러면서 언니 손을 잡는다. 처음에 언니의 사연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덥썩은 아니지만 아무 말 없이 언니 손을 잡는다. 그랬더니 언니가 놀란다. 보이지가 않으니 손이 다가가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이후에는 항상 "언니, 손 간다. 손잡는다." 말하고 잡는다.
그러면 언니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손을 내민다. 그리고 손을 꼭! 잡는다. 꼭!
이렇게 인사하는 것이 루틴을 넘어 리추얼이 된다. 루틴은 그냥 반복되는 행동이라면 리추얼은 의식적인 행동이다. 필이의 마음을 담아 인사하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니 '리추얼'이 된다.
요즘은 '짝꿍'이라는 이름에 맞게 단짝이 된다. 서로 마주 오다 만나거나, 레인 끝에서 쉴 때면, 잠시 서서 이야기도 나눈다.
"눈이라도 보이면 남 따라 라도 해볼낀데, 눈이 안비께 하나도 못하겠다."
"남한테 피해나 주는 게 아인가 모르겠다. 피해 안 줄라꼬 이래이래 가로 살살 가기는 하는데."
언니의 레퍼토리는 거의 같다. 눈이 안 보여서 수영을 더 못한다는 것. 그래서 남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된다는 것. 그러면 필이는 늘 이렇게 말한다.
"내도 앞으로도 안 나가고 만날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리는데요. 뭐."
"잘하는 사람들이 다 알아서 피해가니깐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러면 언니는 안심이 된다는 듯 살짝 웃는다.
"그렇제? 알아서 다 가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평생을 빛을 보며 살다가 어느날 어둠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교통표지판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백내장 수술을 한다. 지금도 눈이 자주 침침해진다. 서도밴드 멤버들에게 손편지를 쓰고 싶건만 눈이 금방 침침해져 쉽지 않다. 안 그래도 못난 글씨가 더 삐뚤빼뚤 해진다. 중요한 건 글자가 틀리면 그것을 제대로 맞춰서 수정테이프를 바르고 잘 마무리하는 게 어렵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불편한데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아니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세상을 보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볼 수 없다는 건,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삶이 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이다. 더 큰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것. 내 아이를 내 소중한 아이를 볼 수 없다는 것.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일까. 짝꿍 언니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그래서이다. 더 큰 소리로 반갑게 인사하는 것은.
"참 고맙다. 이래 인사해주고."
"다 인사하는 건데요. 뭐."
"아이다. 내는 눈도 안 비는데 인사 안 해도 왔는가 안 왔는가도 모른다. 그런데 맨날 이래 인사해주이 얼매나 고마운지 모른다."
짝꿍 언니는 인사해주는 필이가 고맙단다. 반갑게 인사하는 필이가 고맙단다. 인사가 뭐 대수라고. 남들 모두에게 하는 인사. 언니에게는 조금 더 살갑게, 조금 더 따시게 할 뿐인 것을! 필이 가슴이 그리 하라 시키니. 필이는 그리할 뿐인 것을!
"짝꿍 언니야, 낼 만나요."
"낼 몬온다. 병원간다."
"그라면 토요일도 안오고, 일욜도 쉬고. 3일이나 지나고 만나네요? 병원 잘 댕겨오고요. 잘 쉬고요. 담주 월요일에 만나자요."
"오야, 고맙다. 니도 잘 있다가 온나."
어김없이 두 손을 꼭 쥐고 헤어짐의 인사를 한다.
"아이고 참, 어디 멀리 가는 사람들 같네."
옆에 있던 요양보호사 언니의 한마디에 웃음이 터진다.
"짝꿍 언니야, 월요일에 만나자요."
"오야. 니도 잘가래이."
우린 한 번 더 진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행복이 필이 뒤꽁무니에 따라온다. 언니에게도 행복이 붙어서 집으로 가겠지?
언니와 어쩌다가 이렇게 친해진 걸까. 초급 레인에서 늘 만나는 분이기에 인사를 한 것이 시작이다. 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 길에 필이랑 짝꿍이 된다. 늘 하는 인사를 할 뿐인데, 언니는 고맙단다. 짝꿍 언니와의 특별한 인연은 이렇듯 작은 인사로 시작한다.
인사에 무슨 힘이라도 있는 걸까? 있다. 인사에는 힘이 있다. 인사는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먼저 자리를 내어주고 자리를 청하는 것이다. 인사를 주고받는 이 작은 행위가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 공간에 언니와 필이가 함께 한다.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로!
월요일에 만나면 백만 배는 더 반갑게 인사해야겠다.
"짝꿍 언니야, 주말에 잘 쉬었나? 내 보고 싶었제?"
앗!
이건 좀 오버다.
아직 보고 싶은 단계는…….
날마다 인사 나누면 언젠가는 보고 싶은 인연이 될지도 모른다. 인사는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니 언니의 공간에 필이가, 필이의 공간에 언니가. 언제가는 들어오게 되지 않을까. 서로의 마음속 공간을 차지하며 그렇게 친해지지 않을까. 인사 하나로 서로의 마음속에 집을 짓는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