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좋아한다. 지리산 천왕봉을 하루만에 오르내린다. 굽이굽이 능선을 따라 낮도 밤도 산에서 보낸다. 겨울의 추위와 봄의 따뜻함이 함께 하는 산도, 한여름 그늘 찾아다니며 오르는 산도, 예쁘게 물들인 가을산도 모두모두 좋아한다. 어느날 산을 오르는데 예전 같지 않은 몸을 느낀다. 산중턱에 다다라서는 그만 주저 앉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더이상 산을 오를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다리 수술을 많이 한다. 양쪽 발목 수술에 왼쪽 무릎 수술까지. 수술 후유증인지 다리가 뻣뻣하다. 기분 나쁜 저림이 따라다닌다. 찌릿찌릿함은 24시간 함께 한다. 마치 전기 통닭구이 오븐에 꽂혀 있는 닭이 된 것만 같다. 발바닥이 가장 전기가 세다. 서서히 약해지다 무릎을 지나고서야 전기는 사라진다. 잘못 스트레칭하다가는 전기가 풀리는 건 고사하고 다리가 뒤틀린다. 전처럼 뛰는 건 어림도 없다. 딱딱한 바닥에서 많이 걷는 것도 안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타협한다. 나 자신과!
산중턱에 주저 앉은 날, 보이지도 않는 정상을 향해 한숨만 쉰다. 그러다 생각한다. 더이상 오르지 못함에 신세 한탄만 할 것인가. 지금 이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것인가. 다시 시작하기로 타협한다. 산중턱에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산을 오른다고 보지 못한 시냇물의 반짝임도 보고 새소리도 듣는다. 정상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잘 다녀오라고 손도 흔든다. 나 자신과 타협하고 다시 세상을 산다.
발바닥을 때린다. 저림이 사라지라고 왜 이렇게 붙어다니느냐며 울면서 호소한다. 그 어떤 치료도 소용없다. 이 녀석은 나와 딱 붙어 살기로 작정한 게 틀림없다. 껌딱지처럼 붙어서는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타협한다. 나 자신과! 이 녀석과 함께 산다. 울어도 때려도 떨어지지 않는 녀석이라면 같이 살 수밖에 없다. 받아들인다. 평생 친구로! 평생 동반자로!
타협이 나쁜가? 아니다. 타협은 지금 이 자리에 순응하게 한다. 포기하고 주저 앉는 것이 아니라, 주저 앉았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한다. 다시 세상을 살 수 있게 한다. 이것이 타협이다.
제시어: 타협
타자수: 1, 005자
오필리아처럼~
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