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의 축복을 꿈꾸며

<마술가게>中 고 엘비스 햄 씨 이야기. 허버트 조지 웰스. 2014

by 꿈꾸는 카프카

이든이라는 앞길이 전도유망한 청년 앞에 어느 날 갑자기 엘비스 햄이라는 이름의 노인이 찾아온다. 정신 과학자인 이 노인은 자신의 유산을 물려줄 사람으로 이든을 선택했다며 그와 함께 식사를 하기를 권유한다. 식사 자리에서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노인은 이든에게 막대한 유산을 상속해주는 대신 자신의 이름을 가져야 할 것을 제안하게 된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두 사람만의 거래는 그렇게 아무 문제없이 성사되는 듯 보인다.

그리고 다음 날. 자리에서 일어난 이든은 자신의 육체가 노인의 육체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전날 식사자리에서 노인에게 받은 약을 탄 음료를 마시고 잤을 뿐. 전날까지도 아무 문제없었던 그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그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흉측한 몰골의 죽음을 앞둔 것 같은 늙은이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든은 끊임없는 절망과 좌절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이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이든이 환각이고 실제 자신이 엘비스 햄인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 것인지 그 궁극적인 시작점부터 그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이에 주위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여 그를 감금하게 되고, 결국 엘비스 햄은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또한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힐 유일한 열쇠라고 할 수 있는 이든에게도 기묘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엘비스 햄이 자살을 선택하기 24시간 전에 그가 마차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것이었다.



요즘 들어 얼른 나이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눈치채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 마침 얼마 전에는 요즘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고 있는 드라마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와 우연히 마주하기도 하였었다.

빨리 나이 먹고 싶어요. 그 나이 되면 덜 힘들잖아요.

이는 극 중에서 20대 초반의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참 버거운 인물로 묘사되는 안쓰럽기가 그지없는 한 여주인공의 입에서 나온 대사이다. 그리고 나는 극 중 여주인공만큼 어리지도, 그만큼 극단적으로 처절해 보이지도 않는 지극히 평범한 30대 중반의 여성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주인공의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마치 내가 그 입에서 그 말을 내뱉고 있는 듯한 이상한 동질감을 느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그 나이'가 된다고 해서 삶의 무게가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벼워지거나 매일매일이 꿈같이 행복한 나날들만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나이'가 된다면 내가 지금 집착하고 놓지 못하고 있는 것들, 온갖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자질구레한 문제들, 끊어내려야 끊어낼 수 없는 질긴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들로부터는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적어도 내가 '그 나이'에 대해 품고 있는 희망이자 기대이다.

요즘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해 주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길 가다 마주치는 동네 할머니들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노인정에서는 일정 시간이 되면 키 작은 할머니들이 손에 무언가 하나씩을 들고 각자의 집으로 하나둘 씩 흩어져가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그때에 마주하게 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그렇게 나를 편안하게 해줄 수가 없다. 나름대로의 성실하고 알뜰했던 하루를 마감하고 돌아가는 할머니들의 뒷모습에서는 그 어떤 급박함도, 조바심도 찾을 수가 없다. 할머니들은 거리를 걸으며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지나가는 길고양이와 마주칠 때도 가던 길을 멈추고 녀석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할머니들에게는 할머니들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그 특유의 사람의 내음이 있다.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냐만은...

할머니들에게서 보이는 '그것'의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을 갖고 있지 못한 내게 있어 그래서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그래서 언젠가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내 또 다른 삶의 목표이자 지향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시기가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런데 이 '고 엘비스 햄 씨 이야기'에서는 '늙음'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은 이런 나의 생각과는 전혀 딴 판으로,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하고 괴기스러운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는듯하다.

앞길이 전도유망한 젊은 청년 이든이 어느 날 갑자기 늙은이 엘비스 햄으로 변하게 되면서 보여주는 그의 태도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을 넘어 가히 절망적이기까지 한다. 상속자가 없는 엘비스 햄은 청년 이든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대신 그는 그의 이름을 갖기를 요구하게 되는데 실은 그것이 그의 '젊음'을 원한 것이었다는 것을 이든은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책의 메시지는 어느 순간 이든이 정말 이든이 맞는 것인지, 이든이 실은 엘비스 햄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이야기는 엘비스 햄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한 것인지를 혼동하게 되는 차원으로까지 이끌고 감으로써 우리에게 결국 이 모든 게 젊음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려주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이 작품을 함께 나눌 것을 생각하면서 작품 하나하나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 나는 과연 아이들이 이 작품에 보일 반응이 어떠할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 그대로 아이들이 공감해 줄 수 있을까.

혹,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자신이 원하는 시점으로 돌아가거나 앞서갈 수 있다면 어느 시점을 택하겠냐는 질문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대다수의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다.

미래로 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 상태가 좋거든요.
어른이 되면 피곤한 일들이 많을 텐데 굳이 미리 가보고 싶지 않아요.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고 지금의 상황으로부터 변화를 꿈꾸고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던 내게 아이들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다. 그리고 어른으로서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타성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 너희들이야말로 정말 참 인생을 살아가고 있구나... 난 왜 그 시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내가 지금 처한 매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아는 너희야말로 정말 인생의 선생님이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여전히 선생님은 '할머니'를 꿈꾸고 있다고 말한다면 아이들에게 쓴소리 깨나 들으려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선생님은 얼른 할머니가 되고 싶구나. 얘들아... 먼 훗날, 선생님이 할머니가 되고 너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 힘들겠지만 다시 한번 너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 내가 너희들 입에서 지금과 똑같은 대답을 듣게 된다면 그때 선생님은 정말 행복할 것 같아. 그리고 할머니가 되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지금 이 상태가 좋아요. 지금이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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