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간 낙타>. 고희선. 2013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고난의 장벽 앞에 무너지고 쓰러지는가. 그때마다 우리는 때로는 그것에 자신 있게 맞닥뜨릴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진작부터 그 낌새를 감지하고서는 애초에 그것으로부터 멀리 도망가버리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그동안의 나는 두 가지 방법 중에 대개 두 번째 방법으로써 내게 엄습해오는 두려움, 불안감 등에 대처해 왔던 것 같다.
내게 두려움이란. 맞서 싸워 이겨내기보다는 그저 회피하고만 싶은, 부정하고만 싶은 감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맞닥뜨려야 했던 그 숱한 두려움의 순간에는 실제 나 혼자만의 힘으로만은 해결할 수 없는 속성의 문제들이 꽤나 적지 않았었던 것 같다. 하나 내게 있어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죄악시되는, 부끄럽고, 수치스럽기만 한 마치 내 치부를 들켜버리는 것과 같은 문제와도 같이 다가왔었다.
그런 내가 어느 날 우연찮게 만나게 된 이 동화는 '두려움'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 또한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 것이 최선일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끔 한 계기가 되어주었다.
어느 마을에 용감한 낙타라고 불리는 어린 낙타 한 마리가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용감한 낙타에게는 한 가지 무서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물이었다. 그런 어린 용감한 낙타가 17살이 되던 해. 어린 낙타가 살던 마을에 오랜 가뭄이 들게 되면서 마을 낙타들이 굶주림과 목마름에 허덕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용감한 낙타의 스승 낙타는 용감한 낙타에게 마을의 낙타를 대표하여 마을에 물을 가져다줄 수 있는 '하늘 물이 담긴 구슬'을 구해오라고 명하게 된다. 하지만 물이 무서웠던 용감한 낙타는 이를 거부하게 되고 결국 나이 많은 스승 낙타가 용감한 낙타를 대신하여 길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얼마 뒤, 스승 낙타가 길을 나서던 중 다쳐서 다시 마을로 되돌아오게 되고 이에 용감한 낙타는 스승을 대신해 자신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물을 마주해야 한다는 큰 두려움을 안은 채 '하늘 물이 담긴 구슬'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험난한 가시덤불과 커다란 숲은 거쳐 용감한 낙타는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바다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용감한 낙타는 바다 옆 모래사장에서 파도에 떠 밀려와 거의 죽어가고 있는 돌고래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죽어가고 있던 돌고래는 용감한 낙타에게 자신을 바닷가로 밀어달라고 애원한다. 돌고래를 바닷가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물을 몸에 적셔야만 하는 상황에 용감한 낙타는 돌고래의 부탁을 들어줄지 말지 고민하게 되지만 결국 무서운 물과 맞서가며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그 보답으로 돌고래는 용감한 낙타에게 낙타가 찾는 구슬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게 된다. 그곳은 바다 깊은 곳에 있다는 '붉은 산호 동굴 안'이었다.
구슬을 구하기 위해선 바닷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에 낙타는 공포스럽기만 했다.
"걱정 마, 내가 수영을 가르쳐 줄게."
"난 물이 무섭단 말이야!"
"지금 네가 서 있는 곳도 물속이잖아."
돌고래가 다시 깔깔 웃으며 낙타의 앞발을 잡아당겼어요.
"가자! 수영이랑 길이랑 다 가르쳐 줄게."
용감한 낙타는 돌고래를 따라 조금씩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무섭고 떨렸지만, 돌고래가 앞발을 꼭 붙들어 주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슬을 손에 넣기까지 용감한 낙타의 앞날은 험난하기만 했다. 붉은 산호 동굴 앞에는 무작위로 바다생물을 공격해대는 해파리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돌고래는 자신의 죽어가는 생명을 되찾아준 친구 낙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한 몸을 다 바쳐 해파리의 날카로운 촉수로부터 낙타를 지켜내기에 이른다. 그 덕분에 낙타는 무사히 '하늘 물이 담긴 구슬'을 마을로 가져갈 수 있게 된다.
이야기는 이렇게 물로부터의 공포에 굴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던 용감한 낙타의 용기와 낙타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제 한 몸 다 바쳐 희생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돌고래 덕분에 낙타의 과업 성취로 마무리되기에 이른다.
물이라면 세상 무엇보다 두려워하던 낙타가 주변의 도움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나약함과 공포로부터 벗어나 그것을 극복해내고 진정 용기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이 이야기는 분명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부분에 아쉬움이 남았다. 원하던 구슬을 손에 넣고 다시 마을로 금의환향하여 마을에 오아시스를 만들게 되고 나아가 마을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우리의 용감한 낙타. 하지만 그로 인해 다시는 수영을 할 수 없게 몸이 망가져버린 돌고레의 남은 삶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서 나는 잠시 동안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낙타가 물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기까지. 또 그것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구슬을 쟁취해내기까지 스승 낙타와 돌고래의 너무도 큰 희생이 따라야만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두려움'이란 주변의 도움과 응원이 있어야 떨쳐낼 수 있는, 그래서 그만한 희생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만큼은 이견을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것이 실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라면 과연 누군가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떨쳐내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지는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볼만한 일은 아닐까.
나 개인의 두려움을 극복해내고자 다른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개인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과 안녕에 위해를 가해야만 한다는,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과연 이상적인 것이겠냐고 묻는다면, 인생의 팔 할이 끊임없는 두려움과 불안감, 걱정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는 나로서는 일단 그 두려움의 정체를 잘 파악하라고 답해주고 싶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두려움에는 실로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는데, 가만히 잘 들여다보면, 세상 모든 두려움들이 다 떨쳐내 버려야만 할, 극복해 내어야만 할 것들만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사고가 운전을 할 수 없는 어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가 언제 벌어질지 모를 끔찍한 교통사고에 대한 공포 때문에 운전하기를 꺼려하거나 거부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가 단지 신문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 걸맞지 않은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운전을 포기한 그를 무조건 비난할 수 있을까. 하지만 때때로 이러한 사람을 두고 혹자들은 그렇게 겁이 많아, 걱정이 많아 어떻게 이 복잡하고 험난한 현대사회를 요령 있게 잘 살아나갈 수 있겠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이 또한 어찌 보면 한 개인이 기꺼이 지닐 수 있는 정당한 두려움에 우리가 함부로 가하는 정신적 가해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내가 그렇지 않다고 해서 다른 사람까지 그러기를 바라는 것은 그를 위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사지로 내 모는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대부분의 두 려움들은 아주 건강한 방법으로, 혹은 주변의 도움으로 극복되고 해결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특히 한창 자라나는 아이의 경우를 보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두 발 자전거가 무섭던 아이가 뒤에서 꽉 붙잡아주는 엄마를 믿고 조금씩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고,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이 닿는 빙판이 무서웠던 아이가 앞에서 끌어주는 아빠의 손길로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아이는 아주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자신을 얽매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그 아이가 점차 성장해 나가게 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부터는 대개 그 두려움이란 밖으로 드러나기보다는 안으로 깊숙이 침잠해가는 성질의 것으로 바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어린 시절 우리의 앞뒤에서 우리를 이끌어주던 엄마 아빠 대신 험난한 사회 속에 혼자 남겨진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 아빠처럼 우리가 믿고 의지할 존재의 부재는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든 혼자서 스스로의 두려움을 해결해 나가라는 암묵적 강요로 이어지게 되고, 그때부터 우리 어른들의 두려움으로부터의 고군분투는 시작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군분투는 어떻게 하면 우리를 덜 외롭고 힘들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다시 정리해 보도록 하자.
첫째, 만약 이렇게 아무도 손잡아 줄 사람이 없다고 느꼈을 때 두려움이란 녀석이 우리를 엄습해 오게 된다면, 그때 한 번쯤 주변을 다시 되돌아보도록 하는 것이다. 평상시에 몰랐지만 조금만 더 주의 깊게 주변을 살펴본다면, 분명 나와 비슷한 상황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곁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그것을 안으로 감추려들려고만 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 누군가와 터놓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눠본다면, 실제로 그 고통의 무게가 전보다 가볍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당신이 과거의 그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이라는 것에 자책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은 미성숙한 존재만이 갖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심지어 눈감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많은 무양의 두령무과 맞서다 이 생애를 마무리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스스로가 두려워하고 있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그 앞에 움츠러들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는 우리 안에 내재한 두려움이란 감정을 적대시하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이 나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니라 나를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내 삶의 터닝포인트를 발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다뤄나가느냐에 따라 두려움은 우리의 삶을 더욱 깊이 있게도, 혹은 더욱 얄팍하게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각박한 세상을 오늘도 험난하게 헤쳐가며 살아가고 있을 어른들이여... 우리 더 이상은 두려움 앞에 무조건 승복하지는 말기로 하자.
이것이 지금도 끊임없이 두려움과 마주하면서 용감하고 싶은 낙타가 행여나 어떠한 두려움 앞에 떨고 있을지 모를 당신께 바치는 험난한 바다를 건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