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특별하단다>, 맥스 루케이도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내가 어떤 존재인지,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아예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우리가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분명히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실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나를 사는 건지, 내가 시간을 살아가는 건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운 그 순간에도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 표정, 말, 그리고 생각들은 끊임없이 나를 자극해 온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거나 아주 가끔은, 정말 아주 뜸할 정도로 가끔은 포근한 위로가 되어 작은 내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아주기도 한다.
타고나기를 어릴 적부터 지극히 예민하고 어찌 보면 외골수처럼 보일 수도 있는 구부러질 줄 모르는 직선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내게 있어, 타인의 시선이란 어쩌면 30년 넘는 내 인생을 지금 이 자리에 가지 이르게 한 원동력 아닌 원동력이 되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이때, 여기서 이르는 '타인'의 범주를 가깝게 한정시켜본다면 가장 먼저 나의 '엄마'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여자 혼자 몸으로 나를 키운 엄마에게 있어 나란 존재는 기댈 곳 없는 엄마의 유일한 희망이자 세상과 연결되는 최후의 끈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가 원하는 그 시선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아니, 그러기를 내가 택했었고) 그러기 위해 참으로 나는 부단히 도, 지독히도 그렇게 앞만 보며 내 앞에 정해진 길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왔었다. 그리고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때 즈음엔. (인정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엄격히 말해 결국 엄마라는 존재 역시 내게는 '타인'의 범주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즈음엔, 불행히도 나는 너무나 지쳐 있었고, 그 볼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린 심신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기엔 난 너무나, 꽤나 오랫동안 그 미련한 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깝게는 엄마로부터 시작된 '타인의 시선'은 늘 나를 '000한 아이', '000한 딸','000한 사람'으로 규정지었고, 알게 모르게 나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내가 아닌 나'에 종속되어 그 헤어 나올 수 없는 틀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30년 가까운 삶을 지탱해 와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참으로 다행인 것은...
내 인생의 전반적인 틀을 바꿔놓은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던 '결혼'문제에서만큼은 내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온전한 '나의 시각'과 '나의 판단'으로 진정 나를 위한 결정과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그렇게 두렵지만 용기 낼 수밖에 없었던 그 결혼을 계기로 그것이 가져다준 평온함과 안정감 속에서 이제는 예전보다는 제법, 꽤나, 그럴듯하게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나' 자신의 주체적 의지로써 지금 내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선택 하나하나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직까지도 온전히 나의 전적인 의지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고는 할 수는 없기에 나는 아직도 불완전하고, 미성숙하고,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였을까. <너는 특별하단다>의 주인공 펀치넬로가 내게 아프지만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이.
나무로 만들어진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는 나무인형인 '웸믹'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언덕 위에 하는 목수 엘리 아저씨가 만든 인형들로 이들은 하루 종일 서로의 몸에 금빛 별표, 잿빛 점표를 붙이며 다닌다. 여기서 금빛 별표란 타인이 보내는 칭찬, 긍정, 부러움, 존경 등을 나타내며 잿빛 점표란 이와 반대되는 비난, 무시, 멸시, 부정 등을 나타낸다. 이러한 웸믹들 사이에서 펀치넬로란 아이는 말투가 우스꽝스럽다, 걷는 게 이상하다는 이유들로 다른 웸믹들로부터 자꾸 잿빛 점표만을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펀치넬로는 어느새 자신을 '못난 사람'으로 규정짓게 되고 어쩌다 어울리는 사람들도 자기와 같은 잿빛 점표를 붙인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려고 한다.
그러던 중 펀치넬로에게 변화를 가져다 줄 존재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루시아'와 '목수 엘리 아저씨'였다. 루시아는 몸에 어떠한 표도 붙이고 다니지 않는 웸믹으로 이를 보고 의아해하는 펀치넬로에게 그녀는 자신은 늘 엘리 아저씨를 찾아가 만나고 온다며 펀치넬로에게 그를 찾아가 볼 것을 권유한다.
몇 번의 고민 끝에 용기 내어 엘리 아저씨를 찾아간 펀치넬로. 풀이 죽어 나타난 펀치넬로에게 그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고 붙이는 표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결국 나 스스로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게 되면 자기 역시 루시아처럼 몸에 표를 달고 다니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펀치넬로는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지만 엘리 아저씨의 말을 믿게 되는 그 순간, 거짓말 같게도 펀치넬로의 몸에서는 붙어있던 잿빛 점표 하나가 바닥으로 '뚝'하고 떨어지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많은 잿빛 점표를 불이며 살아가고 있을까. 이 동화를 접하면서 나는 씩씩하게 자신의 몸에 붙은 잿빛 점표를 떼어내지 못하는 펀치넬로의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은 모습인 것 같아 그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도 말하듯이,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타인이 보내는 시선, 평가, 말들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우리 자신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온전한 '나'를 이야기하고, 나'란 사람에 대해 정의 내리고, '나'의 행복을 논할 수 있는 자격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부여된 특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꽤나 많은 부분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 안에 '나'를 잘못 규정지은 채, 그 안에 나를 가둬가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날 내가 그랬듯,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도 우리는 잿빛 점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실상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스스로가 만들어낸 나의 잿빛 점표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은 펀치넬로가 엘리 아저씨의 말을 믿는 순간 펀치넬로의 몸에서 잿빛 점표를 떨어뜨리게 하면서 끝을 맺지만. 그 뒤에 이런 이야기를 더 붙여주면 어떨까.
'며칠 뒤 몸에 아무 표도 붙이지 않고 엘리 아저씨를 찾아온 펀치넬로가 그에게 말했어요. "아저씨, 이제는 아저씨를 찾아오지 않아도 나는 슬프지 않아요. 제 눈엔 이제 아예 점표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거든요. 전 이제 제가 만든 이 하트표만을 붙이고 다녀요. 그러니 이젠 걱정 마세요. 저 혼자 스스로도 잘 해나갈 수 있을 테니깐요. 아저씨 말처럼 저는 특별한 존재니깐요..."'
이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살아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특별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일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