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고픈 당신에게.

<옆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이지현. 한길사. 2003

by 꿈꾸는 카프카

'쿵 쾅 쿵 쾅'

오전 10시. 이른 시간부터 달갑지 않은 망치 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뭐지? 아침부터...'

그러다 말겠지 하며 금방 멈출 줄 알았던 망치 소리는 이런 내 기대에 보란 듯이 이내 전동드릴 소리까지 동반하며 한참 동안을 그렇게 내 신경을 자극해 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렇게 한참 동안의 소음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 그제야 어제저녁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 있던 안내문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6월 1일~6월 15일까지 309호 인테리어 공사가 있습니다. 소음이 발생해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마무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뿔싸! 그게 309호였구나. 무관심하게 흘려보았던 그 안내문구의 당사자가 우리 바로 아랫집이란 걸 알게 된 건 기어코 그 어마 무시한 소음을 다 겪어내고 난 뒤였다. 그나마 그 와중에도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건 공사를 하는 곳이 우리 집 아래층이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위층에서 공사를 했다면 아마도 지금 느끼는 소음보다 적어도 곱절은 더 크게 그 소음을 당해내야 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소음이라면 아무리 시끄럽다고 한 듯 우리 동에서 우리 집에서만큼은 별다른 할 말이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다름 아니라 2년 전, 나는 이 아파트에 새로 신혼살림집을 꾸리게 되었는데 그때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을 하면서 이사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금 공사를 하고 있는 아랫집이야 간단한 인테리어 공사 정도라지만 우리 집은 30년 가까이 노후된 아파트의 내부 구조를 전면 뒤바꿨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공사를 단행했으니... 그때 이웃집 사람들이 감당해내었어야 할 불편함이야말로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아무리 아랫집에서 시끄럽게 공사를 한다고 한들 그것은 우리에게는 당연히 감내해야 할 숙명과도 같은 절차와도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리 마음을 비우고 소음을 받아들이고 있자니 거짓말처럼 처음만큼 소음이 못 견딜 만큼의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흐르고 점차 소음에도 적응이 되어갔는지 문득 아랫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새로 이사를 올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주로 소형평수 위주인 우리 동 특성상 4명 이상의 대가족보다는 우리 같은 신혼부부나 아이 하나 정도 딸린 소가족 위주의 사람들이 이사 올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당장 옆집 살고 계시는 노부부와도 인사 몇 번 나눈 게 고작인데 하물려 아랫집 걱정이라니... 나답지 않게 이게 웬 오지랖이란 말인가.

물론 처음에 이 곳에 이사 왔을 때 그간의 공사로 인한 소음과 먼지를 묵묵히 버텨냈을 옆집의 불편과 노고에 미안한 마음에 떡과 과일을 들고 몇 차례 인사를 간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그 이후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가끔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면 가벼운 인사를 나눌 뿐. 우리 부부는 뭐가 그리고 바빴는지 옆집 분들과 그 흔한 다과시간 한번 갖지를 못하고 살아왔다.

어느새 옆집과는 그저 한 동의, 한 층의, 한 복도를 같이 나눠 쓰고 있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의 관계도 아닌. 그저 또 다른 타인의 일부로서 무심코 그들을 흘려보내 왔던 것이다. 안 그래도 집 밖을 나서면 내가 아닌, 우리 가족이 아닌 그 모든 사람은 다 적이 되고 경쟁자가 되고,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 각박한 세상에 나는 뭐가 그리도 두렵다고 이토록 두터운 방어막을 치고 살아왔던 것일까. 새삼 지금의 내 모습이 언제 이렇게나 삭막해졌나 싶은 생각에 스스로가 낯설게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어디 나만의 모습일 뿐일까.

아마 적잖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활에 쫓겨 타의적으로, 혹은 개인의 철저한 취향이나 기호에 따른 자의적 선택으로 이웃과의 소통을 나눌 새 없이, 혹은 그것을 거부하면서 각자만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와 우리들에게, 보란 듯이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하게 도시 속의 고독을 자초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꼬집고 있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성악가가 직업이어서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꼬꼬닭은 어느 날 옆집에 누군가 이사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옆집은 누가 사는지 안 사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늘 조용하기만 하다. 특히나 낮에도 꿈쩍 않는 이웃집이 의심스러웠던 꼬꼬닭은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옆집에 사는 이웃이 도둑일 거란 추측을 하게 된다. 그러다 더 이상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꼬꼬닭은 용기 내어 이웃집에 먼저 손을 내밀어보기로 한다. 이웃집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꼬꼬닭은 이웃을 직접 만나볼 요량으로 이웃집에 직접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옆집에서 날아온 답장에는 안타깝게도 꼬꼬닭이 기대했던 내용이 들어있지 않았다. 답장에는 낮에는 꼬꼬닭의 집을 방문할 수 없다는 이웃의 거절이 담겨있었다. 대신 자기의 집에 밤 9시에 와 줄 수는 없겠냐는 부탁이 담겨 있었다. 이에 꼬꼬닭은 번거로운 것도 마다하지 않고 음악당에 휴가를 내면서까지 이웃집의 초대에 응하기로 한다. 그리고 마침내 약속한 날 밤 9시가 다가온다. 9시에 맞춰 꽃다발을 들고 찾아간 꼬꼬닭을 맞이한 것은 누구였을까? 그것은 바로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올빼미였다. 올빼미는 꼬꼬닭에게 자기가 직접 정성스럽게 담근 생강차를 대접하며 자신의 직업은 시인이고 자기는 낮에 잠을 자고 밤에 일한다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렇게 꼬꼬닭과 올빼미는 한참 동안을 서로 정답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자신의 이웃이 되어주어 감사하다는 뜻으로 올빼미에게 시집을 선물 받은 꼬꼬닭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이 평소에 즐겨 부르든 '내 마음의 노래'라는 노래를 그에게 선사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노래를 듣는 올빼미. 올빼미는 그윽한 미소를 머금는다. 바로 그 노래의 가사는 올빼미가 쓴 것이었다.


새로 이사온 이웃집을 찾아가는 꼬꼬닭
꼬꼬닭을 맞이하는 올빼미 시인

이 이야기에서 꼬꼬닭과 올빼미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양보, 그리고 대화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가졌던 오해와 편견을 하나하나 풀어나갈 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꼬꼬닭 입장에서는 자기가 평소에 그토록 이나 좋아하던 노래의 가사를 쓴 주인공이 바로 올빼미였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아마도 앞으로 이들의 관계가 단순한 이웃 간의 관계를 넘어 더욱 깊고 끈끈한 관계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꼬꼬닭과 올빼미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올빼미를 향한 꼬꼬닭의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조금이나마 이웃에 대해 알아가려는 꼬꼬닭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자기 집에 밤 9시에나 찾아와 달라는 올빼미의 부탁을 꼬꼬닭이 들어주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고 꼬꼬닭은 끝까지 올빼미를 도둑이라고 오해하며 불신과 적대감으로 전과 다름없는 나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저녁에 일찍 잠들어야 하는 자신의 생활패턴을 깨야만 한다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먼저 올빼미에게 손을 내민 꼬꼬닭의 용기가 있었기에 이 둘은 둘도 없는 이웃지간이 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꼬꼬닭처럼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각자의 바쁘고 지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내 몸 하나, 내 가족 하나 제대로 건사하며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에서 이웃에 관심을 갖고 그들과 시간과 감정을 공유해 나간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점점 삭막하게 변해가는 세태 속에 나 역시 그러한 도시인 중 하나로 물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 옛날 어린 시절, 동네에서 뛰어놀며 엄마가 바쁠 때는 이웃집 아주머니 댁에서 따뜻한 저녁밥 한 끼를 얻어먹곤 했던 그 시간이 문득문득 그리워짐은 그 시절이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지난 추억의 한 페이지라고만 여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현관문 밖을 나서면 모두가 적처럼 다가오는 세상이다. 누군가를 제쳐야만 내가 살아남고 가식과 아첨 없이는 버틸 수 없는 경쟁사회에서 내 민낯 하나 마음 놓고 내 보일만한 구석이 없다. 이럴 때 아무 계산 않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나의 소소한 일상을 함께 이야기 나눠 줄 친구 하나. 이웃 하나 있다면 그것도 참 괜찮은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용기 내어 옆집에 문을 두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아는가. 꼬꼬닭에게 올빼미가 그랬듯 우리 옆집에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귀인이 살고 계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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