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도 자동차가 있습니다.

외삼촌 빨강애인, 이현주, 2001.

by 꿈꾸는 카프카

'외삼촌 빨강애인'

이것은 동화다. 동화지만 동화답지 않은 그 제목이 생경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동화이다. 동화같지 않은 그 제목에 어쩌면 우리는 이 작품이 더욱 궁금해질 수 있다. 나 또한 그랬다.

범상치 않은 제목의 이 동화는 외삼촌과 그의 애인이라 불리는 빨강자동차,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한별이라는 아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짤막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알고 보면 우리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환상적인 부분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책장을 덮고 난 뒤에는 이게 무얼까하는 생각에 잠기게끔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현실동화이자 환상동화가 바로 이 작품이다.

혹시나 이 동화가 궁금하여 직접 찾아 읽게 되실 바람직한 독자들을 위해 결말을 뺀 대략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 동화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외삼촌이 자기의 새로운 차라며 빨강차를 가지고 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별이라 불리는 아이는 이 동화의 주인공으로 그러니깐 이 외삼촌이라 불리는 사람에게는 조카인 셈이다. 한별이는 외삼촌의 차를 보면서 어느새 그 차를 동경하게 되고 그것을 애인이라 부르는 삼촌의 모습을 인상깊게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그날 밤... 한별이는 꿈 속에서(이건 지극한 나의 생각으로 이것은 꿈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고 나갔다가 처음 봤지만 예쁜 한 소녀를 태워주게 되고 그러다 미지의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무슨 의미일까?
무엇을 보았을까?


이 작품은 어릴 적 자동차를 처음 접해봤을 어린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법한, 자동차에 대한. 아니 어쩌면 '운전'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에게도 자동차는, 운전은 심상치않은, 특별한 의미의 것이었다. 평화롭고 화목한, 또는 소위 중산층이라 불리는 웬만큼 살만한 가정의 전형적인 표상과도 같았던 자동차와 그 자동차에 탄 온가족의 모습(이때 가족은 아빠, 엄마, 두 아이 정도가 늘 표준처럼 보이곤 했다.) 은 언제나 내게는 늘 꿈꿨지만 절대 닿을 수 없는 그런 사막 속 신기루와도 같은 것이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아니, 어쩌다보니 나의 유년시절 속 가족의 모습 안에는 가끔 나를 태우로 나들이 장소에 데려다줄만한 자동차와 또한 그것을 운전해 줄 사람 자체가 존재하지를 못했다. 그렇다보니 성인이 되기전까지 나에게 '자동차'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그저 나에게는 못난 열등감만을 불러일으키는 지독히도 미운 문명의 이기에 불과하지 않은 것이었다. 늘 완벽해 보이고자 노력하고 애써왔던 내 유년시절에 있어서 그것만큼은, 나로 하여금 늘 다른 친구들의 부모를, 가정을, 그 화기애애함을 탐내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든 날카로운 가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였을까. 그로부터 훨씬 오랜 시간이 지나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이제야 온전한 가정을 꾸렸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제서야 조금씩 '자동차'라는 것이, '운전'이라는 것이 덜 불편하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 같다.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누군가 내게 결혼 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일말의 주저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남편과 결혼 후 처음으로 같이 여행갔을 때 자동차를 실컷 함께 탔을 때'


뭐랄까. 그것은 연애 때와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연애할 때 여자친구로서 조수석에 앉는 것과, 결혼 후 온전한 그의 아내가 되어, 그의 가족이 되어 그의 옆자리를 지켜주는 것은 분명 내겐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의미를 찾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자동차란 것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 언젠가. 20여년 쯤 전이었을 것 같다.

한번은 밤늦게 귀가길에 친구네 아빠차를 얻어 탄 적이 있었다. 그때 난 집까지 가는 30여 분의 시간동안 뒷자석에 홀로 앉아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어느 다정한 아빠와 애교많은 딸의 정다운 대화를 숨죽이며 엿들어야만 했었다. 그때 그들의 그 정다움과 다정함이란 것이 얼마나 날카롭던지... 나는 누구도 뭐라한 적 없건만 분명 그 순간 그 자리에선 그들 사이에 낀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또 한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이후로 난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웬만하면 뒷좌석에 앉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나 조수석에 내가 아는 사람이 탔을 경우엔 더더욱.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이 서른을 넘기도록 그 흔한 면허를 소지하고 못한 이유가. 나이만 먹었을 뿐 속은 아직도 그 시절 '어린 나'. '상처받은 나' 그대로라는 것을 이렇게 나는 실감했다.

온전히 나를 사랑해 줄, 온전히 나를 보호해 줄 그 누군가가, 나의 따뜻한 가족이 운전해 주는 그 차를, 나는 꼭 당당하게, 마땅하게 타고 싶었다. 그게 무슨 미련한 고집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그것은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랑받고 싶었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작은 소망을 이룬 지금,

나는 동화 속 한별이처럼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미지의 터널로 나를 데려다 줄 차를 운전하기 위해 지금 늦은 나이에 차와 함께 고군분투중이다. 한별이와 같은 마음으로 마치 처음인냥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으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떨려오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만 같다. 그래도 이제야 조금씩 정말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그 긴장감과 두려움이 나쁘지만은 않다.

아직도, 그렇게 나는 자동차 앞에서 힘들지만. 여전히 노력 중이고. 앞으로도 노력해 나갈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또 다른 '나'에게 과거의 내가 겪었던 그 설명하지 못할 결핍감만은 남겨주지 않으려 한다. 비록 그 또다른 '나'에게 비싸고 좋은 차를 안겨주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상관은 없다. 그 안에 담긴 나의 사랑과 우리 가족의 충만함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값질테니 말이다.




keyword
이전 08화바람 불어오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