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마을 외딴집에>, 이상교, 2002.
여기, 추운 겨울날, 한 노인과 늙은 쥐 한 마리가 있다. 외딴 마을, 외딴집에 사는 이들은 그 집을 서로 자기 집이라 말하며 각자의 공간에서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 나갔던 할아버지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들어온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쥐'라 부르며 그 '쥐'에게 생선 토막, 김치 쪼가리 등을 나누어주며 '쥐'를 살뜰히 보살펴주기 시작한다. 이것을 엿보던 진짜 '늙은 쥐'.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것 같아 화가 났던 늙은 쥐는 그 '쥐'라고 불리는 녀석을 몰래 내쫓을 요량으로 할아버지가 밖으로 나간 사이 그 '병든 쥐'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세히 가서 살펴보니 그 얄미운 놈이 '병든 쥐'가 아닌 '먼지 투성이 실장갑 한 짝' 이었던 게 아닌가.
어떻게 된 일인지 살펴보아하니, 눈이 어두운 할아버지가 먼지 투성이 실장갑을 병든 쥐로 착각해 데려온 것이었고 늙은 쥐 역시 눈이 침침했던지라 그것을 병든 쥐로만 알아왔던 것이었다. 자, 병든 쥐인 줄만 알았던 얄미운 녀석이 실장갑이었다는 어이없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우리의 늙은 쥐는 여기서 어떤 행동을 결심했을까.
늙은 쥐는 먼지 투성이 실장갑을 내 다 버리고 제가 그 자리에 병든 쥐처럼 웅크리고 앉아있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눈이 어두운 할아버지는 그것이 늙은 쥐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있는 '병든 쥐'에게 계속해서 살뜰히 도 먹이를 가져다준다. 그렇게 '병든 쥐'를 정성으로 보살핀 할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로 늙은 쥐는 날이 갈수록 털이 매끄러워지고 눈빛도 맑아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놀라운 변화를 지켜본 할아버지 역시 볼이 퉁퉁해지고 이마가 불그레해지면서 이들이 사는 외딴집에는 따뜻한 봄의 기운이 내려앉게 된다.
짤막한 한 편의 동시를 읽은 듯한 인상을 심어주는 이 작품은 내게 처음엔 그저 눈이 나쁜 할아버지와 이를 이용해 할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꾀돌이 늙은 쥐간에 벌어지는 재미나고 유쾌한 이야기 정도로 다가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이 작품을 두 번, 세 번 정도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작품 속의 숨은 이야기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이면의 다른 이야기들이 차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얼마나 그저 그런 사람이었는지를, 잠시나마 이 작품을 가볍게 생각했던 자신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미리 작가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 작품에 다시 접근해 보기로 한다.
외딴 마을, 외딴집에 사는 늙은 할아버지와 늙은 쥐는 한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처음에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서로를 자신으로부터 더 철저하게 배제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그들은 인적 드문 외딴 마을의 외딴집에서 살면서 서로 말고는 기댈 사람, 기댈 쥐 하나 없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본체만 체하며 자신의 외로움을 내색하지 않는다. 즉 그들은 서로에게 대놓고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것과 같은 생명체의 가장 본능적인 행위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할아버지와 쥐 앞에 특별히 강조되어 '늙은'이라는 말이 붙었다는 것에도 나는 내 나름대로의 이유를 찾아보았다. 여기서 '늙은'의 의미는 단순히 '늙었다'라는 것 이상의 그들 만이 고수해 온 삶의 방식을 알려주기 위한 하나의 암시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아주, 꽤나 오랜 시간 동안을 보내오면서 외로움에 맞서는 방식으로써 철저한 자기 중심화, 감정 숨기기 등의 방법을 써 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가 먼지투성이 실장갑을 병든 쥐로 오인하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든가 또 늙은 쥐가 대신해서 병든 쥐 인척 했다는 부분에서는 그들의 변장술은 그리 오래가질 못했고, 결국 그들 스스로가 자기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 존재인지를 스스로 고백하게 되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렇듯, 우리도 참으로 많은 시간을, 우리의 감정을 감정이라 느끼지 못한 채, 인정하지 못한 채, 표현하지 못한 채 다른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특히나 그것이 외로움, 고독, 절망의 감정일 때는 더욱이 그 감정은 바깥으로 표출 되지를 못하고 그러한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안으로 더욱 깊게 파고들어가는 역전의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나 역시 그런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자연스레 20여 년 전 초등학교 시절에 처음 만난 내 반려견 '아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내 나이 열두 살 무렵, 집안에 식구라고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밤낮으로 일하기 바쁜 엄마와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딸내미 하나가 전부였던 우리 집에 어느 날 갑자기 강아지 한 마리가 새 식구로 들어오게 되었다. (훗날 이 강아지는 '아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암흑 같은 집안의 적막감을 견디다 못한 열두 살의 과묵했던 이 집의 딸내미인 내가 내린 결정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 적막감을 모른 척할 수 없었던 엄마가 내린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기 앞가림도 완벽하게 못하는 열두 살 어린아이가 뭘 알았겠냐만은... 그래도 어린아이 치고는 이제 갓 생후 5개월쯤 된 강아지를 제법 잘 돌보았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늦게까지 장사를 하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던 엄마를 대신해 나는 '아지'의 유일한 보호자였다. 덕분에 난 그 보호자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이름인지를 열두 살이란 꽤나 이른 나이에 '아지'를 키우면서 조금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완벽한 아지의 보호자 역할을 수행했느냐고 묻는냐면 또 그게 그렇다고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도 천성이 이기적인 사람인지라... 가끔은 불쑥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오는 날이 있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학교에서 지쳐 돌아왔을 때 아지가 온 집안을 똥오줌으로 난장판 쳐 놨을 때가 그러했다. 집에 돌아왔는데 맛있는 간식을 준비하고 엄마가 맞아주기를 기대하기란 고사하고 온통 난리를 쳐 놓은 꼴이라니...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어디에서 부턴가가 설움과 짜증이 복받쳐 와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하기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멈출 줄을 모르곤 했다. 내 기억으로는 너무 화가 났을 땐 집안에 온통 난리를 쳐 놓은 아지를 붙들고 엉덩이를 꽤나 묵직하게 때려주곤 했던 것 같은데 그때 나는 울고 있었을 것이고 그 모습을 보는 아지도 나를 따라 울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아지는 나에게 맞은 게 아파서 울었던 것일까. 아니면 울고 있는 내 모습에 덩달아 서러워져 울었던 것일까. 그건 20년이 지난 지금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과도기도 잠시, 난 당시의 그 수고로움과 고생을 이내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비록 어렸었지만.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생후 5개월이던 '아지'는 5살의 성견이 되었고, 그 사이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그 사이 엄마의 일터가 바뀌면서 '아지'에 대한 양육의 의무는 자연스레 내게서 엄마에게로 이양되어 갔다.
5년 전, 내가 강아지를 집에 들이자고 했을 때 처음에 썩 내키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엄마. 엄마는 천성적으로 무언가를 기르고 보살피는 일에 서툴러 보이는듯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5년 사이, 엄마는 오히려 자신의 딸보다 '아지'에게 더 큰 애착과 관심을 보일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그러한 엄마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나는 새삼 그때 처음으로 엄마도 많이 외로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아지를 들였을 때만 해도 당장 먹고살기에 바빠 엄마는 자신이 외롭다는 사실마저도 느낄 새도 없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엄마에게 죄인이다. 엄마에게 그때 외로움이란 그 감정 자체만으로도 사치스러운 일이었을 텐데 난 어린 나를 혼자 적막감에 내버려두어야만 했던, 그래서 어린 내가 외로움이란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든 엄마를 잠시나마, 아주 잠시나마 그렇게 원망하며 그런 내 운명에 절망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도, 실은 복에 겨운 것이었는데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엄마에게 항상 속 깊고 철든 딸이고 싶었기에, 나의 그런 감정을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내 감정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그로부터 20여 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요즘 들어 자꾸만 아무래도 그때 내 생각이 틀렸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들키지 않았다고, 완벽하게 엄마를 속이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엄마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나의 외로움을 눈치채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렇게 끔찍이도 싫어했던 아지와의 생활도 묵묵히 받아들여주었을 것이며 그러면서 엄마 또한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외로움을 그 안에 숨기고 아지를 대신해 위로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 모녀는 그렇게 한 번도 서로에게 '외롭다'고, 그래서 '힘들다'고, 그러니 '한 번만 따뜻하게 안아달라'고 말해보지 못한 채 기나긴 세월을 함께 해왔다. 마치 이 이야기 속 할아버지와 늙은 쥐의 '병든 쥐'와 같이 우리의 모든 감정과 공허한 가슴을 '아지'라는 존재로 채우려 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보다듬어 가면서 두 모녀는 아지와 함께 2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걸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가족의 끈끈한 연결고리와 같았던 '아지'는 내가 아홉수의 온갖 푸닥거리를 한창 치러내고 있을 스물아홉의 5월 무렵, 우리 곁을 떠나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떠나보내주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나의 손으로 아지와의 인연을 맺었듯이, 아지와의 마지막 이별도 내 손에 의해 가능할 수 있었다. 아지는 강아지로서는 장수를 다한 18년의 생을 다하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을 맞기까지 고통의 시간들이 꽤나 길었는데 이미 16년 차에 접어들면서 눈이 멀기 시작하고, 온몸에 종양이 퍼지기 시작했던 아지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그 몸으로도 2년의 시간을 더 우리 곁에서 버텨내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2년의 시간을 견뎌내 오면서 눈알에까지 퍼진 암덩어리는 아지가 견뎌낼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무섭게 위협하였고,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엄마와 나는 아지가 견뎌냈을 그 고통 이상으로 함께 아파야만 했다. 그런 아지를 붙잡고 끝까지 놓을 수 없었던 엄마를 대신해 나는 아지를 위한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로 결심했고, 눈물과 고통의 시간 끝에 우리는 아지를 위해 아지가 우리 가족이 보는 앞에서 편안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렇게 5월의 햇살이 가득했던 따사로웠던 날에 아지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표정으로 하늘나라로 가는 긴 여행을 떠났다.
아지를 보내고 엄마와 나는 꽤나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했기에, 정말 마음껏 사랑하고, 아껴주었기에, 우리는 우리가 내린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다. 아지 역시 그런 우리의 마음을 이해해 줄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할아버지이기도 하고, 늙은 쥐이기도 한다. 나의 외로움이 들키는 게 무서워 아지를 가족으로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지의 자리를 비우게 한 것도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삶은 늘 외로움이란 녀석과 그렇게 처절하게 싸워오면서, 또 때로는 그것을 핑계 삼기도 하면서 늘 그 속에서 아파하고, 기뻐하고, 절망하고, 환호하면서 그렇게 그 녀석과 부대끼면서 커 나가고,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요즘 같은 화창한 봄날에 정답게 나란히 않은 할아버지와 늙은 쥐의 모습으로 끝난다. 병든 쥐가 실은 늙은 쥐인 줄도 모르고 그 병든 쥐, 아닌 건강해진 쥐와 함께 정답게 살아가는 우리의 할아버지... 과연 그들은 그 후 더 이상 외롭지 않았을까?
뭐, 다시 외로워진다고 해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미 그들은 외로워봤으니...
우리도 외로워봤으니...
그 외로움이 그들을, 그리고 우리를 또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어 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