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린이맘 May 06. 2022

달리기와 태명

살아있음을 느껴보세요


브런치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상도 자랑할 일도 없기에 딱히 올릴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할 만큼에 정보력이나 부지런함도 없다. 이런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것은 무언가 남기고 싶은 욕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하며 느끼는 감정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평범하더라도 별 것 없어보여도 돌아보면 문득 ‘그땐 그랬지’라고 잠깐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일기장. 처음 하는 일이라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작가명, 작가 소개까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중 작가명을 정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나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나라는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다.


태명 지을 때도 그랬다. 남편과 거의 일주일 가까이 고민했다. 초음파사진을 식탁에 두고 앉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태명을 짓는지 찾아보았다. 튼튼이, 쑥쑥이, 열무, 사랑이, 소떡이.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부르기 쉽게, 혹은 태어날 해에 동물이름이 들어가도록, 부부에게 의미 있는 이름이나 각자의 이름을 따서 짓는 듯했다. 하지만 딱히 마음에 와닿는 태명이 없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그 존재의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기에 함부로 지을 수도 없다. 태명이지만 잠깐 쓰이는 이름이라고 아무거나 할 수도 없다.


“우리 하루 정도 각자 생각해볼까? 세 개씩 생각해오기!”

“그래. 좋아.” 남편도 딱히 마음에 드는 태명이 없는 듯했다.


온종일 태명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흔하지 않으면서 의미가 있는 이름. 역시 이름 짓는 일은 어렵다. 결국 세 개의 후보를 정하지도 못하고 반나절 만에 남편에게 솔직히 이야기했다.


“사실 못 하겠어. 너무 어려워.”

“그러게. 되게 쉽게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네. 우리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나?”

“그래도 막 정하는 건 싫어. 의미 있는 태명을 하고 싶은데….”

둘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나 달리고 올게. 달리면서 생각해볼래.”

“알았어. 그러면 여보 달리고 와서 다시 생각해보자.”

그렇게 남편은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남편과 나는 임신준비를 하면서 달리기로 몸 관리를 했다. 남편이 먼저 달리기를 시작했고 나는 두 달 후에 시작했다. 고등학교 체육시간 이후에 정식으로 달려본 적도 없고 잘 하지도 못 해서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달리고 돌아온 남편의 표정이 나를 달리기로 입문하게 했다. 30분씩이나 뛰고 오면 힘들 법도 한데 그 속에서 느껴지는 상쾌한 에너지가 좋아보였다. 남편의 이런 모습을 보고 달려볼까? 하는 마음이 조금씩 커져 시작하게 되었다.


무작정 달리는 것이 아니라 런데이라는 어플의 30분 달리기 러닝훈련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 쉬지 않고 30분을 달리는 것을 최종 목표로 달리기와 걷기를 반복하면서 간격을 두고 달리는 인터벌 프로그램이다. 1분, 3분, 5분, 10분 그리고 최종 30분. 이렇게 달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회차가 계속 될수록 달리는 시간이 늘어나 부담이 되면서도 미션완수 스탬프를 받는 즐거움, 경쟁이 아니라 혼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슬슬 달리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 나의 길을 뛰어주지 않는다. 천천히 걷더라도 스스로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더 이상 제어가 안 되는 팔과 다리, 두근두근 터질 듯한 심장. 너무 힘들어서 못 뛸 것 같은 마음이 쌓이고 쌓여 결국 해냈을 때 느끼는 그 쾌감이란! 아마 달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달리는 중간 어플에서는 힘들만 하면 “조금만 더 힘내세요!, 할 수 있습니다!”와 같은 멘트가 나왔다. 힘들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포기하고 싶을 때쯤 나오는 이 멘트는 다시 나를 달리게 만들었다. 여러 멘트가 있지만 그 중 “살아있음을 느껴보세요!”라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았던 적이 있는가?’ 그저 살아있으니 사는 것이지. 달리기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게 해주었다. 아마 남편도 이 좋은 기분을 나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겠지. 그렇게 세 달 만에 첫 프로그램을 끝냈다. 아직 러닝 어린이인 ‘런린이’이지만 달리기는 나에게 좋은 에너지가 되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신기하게 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임신에 성공했다.  


달리기를 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런린이 어때? 우리가 런린이잖아.”

“런린이? 오 좋다! 근데 나는 인제 런린이 아니야. 졸업했어.” 이제는 달리기 고수가 된 남편이 나에게 웃으며 말한다.


‘런린이’라는 태명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매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아가기를…. 힘들어 켁켁거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린 엄마와 아빠처럼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가기를…. 달리기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아이에게도 주고 싶은 마음에 ‘런린이’라고 지었다. 달리기를 하는 어린이. 이제는 어엿한 이름이 있고 태명을 부르는 일이 더 어색하지만 가끔 ‘런린아~’하고 불러본다.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장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작가명을 찾은 것 같다. 런린이맘. 그렇게 나의 브런치에 작가명이 되었다. 


요즘 부쩍 달리기가 하고 싶다. 조만간 달리러 나가야겠다. 런린이에게 달리기를 하고 돌아와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줘야지. 얼른 런린이가 커서 함께 달렸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들려주고 싶은 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