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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린이맘 May 09. 2022

날마다 새로운 책장

도서관을 더 사랑하게 되었어

아이를 키우는 집 치고 책이 별로 없는 편이다. 보드북 8권과 물려받은 10권의 소전집 말고는 전부 도서관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빌려본 책 중 아이가 좋아하거나 계속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그때 구입한다. 


나와 남편은 사서이다. 사람들이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사서”라는 직업에 대한 명칭이 있음에도 “도서관에서 일해요.”라고 대답한다. 사서라고 하면 잘 모르기 때문에 애초에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앞세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한다. “책 많이 봐서 좋겠네요.”라는 반응! 물론 책을 많이 보기는 한다. 손에 쥐고 읽는 책이 아닌 서가에 배열된 책 말이다. 이걸 두고 책을 많이 봐서 좋다고 해야 하는 건가? 책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하자니 사서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네. 책과 같이 일하는 환경이 너무 좋아요.”라고 대답한다.


아이를 키우니 도서관이 너무 그립다. 사실 육아휴직 하기 전,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임신하고 싶었다. 임신에 성공해 업무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그때 내가 가진 유일한 패는 ‘임신’이었다. 하지만 임신은 생각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힘들어서 임신을 생각할 만큼 나를 힘들게 한 도서관이 왜 아이를 키우며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일까? 육아가 힘들어서 도피처로의 도서관이 그리운 것은 분명 아니다. 아이를 돌보다 힘들면 ‘복직 앞당길까?’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막상 일터로 돌아가면 휴직이 그리워질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시간이 흘러 지나치게 안 좋았던 과거가 미화된 것일까? 아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과거의 힘들었던 내 모습에 넌더리를 치며 머리를 세게 흔드는 것을 보면 이것도 확실히 아니다. 왜? 나는 도서관이 그리운 걸까?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다 읽었어? 반납해도 돼?” 남편이 묻는다.

“응. 다 읽었어. 역시 오은영 박사님이야. 이 책 사자! 두고두고 봐야할 책이야. 반납하고 나는 「어린이라는 세계」’, 아이 책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랑 「사과가 쿵!」 빌려줘”

“까먹겠다. 메시지로 보내줘.” 

“알겠어. 미리 고마워.”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남편이 나와 아이의 책을 빌려다준다. 아이는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워나간다. 사물을 배우고, 동물을 보고, 세상 모든 것들과 마주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아이를 낳은 후 책을 더 많이 읽게 된다. 진득하게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없지만 짬짬이 아이가 자거나 남편이 아이를 돌봐줄 때 읽는다. 끊임없이 읽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은 육아를 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함이다. 물론 아이를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했을 때 남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 대한 기쁨뿐이라면 공허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육아를 하라고 준 휴직이지만 육아를 하면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채우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도서관의 책은 나에게 숨구멍이자 헛헛한 마음을 적셔주는 일상의 단비가 되었다. 나를 하염없이 적시고 힘들게 했던 폭풍우가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였나보다. 


오늘도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남편을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오늘은 또 어떤 책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올까? 아이와 함께 얼른 도서관에 가고 싶다. 아이에게 도서관에 대한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날이 풀리면 유모차를 끌고 동네 앞 도서관에 가봐야겠다. 어쩐지 도서관이 더 그립고 사랑스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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