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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린이맘 May 16. 2022

사라진 요일

변수와 함께 살아가는 법

아이의 일상을 어플로 기록하고 있다. 수유시간, 기저귀 가는 시간, 낮잠‧밤잠 시간을 체크한다. 육아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아이가 따박따박 시간 맞춰 배고파하는 것도 아니고 꼬박꼬박 권장시간대로 낮잠과 밤잠을 자는 것도 아니다. 분명 육아서에서는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으나 현실은 아무리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예측이 가능하다면 육아는 분명 어려운 영역이 아니다. 수많은 변수가 육아를 힘들게 한다. 


이 수많은 변수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며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어플에 아이의 기본사항을 기록했다가 평균을 내어 변수에 대비한다. 어느 정도의 큰 틀은 알고 있어야 변수에 대비하기도 쉽다. 그래서 어플에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동안의 평균에 따르면 아이가 보통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낮잠을 자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40분마다 자꾸 깬다. 다시 눕혀도 자지 않는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피곤해서 징징, 놀아줘도 징징, 안아줘도 징징, 눕혀줘도 징징거린다. 첫 번째 낮잠을 잘 때 화장실 청소를 하고 새로 구입한 이유식 용기를 열탕소독하려고 했는데 결국 하나도 하지 못 했다. 나름 평소 행동을 분석해 최소한으로 나의 할 일을 계획한 것인데 틀어지니 속에서 짜증이 난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태어나고 다이어리를 쓰지 않게 됐다. 다이어리에 그날의 할 일을 적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단 한 번도 계획대로 흘러간 적이 없으니 안 쓰게 되었다. 아니 못 쓴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여보 내일 퇴근하고 두부조림 해먹자. 두부 유통기한 얼마 안 남았어.”

“나 내일 출근 안 해.”

“응? 내일이 무슨 요일이야?”

“토요일.”

“아 진짜? 그렇구나….”


내일 남편이 출근 안 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반갑지만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른 채 살고 있는 내가 그리 좋지만은 않다. 월요일은 한 주의 시작이라 피곤하고, 화요일은 애매한 요일이라 힘들고, 수요일은 절반은 지나왔으니 들뜨고, 목요일은 내일이 금요일이라는 생각에 조금 힘이 나고, 금요일은 평일에 마지막 날이라 기쁘고, 토요일은 아직 주말 하루가 남아서 행복하고, 일요일은 주말의 마지막이라 슬픈 기분을 느꼈던 과거의 나는 없다. 요일이 주는 기분을 잊으며 산 지 오래다. 아이의 기념일이나 예방접종을 하러 가는 날, 남편의 쉬는 날을 제외하고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일요일은 모두 그냥 육아하는 날일뿐이다. 


요일이라는 구심점과 계획이 사라지니 일상이 밋밋하기만 하다. 아이가 오늘 잘 놀고, 잘 자고, 잘 먹어줄 것인지가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변수에 일상의 전부를 맡기며 살아갈 수 없다. 아이를 돌보며 변수로 가득한 일상에서도 어떻게 나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먼저 무엇을 꼭 해야만 한다는 생각 버리기. 아이는 매일 똑같을 수 없다. 그리고 매번 똑같을 수도 없다. 어떻게 아이가 육아서처럼 정석대로 살 수 있을까? 어른인 나도 못하는 일인데…. 변수가 발생해서 계획한 일을 못하게 되면 짜증이 나니 아이에게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사실 화장실 청소와 이유식 용기 열탕은 꼭 오늘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 화낼 이유가 사라진다. 아이가 첫 번째 낮잠을 잘 때 하려고 했던 일이 아이가 일찍 깨는 변수가 생겨 못하게 되면 두 번째, 세 번째 낮잠에 하면 된다. 꼭 첫 번째일 필요는 없다. 분명 그 다음 낮잠에 기회가 올 테니 그때 하면 된다. 잠시 미뤄두고 아이와의 시간에 집중하자.


하루에 한 가지씩 시간 날 때 짬짬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소한 일 하기. 단, 못했다고 해서 화가 나지 않을 것들로. 월요일은 내가 좋아하는 팝송음악 듣기, 화요일은 컬러링북 색칠하기, 수요일은 먹고 싶은 간식 먹기, 목요일은 구독 중인 유튜브 채널 영상 보기, 금요일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쉬기, 토요일은 아침에 가볍게 산책하기, 일요일은 일주일 동안 찍은 아이 사진 남편과 같이 보기. 시간을 많이 내야하는 일도 아니어서 조금이라도 하면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수많은 변수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흔들림 없이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이라도 나를 위한 일을 해야겠다. 변수를 없앨 수 없다면 변수와 함께 잘 살아가는 수밖에. 내일은 또 어떤 변수가 있을까? 살면서 이토록 많은 변수를 만났던 적이 있던가? 어떤 변수가 오더라도 그 속에서 행복을 잃지 않고 사는 내가 되고 싶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사라진 요일의 맛도 다시 찾은 기분이다. 내일은 산책을 나가야겠다. 알록달록 핀 꽃을 보며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마음 가득 행복을 채워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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