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기쁨으로 가득한
오후 네 시. 배가 엄청 고프지는 않지만 살짝 출출한 시간. 간식을 먹으며 배도 살짝 달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갖는다. 오후의 나른함과 다가올 저녁식사 준비로 바빠질 약간의 시간 틈 사이에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간식은 다 떨어져도 상관없지만 간식시간 자체가 없는 건 서글프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시간에 덤으로 간식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시간이 된다.
간식으로는 주로 과자나 쿠키, 빵을 먹는다. 저녁식사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간단하게 즐기려 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비스켓에 잼을 발라먹는다. 임신 때 임당 재검사를 판정받아 관리한다고 통밀 비스켓을 한 박스 사두었는데 다행히 정상 판정이 나와 그날로 먹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관리한다고 과연 당뇨가 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관리를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사둔 것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그냥 먹으면 심심하고 맛도 없으니 잼을 발라 먹는다. 달콤하게 졸여진 잼만큼 하루의 피로가 잠깐 녹아드는 시간. 먹을 것 하나에도 조심하고 신경써야했던 임신 때와는 달리 간식 선택의 폭이 넓어진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중기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하루에 이유식을 두 번 먹이고 있다. 그리고 중간에 간식을 주는데 매번 무엇을 주어야할지 고민이다. 퓨레를 주면 인상을 팍 찌푸리고 그대로 내뱉는 다. 아무래도 강렬한 단맛과 신맛이 아직 입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입맛을 다시다 부르르 몸을 떨고 눈을 찡그리는 모습이 귀여워 자꾸 주고 싶지만 맛에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길까 당분간 자제하고 있다. 그래서 주로 떡뻥이나 치즈를 준다. 떡뻥에도 여러 가지 맛이 있어서 돌아가며 주고 치즈는 모양틀로 찍어 주거나 손으로 찢어 돌돌 말아 입에 넣어준다. 간식은 끼니가 아닌 만큼 이유식 식단을 짜는 것보다 부담은 덜 하지만 여러 종류의 간식을 접하게 해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오늘은 처음으로 아이에게 간식을 만들어주었다. 초기 이유식 쌀가루 남은 것과 엄마가 보내준 고구마로 고구마 티딩러스크를 만들었다. 티딩러스크는 치발기처럼 잇몸을 긁거나 마사지를 하면서 천천히 녹여먹는 딱딱한 과자이다. 고구마나 단호박, 바나나 등 재료에 쌀가루를 일대일 비율로 넣고 물을 살짝 넣어 반죽한 다음 손가락 모양으로 만들어 에어프라이어에 구우면 된다. 조물조물 반죽을 하고 모양을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단정하고 예쁜 모양으로 만들고 싶은데 손이 서툴러서인지 투박한 모양의 덩어리가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내 손으로 직접 아이의 간식을 빚는 일이라 생각하니 마음에서 뿌듯함이 올라온다. 티딩러스크가 구워지는 동안 ‘과연 잘 만들어질까?’하는 초조함에 바잡게 옆에서 지켜보다 지루함에 못 이겨 커피를 타서 식탁으로 와 앉았다.
생각해보면 간식은 항상 사먹는 것이었지 만들어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간식을 굳이 시간을 들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직장에 다닐 때는 간식 때문에 고생했던 적이 많았다. 팀원 중에 매번 막내였던 나는 간식을 정하고 사서 나눠주는 일을 담당했다. 막내가 할 만큼의 자잘한 일에 속하지만 은근 신경을 갉아먹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사람을 만족시키면서 매번 똑같지 않은 간식을 고르는 일이 어려웠다. 아무리 간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일이 되면 부담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좋아하던 간식시간이 고역이 되어버린 것은 아마 내가 아닌 모두에게 초점이 맞춰있기 때문일 테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도 스트레스다. 메뉴 그 자체부터 같은 메뉴라도 어느 브랜드의 것이 더 맛있는지가 간식시간에 주된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저 먹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겠지만 대접하는 사람에게는 귀를 기울여야 할 고객의 소리와도 같다. 팀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면 편할 텐데 ‘알아서 해’라는 말로 안심을 시켜두고는 정말로 ‘알아서’ 하면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어떤 간식으로 할지 생각나지 않는 날에는 동기들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 검색으로 도움을 받기도 했다. 간식 하나가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할 줄이야….
하지만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가벼워지는 간식시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마치 내가 크게 한 턱 낸 것 같은 뿌듯함. 이번주는 어떤 간식을 사볼까? 고민하는 설렘. 맛있다고 칭찬받을 때의 보람됨. 간식 하나로 모두를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쾌감.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간식시간이 없었다면 직장생활에는 고리타분함만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혼자서 즐기는 간식시간. 사람의 온기와 오고가는 이야기는 없지만 정적 속에 흐르는 고요함을 벗 삼아 잠시 마음을 기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크게 부담되지 않으면서 힘을 빼고 즐거움이 가득한. 더 먹으라고 보채지도 않고 조금 먹었다고 다그치지도 않고 그저 먹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쁨이 가득한. 다가올 시간이 설렘이 되는. 방싯방싯 웃음이 터져 나오고 방글거리는 얼굴만 보아도 피곤이 가시는 것처럼 아이와의 일상도 늘 간식시간 같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