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니까
아이 2학년 때의 일이다.
아이의 친구 중에 학교에 도착하면 먼저 숙제부터 하고 노는 아이가 있다.
이 얼마나 훌륭한가.
그에 비해 내 아이는 언제나 실컷 다 놀고 자기 직전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숙제를 한다.
숙제를 그리 늦게 하니 툭하면 숙제를 다 못 하고 자고...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숙제를 먼저 하고 노는 아이의 엄마에게 물었다.
"비결이 뭐예요?"
"지금에야 습관이 되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숙제를 하지만.
아유, 저도 처음에는 애한테 엄청 잔소리 했어요. 혼내기도 많이 혼내고."
습관이 되면 괜찮아지려나?
그렇다면...
좋아! 나도.
나는 매일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숙제하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혼내기도 하고.
아이는 잔소리 때문에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숙제를 펼치기는 했지만
짜증을 부리고, 하기 싫다고 울기 일쑤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놀지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숙제를 먼저 하고 마음 편하게 놀라는 건데.
그게 왜 그리도 싫은지.
아이와 나는 그 놈의 숙제 때문에 매일 전쟁을 치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습관이 되기는커녕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아이도, 나도.
그리고 며칠 후 아이의 놀이 치료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는 1학년 초부터 충동성으로 학교 생활 부적응으로 모 대학에서 운영하는 놀이 치료를 다니고 있다.)
"요즘 아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요?"
제 발 저린 도둑처럼 마음이 뜨끔했다.
"아, 네. 요즘 학교 돌아오자마자 숙제 먼저 하는 습관을 들이려 제가 잔소리를 좀 많이 하거든요."
내 대답을 듣고 상담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어머님이 잔소리를 하면 잘 따르던가요?"
"아... 아뇨. 사실 그동안은 시작하기가 힘들어서 그러지 일단 시작하면 집중은 잘 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숙제를 할 때마다 너무 산만하고, 짜증도 많이 내요."
"그럼, 어머니. 숙제를 꼭 먼저 해야하는 별도의 이유가 있나요?"
선생님이 그리 정색하고 물으니, 선듯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아니, 뭐. 특별히 그런 건 없지만... 준이 친구 중에 그런 아이가 있고.
숙제를 너무 늦게 하니깐 못하는 경우도 있고... 아유, 도대체 이해가 안되요.
숙제를 먼저 다 해 놓으면 지도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는데... 그걸 그리 싫어하니."
선생님은 나의 대답을 듣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준이는 하교 후에는 실컷 놀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준이는 충동성이 강한 아이라 참고 기다리는 게 쉽지 않아요. 좋은 걸 못하게 하고 당장 싫은 걸 하라는 건 아이에게는 견디기 힘든 기다림이죠. 게다가 아이는 이미 학교에서 하고 싶은 걸 참고, 하기 싫은 걸 하는 등 충동성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했을 거예요.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구요. 집이 학교의 연장선이 되는 건 좋지 않아요. 집에 와서는 좋아하는 놀이를 실컷 하게 하세요. 아이가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다 놀면, 뇌파가 안정되면서 집중력이 생겨 훨씬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구나.
나는 내 아이에게 맞지 않은 남의 옷을 억지로 입히려 한 거구나.
게다가 나는 아이가 치열하게 학교생활 적응 훈련을 하고 있다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잊고 있었구나.
어쩐지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거 같아서 아이에게 미안했다.
집으로 가는 길, 아이에게 물었다.
"준아, 너는 숙제를 언제 하는 게 좋아?"
"응? 다 놀고 나서. 엄마, 나는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고. 놀지 못하면 슬퍼."
"좋아, 알았어. 그럼 숙제는 다 놀고 나서 하는 걸로 하자. 대신, 열심히 해야 해."
"넵, 알겠습니다."
아이는 신이 나서는 '척' 오버를 떨며 경례를 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아이와 나의 숙제 싸움은 계속되었다.
"너, 이제 잘 시간 다 되어 가는데, 숙제는 안 해?"
"응? 엄마 졸려. 내일 아침에 하면 안될까?"
"뭐?!!!!!!"
음.
그래도 괜찮아.
그렇게 내 마음을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