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늦게 나는 영구치로 보통 17세에서 21세에나타나기 때문에.. 그즈음 어른스러운 지혜가 생기고 사랑에 빠지는 때라 여겨 붙여진 이름..
예쁜 이름만큼 만나서 반가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다 자리 잡은 이빨들 사이를 비집고 뒤늦은 등장만으로도 존재감 과시하며 쉽지 않은 만남임을 알리는 사랑니..
첫째에겐 특히 심한 불청객으로찾아왔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문을 걸어 잠그고 하루 종일 마스크를 써야 했던 그 시기에 영국 대학으로 진학한 첫째는 영상통화룰 할 때마다 사랑니가 올라오는지 이빨이 조금 아프다고 했다. 어느 병원이고 맘 편히 가기 어렵던 시기였기에 큰 사랑니가 올라오며다른 이빨들이 눌려져서 아픈가 싶었다. 멀리 타지에서 혼자 지내니 그저 많이 아프지 않기만을 바랬었다.
더 아프단 말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작년 여름 방학,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3년만에 들른 한국 치과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 얼마나 있죠? 일정이 짧아서 할 수 있는 게 없겠어요."
하필.. 사랑니가 떡하니 옆으로 누워서 자라났단다. 닿아있는 옆치아에 충치가 생겼는데 누워 있는 사랑니 발치는 쉽지 않아 짧은 일정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했다.
액스레이로 봐도 어쩜 이렇게 자라났나 의아하고 신기할 정도였다. 가로본능에 충실하게 90도로 누워있는 사랑니와 그 옆 이빨은 레고 조각처럼 빈틈없이 꼭 맞게 붙어 있었다. 그 사이로 낀 음식 찌꺼기는 양치로 해결이 안 되니 충치가 생겼다고..
누워 있는 사랑니는 잇몸을 절개하고 사랑니를 작은 조각으로 부셔서 꺼내는 방법으로 수술해야 하는데 다시 비행기를 타려면 적어도 2주 이상.. 충치 치료까지 하려면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짧은 일정의 방문이라 다음에 시간 될 때 하자며 일단 미뤘었다. 그냥 치아를 뽑는 것도 아니고 잇몸 절개를 하면 아무래도 회복 시간이 넉넉하게 있어야 할 테니..
그리고 잊어버렸다.
당장 어떤 통증이 있어 '여기 문제 있어요' 하고 신호를 보내지 않으니..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훨씬 더 큰 문제를 불러오고야 말았다.
올여름 다시 확인해 보니 사랑니와 옆 이빨 사이의 충치 상태가 심각해져서 당장 사랑니를 발치하고 충치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신경치료까지 해야 할 심각한 상황이라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문제는 다음 학기 비자와 관련해서 급하게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있어 한국에서 치료가 어려웠다.
싱가포르로 돌아와서 급하게 찾아간 치과에서는 사랑니 발치는 수술로 여겨 따로 스페셜 리스트(전문의)에게 가서 발치해야 하고 충치 치료는 잇몸이 아물고 나서 해야 한다고 했다.
비용도 어머어마한 가격이었다.
여러 곳을 가봐도 비슷했다.대략..
사랑니 발치만 $1,250 ( 약 125만 원)..
위쪽 사랑니 발치는 $250 ( 약 25만 원)~
충치 치료 후 인레이는 $800 (약 80만 원) ~ $1,000 (약 1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사랑니 발치를 위해 다시 자세한 검사를 해보고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는데.. 붓거나 멍드는 정도 외에 사랑니 뿌리가 얼굴 신경을 지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지 설명 들으니 괜히 더 걱정이 몰려왔다.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크고 단단해 보이는 뿌리.. 어쩌자고 저렇게 떡하니 옆으로 누워 자리 잡았는지.. 미루지 말고 얼른 치료했어야 했다.
함께 상담받으며 연신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하던 첫째..
너무 큰돈이 들어 미안하단다.
"사랑니가 옆으로 누워 자란 게 네 잘못도 아닌데.. 왜 미안해.. "
마음이 아팠다.
나라마다 2주간의 격리가 필수였던 코로나 시기.. 연고 없는 낯선 나라에 들지도 못할 무거운 트렁크를 두 개나 들고 혼자 찾아간 첫째..
기숙사에 들어가 짐을 풀고 정리한 메모를 보여줬을 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게 한도 때문에 많이 챙겨주지도 못한 먹거리의 유통기한과 개수가 정리되어 있었다. 나도 하지 않는 정리메모를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유통기한 가까운 것부터 알뜰히 먹고 있다고 했다. 생활물가 비싼 영국은 남의 손이 닿으면 엄청나게 비싸지는데 그 돈만큼의 맛이 아니라 그냥 장 봐다가 밥 해 먹는 게 훨씬 싸다고 했다. 1인용 전기밥솥을 사 보냈는데 1.5인분 양의밥이 되면 그걸 두 번에 나눠 먹고 있다고 했다.
장 보고 오는 날이면 이 무거운 걸 엄마는 어떻게 다 들고 다녔냐며 고마운 일인데 몰랐었다고 했다.여기저기 지원해서 할 수 있는 인턴 기회마다 찾아다니며 일하고 생활비를 보탰다.
학교 수업하고 인턴 일하며 용돈 벌고.. 학교에선 외국친구들에게 한글 가르쳐주는 자원봉사도하고.. 주말이면 한글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한글도 가르치고..
그렇게 바쁘게 열심히 잘 지내줬으면서도 미안하단다..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아이는 쑤욱 ~ 커 있었다.
혼자 낯선 나라 가서 도움 받을 곳도 없는데 어쩌려고 이러냐며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멋지게 잘 해내고 있는데 왜 걱정을 했던 걸까 하며 진심을 담아 사과했었다.
지혜가 자라는 나이에 찾아오는.. WISDOM TOOTH..
첫째를 보니.. 이름이 찰떡이다!
아직 모쏠이니.. 이제 그 이름 따라 사랑을 알아가 볼 차례인 건가..
다행히 무사히 사랑니를 발치하고..
빠져나간 빈자리가 커서 양치하다가도 밥 먹다가도 공간이 느껴지니 이상하단다.
" 사랑하는 첫째야~ 방학이 끝나고 네가 다시 홀로서기를 떠나면.. 네가 빠져나간 그 자리도 크게 보여서 많이 허전하고 이상하단다.. 많이 부족한 엄마에게 참 사랑이 무언지 알게 해 준 고마운 너에게 늘 고마워.. 사랑한다.. 건강하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