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뒤면 생애 처음으로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떠나게 된 막내를 위해 짐을 챙기다 늦은 저녁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충전기에 핸드폰을 연결하다 마침 둘째 학교에서 온 이메일을 보고 무심코 눌렀다. 무슨 안내 인가 하며 언제나처럼 대충 훑어보고 넘기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장문의 글에서 발견한 단어..
Passed away..
'뭐라고? 갑자기 이 단어가 왜?'
방금 떠 넣은 밥이 목구멍에 걸려서 순간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충격적인 메일 내용은 이러했다.
둘째네 학교의 학생들 중 일부가 몰디브로 고래상어를 탐사하러 떠났는데 안타깝게도 한 학생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학교 측에서 현지로 바로 출발했으며 아이들은 돌아오고 있고 상담과 도움이 필요한 경우라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사고를 당한 학생의 신원이 나와 있지 않았기에 친구들의 동생들이 지금 이 여행에 참가 중이라며 둘째도 많이 걱정스러워했다.
곧 여행을 떠날 막내도 겁먹은 듯 놀란 눈을 껌뻑이며 마음 아파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소식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친구들과 캠프를 떠난다고 좋아하며 나섰을 아이를 잃은 부모님의 심정을 어떻게 헤어릴 수 있을지.. 누가 뒤통수를 세게 내려친 듯 얼얼하고 먹먹했다. 왜 이런 슬픈 일이 벌어진 건지 가슴 아팠다.
떨리는 손을 겨우 뻗어 옆에 있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가만가만 등을 두드렸다. 떠나간 아이의 명복을 빌면서..
언제부터였을까..
하루를 시작할 때나 잠들기 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는 건 어쩌면 가장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어려운 것, 무탈하게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길 바라고 바라게 되었다.
아무 일 없는 하루.. 어떤 사고나 다치거나 아픈 그런 변수 없이 그저 어제처럼 무난하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하루.. 살아보니 그저 평범한 보통의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싶다.
어릴 적엔 뭐든 지금과 다른 것을 꿈꿨었다.
훌륭하게 자라서 멋진 직업을 갖고 어떤 꿈을 이루고 싶은지 나열하며 지금과 같지 않은 내가 되길 바랐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지금과 달라질 거라고 더 멋진 내가 되어 있을 거라고.. 그렇게 도착지를 모르지만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었다. 눈뜨면 아침 먹고 학교 가고 돌아와 숙제하고 밥 먹고 잠드는 일상은 늘 그냥 주어지는 하루인 줄 알았다.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어쩌면 놓치고 보지 못했던 그 평범한 하루, 보통의 하루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왔다.
건널목을 건너다 당한 황당한 교통사고로 다리에 깁스를 했을 때였는지..
이유도 모른 채 첫 아이를 유산했을 때였을지..
간절하게 준비하던 시험에서 불합격을 받아 든 날이었는지..
뉴스를 챙겨보는 나이가 되면서 알게 된 무서운 사건 사고들이 일상에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란 걸 알게 된 때였는지..
무시무시한 전염병으로 전 세계가 멈추는 경험을 하면서였는지..
그런 수많은 날들이 쌓여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지 않고 노력만으로 막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가족들과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며 도란도란 둘러앉아 따뜻한 밥 맛있게 나눠먹는 그저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평범한 건.. 심심하고 멋지지 않은 일인 줄 알았다.
보통이란 건.. 잘했다는 기준에서 많이 못 미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제와 같은 보통의 평범한 하루를 산다는 게.. 살아보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구나 싶다. 아니 제일 어려운 일 중 하나겠구나 싶었다.
가만히 바라고 바라본다..
어제와 같이 평범한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그저 무탈하기를..
모두 건강하시기를..
(사진 출처: Photo by Yan Mi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