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째 같은 반에서 영어공부를 함께하고 있는 K는 아름다운 미소가 돋보이는 일본인이다. 유쾌하고 명랑한 그녀는 조금 엉뚱하기도 해서 함께 대화할 때면 그녀의 과장된 표현이 재밌어서 웃느라 배가 아플 때가 종종 있다.
하루는 수업 중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초롱초롱한 두 눈에 호기심을 가득 담고 그녀가 물어왔다.
" 한국 사진은 정말 그래?"
" 한국 사진이 왜?"
" 얼굴을 다 사라지게 했던데.."
그러면서 두 손을 얼굴에 대고 세모 모양을 만들며 보여줬다.
" 아~ 브이(V) 라인? "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하는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몇 년 전 사촌 여동생이 결혼 준비를 할 때, 웨딩 화보 촬영을 한국에 가서 하고 싶어 했단다. 한국 아이돌처럼 화장도 해주고 사진도 멋지게 찍어준다며..
그래서 정말 한국에 가서 웨딩 촬영을 하고 왔는데, 결혼식날 구경하러 갔더니 여동생과 남편의 얼굴을 다 잘라서 아주 샤프하게 만들었더란다. 거의 얼굴이 사라지는 수준이었다고..
일본에선 사진 촬영 후 포토샵 작업을 별로 안 해 주는데 여동생 부부의 사진은 놀라울 정도로 날씬하고 다리도 길어져서 들려오는 건 모두 " 에~~ "라는 감탄사만 가득했단다.
어느 정도였는지 설명하느라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포즈까지 보여주니 사진을 보지 않았는데도 그림이 그려져서 깔깔 웃고 말았다. 들을수록 K 사촌 여동생 부부의 결혼사진이 궁금했다. 우리나라 사진 기술이 그 정도였던가?
" 처음에 사촌 여동생을 몰라봤다니까.. 너무 예뻐서.. "
짓궂은 그녀의 이야기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우리 아이들이 내 결혼사진을 보고 이게 누구인가요 하긴 했어. "
" 정말? 아이들이 너를 몰라봤어? "
"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긴 하더라고.. 사촌 여동생에게 지금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전해줘. 나중에 그녀의 아이들이 누구냐고 물을 수 있어. 나처럼.. "
(과한 포토샵을 하진 않았지만 진한 신부화장을 한 나도, 앳되고 지금보다 많이 말랐던 남편도 아이들이 보기엔 낯설게 보인다고 했었다.)
이번엔 K가 숨넘어가게 웃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냐며 내 결혼사진이 너무 보고 싶단다.
K의 반응이 재밌어서 아이들에게도 들려줬다. 그랬더니 최근 몇 명 안 되는 한국 친구들 사이에서 주민등록증을 만드느라 신분증 사진에 관심이 많다며 둘째가..
" 정말 사진은 한국 가서 찍어야 하나 봐요. 친구 A의 오빠가 주민등록증 사진을 한국 가서 찍었었는데, A가 그랬어요. 한국 사진관은 어깨를 붙인다고요. 글쎄 오빠의 없던 어깨가 창조된 수준으로 생겼대요. "
A의 오빠도 모르고 분명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덕분에 각 잡힌 어깨를 상상하며 푸하하 즐겁게 웃었다. 싱가포르 역시 사진을 찍으면 그다지 포토샵을 해주지 않기에, 둘째 역시 꼭 한국에 가서 증명사진을 찍겠다며 한국 사진에 대한 믿음이 더 견고해졌다.
그러고 보니 최근 싱가포르의 어느 몰을 가도 한국에서 물 건너온 <인생 네 컷> 사진 부스가 아주 인기다. 한국 스타일 사진 역시 K 문화를 알리고 있구나 싶다.
(♧ 사진 출처 : 비짓제주/ www.visitjej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