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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Apr 06. 2022

신기한 언어 종합 선물상자

“엄마, 우리 반에 외국인 아이가 있는데요. 영어는 잘 못하고 일본 친구들과 일본어로만 이야기하는 아이가 있어요.”


초등 2학년에 갑자기 싱가포르로 와서 국제학교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둘째는 영어 실력이 부족해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반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어느 날 둘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야기했다. 영어가 부족한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일본이나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 많았고 일본 아이들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아이 생각엔 동양인이 아닌 외국인 친구는 영어를 잘할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영어권 나라에서 온 친구가 아니면 영어 못할 수도 있지.”

“그렇죠. 그런데 그 친구는 완전 일본어로만 이야기하니 신기해요.”

“그 아이 말고도 일본인이 아니라는데 일본어만 말하는 친구도 있어요.”


일본 친구들 비율도 높은 데다 일본어를 잘하는 외국인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일본 학교 다니는 기분이라고 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모국어가 편할 수밖에 없지만 어느 정도이기에 그런가 싶었다.


얼마 후 반 아이 생일 파티에 초대로 갔었는데..

인도네시아인인 B는 부모님 일 때문에 어릴 때부터 쭉 일본에서 자란 아이였고, 외국인인데 일본어만 한다고 했던 T는 엄마가 일본인이었고 아빠가 미국인이었다. 싱가포르 오기 전까지 일본에서 자라서 일본어를 더 잘 사용한다고 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T의 아빠도 생일 파티에 온 T 엄마의 지인들도 자연스레 처음 본 내게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는 상황이 생겼다.

‘아.. 난 일본어 몰라요. 뭐라고요~~~?’

일본어 공부를 해야 하나.. 둘째가 학교에서 어떤 기분일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어떤 언어를 모르는 상황에서, 나만 전혀 못 알아듣는데 나를 둘러싼 다른 이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그 나라 언어로 이야기하고 같이 웃고 한다면.. 어른인 나도 많이 당황스럽고 ‘난 몰라요’ 이야기하기가 민망했는데..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까 싶어 괜히 맘이 아렸던 하루였다. 그저 하루하루 힘들겠지 짐작만 했는데, 내가 그런 상황 속에 있어보니 식은땀이 나고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힘들었을 둘째를 꼬옥 안아주었다.

친구들도 영어로 공부하고 싶어 왔으니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자유롭게 대화하고 즐겁게 웃을 수 있도록 해 보자 하고 위로했다. 다행히 둘째는..

“영어 말고도 다른 나라 언어를 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가 하는 말을 다른 나라 친구가 알아듣고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줬다.




하루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오차드에 나가 아이들과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우리 테이블 왼쪽으로는 일본어 대화가 들려왔고 오른쪽 테이블에선 중국어 대화가 들려왔다. 대화할 내용이 많았던지 식사하는 내내 왼쪽과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언어와 언어별 특유의 억양이 참 달라서 신기했었다. 물론 뒷 테이블에선 영어도 들려왔다. 우리 아이들과 나는 우리말로 대화했고..


그 순간 우리가 참 신기한 나라에 살고 있구나 싶었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기도 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이렇게 다양한 언어를 들을 수 있다니..

저 언어를 다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급 궁금해졌다.  




어느 날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막 올라탄 아이가 옆에 있던 어른의 손을 잡으며 “엄마 ~” 하고 불렀다.

‘어.. 인도계 아인데..’

아이가 내리고 나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하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애들도 그렇게 들었단다. 나중에 인도 타밀어가 우리말과 비슷한 발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뒤론 우리말과 비슷한 단어가 들리면 ‘오~ 이 말도 비슷해.’하고 신기해했다.


싱가포르에서 살다 보니 주변에서 들리는 대화가 대체 어느 나라 언어일까 궁금했던 적이 참 많았다. 신기한 언어 종합 선물 상자 같다고 해야 하나.. 뜻은 둘째치고 어느 나라 언어일까 알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그만큼 다양한 언어를 들을 수 있는 곳..


이곳에서의 경험이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들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겠지. 이 작은 나라 싱가포르는 어쩌면 넓은 세상의 미니어처 같은 곳일지도..


다양한 세상 언어를 경험하며 아이들은 다른 나라 사람과 영어 외에 그들의 언어로 대화해 보고 싶다는 꿈도 꿔 나가고 있다.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위한 도전일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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