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멀리 타지에 사는 딸이 한국의 자연을.. 엄마의 음식들을.. 우리네 명절을.. 함께하지 못하는 걸 마음 아파하는 우리 엄마..
유난히 꽃이나 식물을 좋아하고 잘 키우시는 엄마..
싱가포르 올 때.. 둘째가 학교에서 키우던 작은 화분을 들고 올 수 없어 안타까워하자 그걸 가져다 키웠는데 어느 날 이만큼 컸단다 하고 사진을 보내주셨다.
아이들은 할머니 손은 마술 손인가 놀라워했다. 정말 작았던 화분이 커다랗게 잘 커 있었으니..
길가의 작은 이름 없는 풀꽃도 지나치지 못하고 " 이것 좀 봐.. 너무 이쁘지? " 하며 좋아하시던 소녀 같은 우리 엄마.. 그저 그런 소소한 순간들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아쉽다.
사계절 변화가 없는 싱가포르에 살다 보니 언제가 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 계절을 잊고 살게 된다. 날마다 더운 여름만 계속되니.. 달력의 숫자는 그냥 숫자로만 보이게 되고.. 어느 순간 돌아보면 한 달이, 1년이 훌쩍 지나가 있다. 계절이 하나니 오히려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거 같다.
엄마가 보내준 화사한 봄 사진을 보고 있자니 싱가포르에 처음 와서 맞은 그 봄에 엄마와 함께 경험한 홀리(Holi) 축제가 생각났다.
봄을 알리는 인도 축제 홀리..이 이국적인 경험은 아주 우연히 하게 되었다.
싱가포르에 온 다음 해 3월 어느 날..부모님이 싱가포르에 오셨다.
처음 싱가포르에 오셨으니 호커 센터 분위기를 소개해 드리려고 에스플러네이드 주변에 있는 마칸수트라 글루턴스 베이(Makansutra Gluttons Bay) 호커센터에 밥을 먹으러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주변엔 여러 가지 색색의 가루를 덮어쓴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호커센터에도 씻거나 가루를 털어내지도 않은 채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무슨 일인가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무슨 일이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홀리(Holi) 축제야 ~. 색색의 컬러로 봄을 축하하는 거야."라며..
"너에게 뿌려도 돼?" 하고 되려 물어왔다.
"아니야.. 괜찮아."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기도 했고 ,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모님과 어린 아이들까지 챙겨야해 더 긴장이 됐다. 무엇보다 저렇게 가루를 덮어쓰고 다닐 자신이 없어 사양했지만..
호기심이 솟았다.
식당 밖으로 나가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색색의 가루를 뿌리며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춤추고 즐기고 있었다. 동심으로 돌아간 듯 행복해 보였고 진심으로 그 순간을 즐기고 있는 거 같았다.
그들 속으로 뛰어가 함께 그 축제를 즐기진 못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부모님도 아이들도 신나는 음악과 분위기에 젖어 함께 즐겼다. 재밌는 경험인데 가루 뿌려달라고 할 걸 그랬나 조금 아쉽기도 했다. 이국적인 경험에 부모님도 많이 즐거워하셨다.
공연장에선 인도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회도 있었고 에스플러네이드 내부에서도 각종 전통 춤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우연히 좋은 공연과 신나는 축제 현장을 경험할 수 있어 감사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이 축제가 무슨 축제일까 찾아보니..
인도에서 열리는 힌두교 전통의 새해맞이 축제로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는 것을 축하하는 날이라고 한다. 이날만큼은 카스트나 남녀노소 구분 없이 아이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색색의 가루를 뿌리며 서로를 축복하는 날이었다. 인도에선 가루를 물에 푼 양동이 채로 덮어 씌우기도 한단다.
나중에 인도에서 살다 싱가포르에 오신 지인분은 실제로 인도 안에서는 위험할 수 있는 축제라 밖에 나가면 안 되는 축제인데, 싱가포르라 안전하게 구경할 수 있었을 거라고 알려주셨다.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 축제를 이렇게 우연히 경험하면서 진짜 다민족 국가 싱가포르에 살고 있구나 싶었다.
우리에겐 이국적인 Holi의 화려한 봄맞이 축제에서나.. 추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임을 알려주는 우리의 아름다운 봄꽃들에서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깔들이 함께인걸 보니.. 추운 겨울이 지나고 맞이하는 봄이 반갑고 새로운 시작을 향한 기대와 설렘이란 정서는 통하는가 싶다. 점점 짧아지는 아름다운 계절 봄.. 한국의 봄이.. 아름다운 봄꽃들이 그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