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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Apr 18. 2022

넌 왜 여권이 하나야?

(사진출처; 외교부 외교사료관 기획전)

학교를 다녀온 첫째가 이번엔  황당하다며 날 만나자마자 질문을 해왔다.

"엄마.. 여권이 하나인 게 이상한 일일수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 있어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했다.

"여권이 왜?"

"아니.. 애들이 나더러 넌 여권이 하나밖에 없냐고.. 북한 여권은 못 쓰냐고 하잖아요."

 

아이고나.. 이게 뭔 소릴까 했다.


곧 이웃나라 말레이시아로 필드 트립을 떠나게 된 첫째네 반 아이들..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학교나 로컬 학교들은 트립을 갈 때 가까운 이웃 나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이 이야기는 코로나19  이전 시기의 이야기다.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던 그때가 너무 그립다.)


학교에서 준비물을 비롯한 트립에 대한 안내 중이었는데..

아일랜드에서 온 친구 L이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고 한다.

여권이 세 개인데 어느 나라 여권을 가지고 가야 하냐고..

그러자 갑자기 다른 아이들도 서로 자신의 여권에 대해 의논하며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를 가려면 어느 나라 여권을 들고 가야 무비자로 갈 수 있는지.. 자기 여권 중 어느 나라 여권이 더 유리한지..


'자기 나라 여권으로 말레이시아 려면 무비자로 가능한가요가 아니라 어느 나라 여권이 유리하냐고?'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란 첫째 눈이 동그래졌을 테다..

"너네는 다른 나라 갈 때 어느 나라 여권을 들고 갈지 고민하는 거야?"

첫째의 질문에 아이들은 당연하지 그걸 물어 그런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랬다.

아이반에는 부모님이 국제결혼하신 경우도 많았고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할아버지 세대가 다른 나라로 이주한 경우도 많아서 여권이 두 개, 세 개인 친구들이 많았던 거다.

싱가포르 시티즌이 돼서 싱가포르 여권까지 여권이 두 개가 된 친구들도 있었다.



아이들 스스로 어디 어디 하프인지..  쿼터인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서 여러 번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여권이 여러 개라 다른 나라를 갈 때 어떤 여권이 더 좋은 지 고민한다는 건 처음 보게 된 상황이었던 거다.


어쩌다 보니.. 여권이 하나밖에 없는 첫째가 오히려 신기한 상황이 되었고 진심이었는지 농담이었는지 아이들은 짓궂게도..

"넌 북한 여권은 못 쓰는 거야? " 물어왔단다.

참.. 어쩜 좋으니.. 이놈들..

"여권이 하나뿐이면 잃어버리면 당장 불편해서 어떡해?"  이런 면이 궁금한 아이도 있었단다.


첫째는 친구들 속에서 잠시 혼란스럽고 또 한편으론 신기했다고 한다.  내가 당연하다 알고 있던 일이 누군가에게 색다르게 보일 수 있다니..  


아이도 나도 살면서 여권이 하나인 게 신기해지는 상황을 만날 줄은 몰랐다.

다양한 문화 차이로 때때로 우리와 많이 다르구나 느낄 때가 있었지만 여권 때문에 놀라게 될 줄이야.. 

듣는 나 역시 참 신선했다.


여행 전 여권을 제출할 때도.. 아이들은 서로의 여권을 돌려보며 표지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 여권 속지에 쓰인 글자나 배경 그림이 어떤지 비교해보며 신기해했다고 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니 여권도 많이 달랐다고..


이런 경험이 국제학교의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너와 나의 다름을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경험하면서.. 넓은 세상 속에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서로가 어떻게 다른지를 통해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인지도 돌아볼 수 있으니..


'다문화'란 다양한 문화가 함께 공존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니.. 이 단어가 우리 사회 속에서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길 바라본다. 다른 곳에선 우리가 낯설게 보일 수도 있는 글로벌 세상이니..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의 국적 및 신분을 증명하는 국제 신분증 여권..

여권 하나로도 조금 다른 서로를 알아갈 수 있었다.




(출처; 외교부)

참고로 3월 18일부터 외교부 외교사료관에서 '세계를 누비는 통행증, 여권' 기획전시 중이다. 홈페이지에서 'VR 온라인 전시실'로도 관람할 수 있다.





< Daum에 실린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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