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안전 교육을 하며 위급한 상황일 때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 훈련해야 한다. 색달랐던 싱가포르에서 우리 아이들이 경험한 안전 교육 이야기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학교나 로컬 학교 모두 기본적인 화재예방 소방훈련은 공통적으로 한다.
일 년 내내 무더운 싱가포르..
화재 위험이 덜한 편이라 그런지 로컬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불이야 외치고 코와 입을 막고 몸을 숙인 채 대피하는 거야?"하고 물어보니..
"아니요.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그냥 줄 서서 차례대로 운동장으로 나가는 훈련 해요."라고 대답했다.
첫째네 국제학교에서도 화재 경보가 울리면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이동해서 수업 중이던 선생님 앞으로 모여 줄 서고 같이 수업 듣던 친구들이 다 있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수영 수업하던 아이들은 옷도 못 갈아입고 수영복에 수건 두르고 다 나와야 했다고..
에구나.. 화재가 나면 줄 설 시간 없는데..
"코와 입을 막고 몸을 최대한 숙이고 내려가야 해."하고 다시 알려줬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첫째에게 국제학교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더니..
아이는 Lockdown Drill을 꼽았다.
"이게 소방훈련이랑 비슷한 거였어?"
"아니요.. 소방훈련이 화제 경보 울리면 대피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거였다면, Lockdown Drill은 잘 숨는 훈련이에요. "
"아~ 그 훈련.."
갑자기 기억이 떠올랐다.
Lockdown Drill은 총기 난사나 테러 같은 위험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서 교내 총기 난사사건으로 학생들이 죽는 사고가 있은 뒤로,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을 미리 대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훈련을 하는 것이다.
물론 싱가포르는 총기 소지가 안되고 비교적 안전한 나라로 평가받지만, 여기도 칼이나 도끼에 의한 안타까운 사건이 종종 있다.
(안타깝게도 2021년 싱가포르 한 고등학교 교내에서 중학교 4학년 학생이 일면식도 없는 1학년 후배를 도끼로 살해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첫째 학교에서 온 안내문도 그랬다. 비교적 안전한 나라 싱가포르에 살고 있지만 슬프게도 안주할 수 없기에 이 훈련을 한다고.. 어린아이들이 지나치게 놀라지 않도록 우리가 이 연습을 하는 이유를 세심하게 설명하고 주의해서 진행하겠다고 했다.
첫째는 이 훈련을 이렇게 설명해줬다.
화제 경보와는 다르게 더 하이톤의 벨소리가 4번 연속 울리면 교내에 위험한 사람이 침입했음을 알리는 신호로 여겨 수업 중이던 교실 앞, 뒤 출입문을 잠그고, 불을 끄고 커튼이 있으면 내부가 보이지 않게 커튼을 쳐야 한다고..
그리고 복도나 창 밖에서 안 보이는 위치의 책상이나 테이블 아래, 사각지대를 찾아 숨어서 숨죽이고 아무 소리도 내면 안된다고.. 그 교실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모두가 숨는 훈련을 한다고 했다.
( 사진출처 : CNN.. March 10, 2021)
과학실이나 미술실, DT( design and technology) 룸에서 수업 중일 때는 교실에 비품이나 공구를 보관하는 창고가 딸려 있어서 교실 출입문을 다 잠그고 비품 창고로 다 들어가 그 문까지 이중으로 잠그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지역 경찰관과 학교 관계자분이 함께 잘 대처하고 있는지 학교를 돌며 문도 열어보고 안전하게 숨었는지 확인을 했다고 한다.
실제 상황이라면 모두가 놀라 소리치며 달아나는 것보다 문을 잠그고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잘 숨어있는 게 최선일 거 같긴 하다.
그런데 첫 번째 훈련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있었다고 했다.
한 학생이 마침 화장실에 가 있었는데 Lockdown 훈련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니 놀라서 수업 듣던 교실로 달려갔는데, 이미 출입문이 잠겨 있으니 아이가 놀라서 문을 두드리고 열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 상황은 아니어도 얼마나 무섭고 패닉이었을까..
교실 안에 숨어 있던 학생들도 숨소리도 내지 말라고 했는데 친구의 목소리가 확실하니 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대혼란이었다고 했다. 훈련이지만 그 학생도, 같이 수업 듣던 학생들도 얼마나 당황스럽고 무서웠을까..
나중에 훈련이 끝난 후 실제 상황에서 이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절대 교실로 달려가 문을 두드리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혹시 시선을 끌어서 문을 여는 동안 위험한 사람이 본다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다고.. 그냥 화장실 안에서 문을 잠그고, 발이 보이지 않게 변기 위에 앉아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는 게 교실을 향해 뛰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했다고 한다. 절대적으로 고요하고 눈에 띄지 않게 유지하는 게 이 훈련의 핵심이라고..
반면에 마침 이 훈련이 시작됐을 때 첫째와 친구들은 Design and Technology란 과목 수업 중이었는데, 아이들은 우리 방에는 무기가 많아서 다른 방보다 안전할 거라고 장난처럼 말했단다. 아이고 사춘기 아이들이란.. 이 수업엔 톱이나 망치 같은 각종 공구가 많이 사용된다.
싱가포르 공립학교에서도 했었는지 물어보니 초등학교에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내 학교에선 벨이 울리는 게 아니라 교장선생님이 약속된 말씀을 방송하면 그걸 신호로 알고 숨는 거였다고 했다.
"엄마 그런데 그게 이상하고 말이 안 되는 내용이었어요. "
"뭐였는데?"
"교장선생님이 지금 캔틴에 OO이 도착했으니 모두 캔틴에 모이세요."라고 방송으로 말씀하셨다고..
"이상한 사람이 못 알아듣게 하려고 그러신 거 같은데.." 내 의문에 아이는..
"이게 아무도 없는 것처럼 숨는 훈련인데 모두 캔틴에 오라고 하면 어떡해요. 학교에 학생이 다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런가? 아이구나..
(약속된 암호니 일단 패스..)
이 방송이 나오면 아이들은 교실 앞, 뒤 문을 잠그고 불을 끄고 커튼도 치고 창문 아래 턱이 있어서 복도 쪽 창문에서 보면 안 보이는 창문 아래쪽에 모여 앉아 있었다고 했다.
"한 반에 40명쯤 되는데 모두 앉을 수 있어?"
"앉아야죠. 꼭 붙어 앉았어요."
화장실 갔을 때 이런 상황이면 어떡하냐고 물으니 가장 가까운 교실로 가라고 했다고..
교실 문 잠그기, 조명 끄기, 시야에서 벗어나 조용히 유지하기.. 이 훈련의 핵심이다..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다 문득 떠오른 사건이 있었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테러 사건..
오슬로 정부청사에서 자동차 폭탄테러가 발생한 지 2시간 정도 지나, 경찰관 복장을 한 범인은 노동당 청년 캠프가 진행 중이던 우퇴위아 섬으로 들어가서 폭탄 테러 수사를 구실로 캠프에 참가 중이던 10대 청소년들에게 모이라고 한 뒤 자동소총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했다. 캠프에 참가 중이던 700여 명의 학생들은 그가 경찰복을 입고 있으니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테러로 오슬로에서 8명, 우퇴위아 섬에서 69명이 사망하였고 수많은 부상자가 나온 끔찍한 사건이었다.
아이들에게 이 사건을 이야기해주며 테러 상황에선 누구도 믿기 어려울 수 있음을 알려줬다.
훈련을 하고 조심한다고 해도 저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이런 훈련이 필요 없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슬프게도 '이런 훈련도 미리 대비하면 좋지' 하고 수긍이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갑작스레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어떤 대처가 제일 안전한지 미리 경험하고 준비하는 것.. 생존을 위한 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