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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May 07. 2022

선물은 아이의 꿈에 기부해주세요

 Sweet 16 Birthday

"엄마 이번에 M이 뎀시힐에 있는 OOO 레스토랑을 빌려서 생일 파티를 한대요. 초대받았어요. 가도 되죠?"

"그럼. 그런데 왜 레스토랑까지 가서 한대?"

M의 엄마 S는 외동딸인 M의 친구들을 자주 집에 초대하는 편이라 굳이 왜 비싼 레스토랑을 빌렸나 싶어 의아했다.

"거기서 파티할 수 있게 준비해 준대요. M은 이미 예쁜 드레스도 샀대요. 애들이 그러는데 이번 생일이 'Sweet 16'이라고 의미 있는 생일이래요."

"그래?"


얼마 전부터 첫째네 반 친구들이 생일 파티 초대장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크고 작은 모임에 적극적인 엄마들이라, 휴일에 종종 풀 사이드 파티(대단한 파티는 아니고 싱가포르는 콘도마다 수영장이 있어서 친구들끼리 수영도 하고 이 노는 걸 말한다)를 긴 했었는데.. 어쩐 일인지 정식 초대장을 보내는 걸 봐서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M도 예쁜 레스토랑을 빌려서 드레스 입고 파티를 한다고 하니 대체 왜들 이러나 싶었다.


아이가 다니는 영국제 국제학교에선 한 학년의 구성이 새 학기 시작하는 9월생부터 그다음 해 8월생까지 같은 학년으로 배정하기 때문에 M은 첫째보다 한 살 많은 친구였다. 최근 생일 파티를 하는 아이들은 16세 생일 파티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왜 'Sweet 16'이라고 부르고 의미를 둔대?"

왜 그렇게 부를까 궁금해 찾아보니, 많은 서양권 나라에서 16세 소녀들에게 소녀의 어린 시절이 끝나고 여성이 됨을 축하하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큰 파티와 함께 축하를 해 준다고 한다.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생일 중 하나로 생각한다고..


"16번째 생일이 지나면 운전면허를 딸 수 있대요. 우리 반 S는 당장 다음 방학에 자기 나라 가서 운전면허부터 딸 거라고 해요. 그래서 이 생일을 기념해 자동차를 선물하는 부모님도 있대요."

"우와~~ 진짜? 달라도 너무 다르구나. 미국 고등학생들이 차를 운전해서 등교한다더니 그래서 그렇구나. 우리나라에선 고등학교 1학년인데 운전면허를 딸 수 있다고? "

어머나.. 처음 알게 된 문화라 그저 신기했다. 우리도 이 꽃다운 나이를 이팔청춘이라 부르지만 성인으로 생각하진 않으니..




며칠 뒤 학교를 다녀온 첫째는 친구 S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늘 수영 수업이 있었는데요, S의 엄마가 생일 선물로 배꼽 피어싱을 해줬다며 엄마가 써준 레터를 들고 와서 당분간 수영 수업 못한다고 했어요." 

"헉.. 배꼽 피어싱?"

"네. 생일이라 엄마가 해준 거라며 만져봐도 된다고 해서 애들이 다 만져봤는데 이상했어요."

"그리고 또 다른 M이 자긴 엉덩이에 'WILD' 문신을 했다고 자랑했어요. 그런 걸 왜 하는 걸까요?"

아이구나.. 16세 생일을 맞으면서 아이들은 성인이 된 걸 기념하듯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모양이었다. 너무도 큰 문화 차이에 아이도 나도 그저 "우와~진짜?"하고 놀랄 뿐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중에 배꼽 피어싱을 허락하고 엉덩이에 문신을 다고?


여러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공부하며 그들의 삶의 방식이 우리와 다른 부분이 많아 크고 작은 일들에 놀라게 될 때가 많았다. 그냥 우리와 많이 다른 문화 차이려니 하기엔 고학년이 될수록 놀랄 일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풀 사이드 파티 같은 경우도 뜨거운 태양에 타지 말라고 긴팔 래시가드를 챙겨 보내는 엄마 밑에 자란 첫째는 겨우 가려지는 손바닥만 한 비키니나 커다란 구멍이 여러 개 뚫린 수영복을 입는 친구들을 보며 적잖이 놀라워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생각했는데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진짜? 정말?"을 달고 있는 걸 보면 아직 멀었나 보다.




그렇게 이어진 크고 작은 새로운 시도들과 Sweet 16 생일 파티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로 Y의 생일 파티였다. 유럽계와 아시아계 하프인 Y는 잘생긴 훈남 남학생이었는데, 부모님이 생일 파티에 반 전체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모님들도 다 초대한다고 했다. 콘도 수영장에서 바비큐를 할 생각이라며 누구라도 와서 즐겨줬으면 좋겠다는 단체톡이 왔다.


이 생일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소녀들에게 특히 그렇다는데 왜 남학생인 Y 부모님이 모두 다 와 달라고 초대할까 싶었다. 좀 뜻밖이었던 건 "생일 선물은 무언가 사서 주기보다 아이의 꿈에 기부해줬음 좋겠어요!"라는 내용이었다.


생일 선물로 기부를 하라고? 돈을 달라는 건가? Y의 꿈이 대체 뭐길래.. 얼마나 대단한 걸 사고 싶어서 기부를 해달라고 하나 싶었다. 이런 요구를 하는 경우는 또 처음이라 돈을 얼마나 넣어야 하나 망설여졌다.

그런데 Y를 위해 이미 작은 선물을 준비한 첫째는 이미 샀으니 그 선물을 들고 가겠다고 했다.   

에구~어쩌나.. 기부를 바란 이유가 있을텐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들까지 참여한 파티가 끝나고 Y의 엄마 E는 이렇게 안내 문자를 보내왔다.

"Y는 올해 탄자니아에 가서 사파리 투어를 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었어요. 여러 가지 집안일을 거들고 세차도 하고 청소도 하고, 자신이 아끼는 물건도 팔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는데.. 그의 Sweet 16 생일 파티에 와 주신 여러분이 기부를 해준 덕분에 그의 꿈에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그러면서 오늘 파티로 얼마의 기부금이 모였는지 정확한 금액까지 공개해줬다.

아.. 진짜 기부를 했어야 했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탄자니아를 간다고?' 놀라웠다.


첫째네 국제학교 재단은 세계 여러 나라에 캠퍼스가 있어서 희망자에 한해 각 캠퍼스의 신청자들이 모여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학기 중에 가고 참여 안 하는 아이들은 정상 수업이 진행된다.

작년엔 스위스를 가서 겨울의 눈 덮인 알프스 산을 트레킹하고 산속에서 텐트 치고 잔다고 했었다. 여행 비용도 엄청 비쌌지만 일 년 내내 여름인 무더운 싱가포르에서 살다 빙하가 얼어있는 알프스 트레킹을 하고 산속에서 잔다니 도저히 엄두가 안 났었다.


올해 프로그램이 탄자니아였다. 처음 듣고 떠오른 생각은 솔직히 '그 나라 안전한가?'였다. 아프리카까지 날아가서 야생의 동물을 만난다는 건 많은 사람들의 로망일 테지만 아이들만 그곳에 보낼려니 안전 문제가 걱정됐다. 물론 엄청나게 비싼 경비도 부담스러웠고 사실 우린 꿈꿔 보지도 못한 여행이었다.

그 여행을 가기 위해 Y는 본인 힘으로 경비를 마련하고 있었나 보다.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도 언제나 참 많이 놀라운 이야기들이다.

부모님이 아이의 꿈에 동의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경비를 마련하도록 기회를 주고, 아이의 의미 있는 생일에 파티를 통한 기부를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준다는 게.. 내게는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사실 싱가포르 공립학교에서 중학교 4학년, 16세에 치는 'O레벨' 시험만큼이나 중요한 시험이 영국제 국제학교에서도 16세에 있다. 아이들은 IGCSE(International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라는 중학교 졸업 시험을 2년간 공부해서 쳐야 하고, 그 결과는 대학 입학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인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라는 코스로 이어지기에 중요한 시기이다.

중요한 시험이 코앞에 있는데 아이의 꿈을 먼저 응원하고 있는 부모님들..


가끔은 정말 혼돈스러웠다.

우린 일반적으로 아이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매일매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해서 쌓인 노력의 결과로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고 그래서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하는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이라고..

문득 하루하루 치열하게 공부하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과연 꿈꿀 시간은 가질 수 있을까 싶었다.

우리 아이들이 꿈꿀 수 있게 기회를 준 적이 있었나 자꾸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첫째도 늘 이 부분이 어렵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친구들은 '커서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다' 거나 '비건이 되고 싶다'거나 '어떤 종류의 동물을 키우고 싶다'며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어떤 나라 대학을 가고 싶다거나 어떤 전공을 공부해서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데 더 진지하게 이야기해보면 분명 자기 생각이 있다고.. 단지 대학이나 직업이 미래를 대변하는 이야기가 아닐 뿐이라고 했다.


친구들은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학교는 국제학교가 아니라며 아시아에 있는 학교는 다 똑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공부 많이 시키고 시험 성적을 중요시 여기는 학교가 무슨 국제학교냐고..

싱가포르 공립학교를 다니며 수많은 시험을 치고 있는 동생들 대비 너무 여유로운 거 아닌가 싶은 내 마음과 너무도 다른 반응들에 정말 다르구나 싶었다.

누가 맞고 틀리다의 문제가 아닌, 그저 삶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가 클 뿐이지만 그들에게 배울 부분도 있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의 응원과 친구들의 작은 도움들이 모여  Y는 그해 탄자니아를 무사히 다녀왔다.

야생에서 뛰어노는 자연 그 자체의 동물들을 만나고 나무 위 트리하우스에서 잤다고 했다.

야생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 속을 직접 경험하며 Y는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리라.. 스스로 노력해 이룬 꿈이니 오래 기억에 남을 'Sweet 16'이 되었겠다 싶다.


가끔은 아이들이 꿈꾸는 것이 허황돼 보이고 꼭 지금이어야 할까 싶을 때가 있다.

무모해 보이는 용감한 도전일 때도 많겠지만 그 도전을 이뤄내고 자신의 꿈 앞에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어른인 내가 배우는 것도 많다. 내가 아는 일반적인 십대의 삶과는 너무도 다른 그들의 모습.. 그리고 언제나 아이들의 꿈에 지지부터 보내는 그녀들의 사랑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난 많이 놀라며 살고 있다.




사진출처 : 유튜버 Follow Alice- African Safari

사진출처: 유투버 Follow Alic사진출처: 유투버 Follow A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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