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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3개국어할 줄 알아요.

by 서소시

학교 다녀온 아이들이 무언가 자기들끼리 이야기 나누다 까르르~~ 웃었다.

뭐가 그리 재밌어하는 내 물음에 막내가 쫓아와 한다는 말이..

"엄마~ 우린 이미 3개국어 할 줄 알아요."했다.

"응? 어떻게 3개라는 거야?"

아이는 앙증맞은 손바닥을 쫙 펼쳐 보이더니 하나씩 접어가며 신나서 들려주길..

"보세요~ 한국어~~ 영어~~~ 그리고~~ 싱글리시요!!!"

아이구나.. 뭔 소린가 했더니..


학교에서 싱가포르 친구들이 자기들은 3개국어한다고 자랑했단다. 영어, 중국어 그리고 싱글리시 할 줄 안다고.. 그러니 우리도 3개가 맞단다. 이런..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났다.

이게 우리로 치면 한국어, 영어 그리고 콩글리시 할 줄 안다와 같은 경우니 황당할 따름이다.


싱글리시 (Singlish)란 Singapore + English의 합성어로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영어를 말한다. 영어, 중국어, 말레이시아어, 타밀어, 중국 방언 중 호키엔 어 (Hokkien)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싱글리시만의 된소리 나는 독특한 악센트가 있다.


이 싱글리시 때문에 싱가포르에 방문하는 분들은 거리에서 들려오는 영어를 듣고 당황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들은 게 영어 맞나 싶은 상황을 종종 경험할 테니..

게다가 똑같은 영어 표현도 다인종 국가인만큼 '같은 영어 다른 느낌'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모두들 자기네 언어 특유의 악센트로 영어 발음을 하니..

나름 자연스러웠어 싶게 영어를 해도 대번에 한국인이냐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내 생김새 어딘가에 한국인 인증이 있나 싶지만 우리식 영어 악센트도 한 몫하리라 싶다.




참 다정하셨던 처음 살던 콘도의 시큐리티 아저씨는 영어를 잘 못하는 우리 아이들을 볼 때마다 다정하게 손 흔들어 주시고 말을 걸어 주셨다.

막내 유치원을 어렵게 결정하고 등원을 시작하면서 유치원 버스를 타게 됐는데, 등원할 시간에 맞춰 콘도 입구로 걸어 나갈 때였다. 아저씨가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시고는 이렇게 물어보셨다.

"아유웨이띵뽀러뽀스?"

'잉? 이에 무슨 말이지?' 중국어 아니고 영어 같은데.. 말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싱가포르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고 영어 듣기 실력이 형편없던 시절인지라 잔뜩 긴장하고 들었는데도 뭐라고 하시는지 못 알아들었다. 내 표정이 이상했던지 아저씨는 천천히 다시 물어보셨다.

(이걸 직접 들어야 저때의 내 심정을 이해할 텐데.. 글로 표현하려니 진심 아쉽다.)


"아요~~, 아 유 웨이띵 뽀러뽀스?"

천천히 해 주셔도 중국언가 싶었던 그 질문은..

"Aiyoh~~ (아~요~), Are you waiting for a bus?"였다. 너 버스 기다리냐는 질문이었다니..

그 발음이 재밌어서 얼마나 웃었던지.. 된소리 나는 뽀러뽀스~~ 자꾸 따라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인도계 아저씨였는데 솔직히 처음엔 이분이 타밀어 말고 중국어를 사용하시나 싶었다. 이날 들은 저 "Aiyoh~ (아~요~)"가 흔한 싱글리시이며 내 입에도 찰떡처럼 붙어서 자꾸 쓰게 되는 추임새가 될 줄은 저땐 몰랐다. 저 표현은 놀랐을 때나 좌절했을 때, "Oh No~" 나 "Oh Dear~" 이런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었다.




아이들은 싱가포르 로컬 학교를 다니면서 귀에 많이 들려오는 싱글리시를 스펀지처럼 흡수해 재밌어하며 따라 썼다. 아이들끼리 대화에서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제일 많이 사용하는 건, 문장 끝에 특히 많이 붙여 쓰는 표현은 lah (라)~~였다.

"Ok lah (라)~~!" / "No lah (라)~~!" / "Sorry lah (라)~~" / "Her name is OO lah (라) ~~ "

무한 라~~다.


"너네 영어랑 중국어를 왜 섞어서 말하니?" 정말 그렇게 들렸다.

대체 무슨 뜻이냐 물으니 큰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란다. 강조의 의미 정도라나..

진짜 Aiyoh~ (아~요)~~다!!!

그런데 듣다 보면 중독성이 있어 자꾸 사용하게 된다. 오케이라~ 쏘리라~ 하면서..

문장 끝에 붙는 싱글리쉬는 Eh (에), Lah (라), Leh (레), Lor (러) 등이 있단다. 조금씩 뜻이 다르다는데 어머나 이렇게 다양하다니..


아이들은 싱글리시 억양과 표현을 재밌어하며 금방 따라 쓰긴 했지만 학교에선 많이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둘째 학교 친구들은 아이에게 너 영어 발음 너무 좋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참 웃어야 할지.. 좋아하기 애매하다.




자주 사용하는 싱글리시를 우리 경험담으로 소개하면..

# 1. 이거면 다 통해

한 번은 호커센터에 가서 음식을 주문해 먹다가 맛있어서 이거 포장되냐고 물어봤다. 도자기 그릇에 담겨 나오는 뜨거운 국물 있는 탕 종류라 포장이 가능할지 염려되어 물어본 것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Can Can~~ (캔 캔 ~~)"이었다. '당연하지~' 하는 강조의 뜻인가?

"Can(캔)? " 하고 다시 물어보면 "Can Can~~ (캔 캔 ~~)"이다.

때론 "Can lah~~( ~~)"도 들을 수 있었다.


반대로 안될 때는 어떤 대답이 돌아오냐면.. "Can not, Can not~ (캔 낫 캔 낫~~)" 했다.

Can ~ / Can not~으로 다 통하는 싱가포르다.


# 2. The wolf makan (마칸) you. (늑대가 너 마칸해?)

또 언젠가 로컬 식당에서 옆 테이블 사람들이 마칸 마칸~~ 하는데 저건 무슨 말인가 했다. 무슨 요리 이름인가 싶어 마칸은 뭐지 하고 메뉴판을 뒤지는 내게 아이들은 황당해하며..

" 엄마, 마칸 (makan)먹다 또는 식사란 뜻이에요." 하고 알려줬다. 아이들 아니었으면 괜히 메뉴판만 정독할 뻔했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은 동화책을 들고 와 보여주며 이렇게 쓰이는 거예요 했다. <아기돼지 삼 형제> 동화 중 일부를 싱글리시 표현으로 표현한 책이었는데..

"The wolf catch you and makan (마칸) you." (늑대가 널 잡아서 먹을 거야.)

모르고 읽으면 늑대가 잡아서 뭐한다는 거야 싶을 이야기였다. 그렇구나 ~


알고 나니 많이 들리는 표현이 이 makan (마칸)이었다.

식당에서 아이와 앉아있던 엄마가 뜨거운 국물 요리가 나오자 하는 말이..

"Cannot makan (마칸) yet." (아직 못 먹어.)했다. 내게는 발음이 "깬낫마깐옛~" 정도로 들렸다. 마칸이 뭔지 알고 들으니 들리는 말이었다.

다음에 싱가포르에 오신다면 귀를 열고 잘 들어보시길 ..


# 3. 인종차별당했다는 선생님

둘째 중학교에는 미국에서 오신 음악 선생님이 계셨는데, 주말에 뭘 했는지 이야기 나누다 본인이 어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그래서 너무 화가 났다고 하셨단다. 아이들이 무슨 인종차별을 당했냐고 물어보니 어제 들린 상점에서 직원들이 선생님이 들어가자마자..

"Ang moh lah~~ (앙모 라~)" 그랬단다.

영어를 잘 못하는 건지 찾는 물건을 물어도 계속 중국어로만 이야기했다며, 왜 앙모 앙모~ 하냐며 기분 나빴다고 했단다. 반 아이들은 그건 오해라며 싱글리쉬 소개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아이는 이 이야길 들려주며..

"애들이 그러는데요, Ang moh (앙모)는 서양사람을 뜻하는 싱글리시래요."

"그러니까 그 점원은 '서양사람이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인데 선생님은 자길 앙모라고 불러서 기분이 나빴나 봐요."

모르고 들으면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린 평생 앙모~라 불릴 일은 없겠구나..

"엄마, 이곳에 있는 Ang mo Kio라는 동네도 예전에 서양사람이 많이 살아서 붙은 이름이래요."

오~~ 뜻을 알고 들으니 신기했다.


# 4. 감탄사는 이렇게..

아이들이 알려준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소개된 건 정말 초급 수준의 싱글리시다.)

"Alamak(알라 막)~!"

길가다 보면 많이 들리는 말이다. "Oh My God~" 같은 의미로 '엄마야~', '어머나~', '아이쿠나' 같은 의미로 쓰인다. 보통 자신을 탓할 때 많이 쓴다고 한다. 우산을 집에 두고 왔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면..

"Alamak(알라 막)~!"하고 이마를 탁 치면 된단다.


"Aiyoh~(아~요~)"

주로 놀랐을 때나 좌절했을 때, "Oh No~" 나 "Oh Dear~" 이런 의미로 사용되는 말..

타려던 지하철 문이 코앞에서 닫힌다면 자연스레 나온다. "Aiyoh~(아~요~)"하고..


"Wah lao~ (왈라 우~)~~" 또는 "Wah lao eh~ (왈라 우~에~~)~~"

당황하거나 답답하거나, 충격적인 상황에서 쓰인다. 불만스러운 상황에 주로 쓰인단다.

예를 들어 책 읽고 싶은데 옆 테이블에서 지나치게 시끄럽게 이야기를 한다면 "Wah lao eh~ (왈라 우~에~~)~~" 하면 된단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도 싱글리시가 실렸다는데.. 호기심에 찾아보니..

감탄사로는 Aiyah, Aiyoh, Lah, and Wah.

장소로는 Hawker centre (호커센터), HDB (공공아파트), Wet market (재래시장)

음식으로는 Char siu (달콤하고 짭짤한 소스에 구운 돼지고기 요리), Chilli crab (칠리크랩), Sotong (오징어나 문어 종류의 음식) , Teh tarik (따뜻한 밀크티), Char Kway Teow (볶음 국수 종류)

그밖에 Ang moh (서양사람), Blur (혼한스럽거나 이해가 느린 사람), Lepak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 , Shiok (시오크 : 멋진, 훌륭한, 맛있는, 최고 등의 표현), Sabo king (문제를 일으키거나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 방해꾼) 등 그외 다수가 있다고 한다.


싱글리시 찾다보니 우리 한국어도 궁금해서 찾아봤다.

(사진출처 : 동아일보 2021.10.14일자,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 싱글리시.. 그걸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도 모르게 싱글리시가 툭~하고 튀어나온다면 싱가포르 생활 완벽 적응 중이란 의미일 거다.


제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째는 지금도 제주 방언을 들으면 무척 반가워하고 어릴 적 기억이지만 친구들과 많이 썼던 표현은 가끔 사용하고 있다.

"뭐하맨?" / "뭐랜?" / "밥 먹언?" / "기이?" / "무사 마씸?"/ "재기 재기 옵써"/ "하지 맙써"..

같은 표현들이랑,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제주서 감저는 감자가 아니라 고구마라는 거..

7살 기억이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거 보면.. 특유의 언어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싶다. 아이는 제주 방언으로도 제주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니 말이다.


주위에선 영어 배우러 와서 싱글리시만 배워 간다는 불만도 들리긴 한다. 그래서 국제학교로 보낸다는 분도 봤다. 그만큼 기대하는 유창한 영어 발음이 아니니..


나라에서 살고 있기에 경험할 수 있었알아갈 수 있었던 진짜 싱가포리언의 삶의 단면.. 아이들이 오래오래 추억할 재미난 에피소드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저 뽀러뻐스~ 처럼..

나중에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아이들은 싱글리시 이야기를 하며 이곳을 추억할지도.. 첫째의 제주방언처럼..





사진출처; dreamsti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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