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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세요. 다 잘 지내요..

by 서소시

집 앞 공원을 산책하다 활짝 핀 연꽃이 예뻐서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이걸 보면 제일 좋아할 사람이 생각나서..

보고 기분 좋으시라고 사진을 보냈다.


띠링~

잠시 뒤, 문자가 왔다.

"어디 좋은 곳 구경 간 거야? 너무 이쁘고 좋구나~"

"집 앞 공원이에요."

"집 앞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어?

밥은 잘 챙겨 먹지? 모두 건강하고? 우리 딸 이렇게 좋은 곳에 살고 있으니 엄마가 너무 좋구나.."


엄마다..

"운동도 하고 아름다운 풍경도 보고.. 자연이 아름다운 싱가포르니 많이 보고 건강하게 잘 지내렴. 사랑한다 우리 딸~ "


엄마 마음을 읽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워서.. 떠올리면 괜히 눈물 나는 이름, 엄마..

실은 정답이 없는 걱정거리가 있어서 마음 복잡한 아침이라..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어 나온 산책길이었다.


"네~ 걱정 마세요. 저흰 다 잘 지내요."

"공원이 예뻐서 사진 찍어 보낼게요. 엄마도 보면서 기분 전환하세요."


괜히 무거운 마음 들킬세라 공원을 걸으며 열심히 사진 찍어 보냈다.


"이런 공원이 가까이 있다니 얼마나 좋으니.. 자주 나와서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해. 멀리서 애들 챙기려면 네가 안 아프고 건강해야지."




매번 낯선 곳으로 옮겨 다니며 적응하고, 세 아이 키우느라 고생 많다며 안타까워하시는 엄마다.

가족과 떨어져 의지할 곳 없이 잘 모르는 곳에서, 처음부터 부딪혀가며 하나씩 적응해 나가느라 얼마나 힘드냐고 걱정해 주시는 마음..


제주도로.. 싱가포르로..

남들이 여행 가고픈 좋은 곳에서만 산다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는 말도 들어봤고, 뭔 복이 그리 많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맞는 말씀이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친한 친구도 넌 뭐든 쉬운 게 없고 힘들다고 하지만 사진만 보면 속없이 좋아 보인다 했다.


남이 보기엔 그럴 수 있지만, 어려운 일도 많은 게 사실이니.. 풍경 좋은 곳에 산다고 그 어려움이 희석되는 건 아니니..

다들 여행 가고 싶어 하는 곳에서 살고 있지만.. 여행이 아닌 그곳에서의 삶은 그리 쉽지 않았다.

관광지의 비싼 물가 말해 무엇할까.. 게다가 무엇이든 여기서 나는 게 아니면 다 바다 건너와야 하는 섬이지 않은가..


제주 살 땐 해마다 철마다 친척분들께 제주 귤, 한라봉, 천혜향.. 열심히 보내드렸다. 누가 보면 제주서 귤 농사짓는 줄.. 거기에 제주 은갈치, 옥돔, 제주 흑돼지도 보내드렸다. 나눠먹으면 좋지만 제주서 사면 싼가.. 바다 건너가니 택배비도 엄청 비쌌다. 오시는 분마다 가이드해 드리고.. 숙소며 맛집 포함된 여행 코스까지 짜 드려야 했다.


출산부터 아이들의 입학, 재롱잔치, 졸업 같이 커가는 순간순간도.. 우리네 그리운 명절도.. 누가 아파도.. 함께하지 못하는 외로움도 깊어갔다.

싱가포르에 와서는 아이들 학교도 쉽게 들어갈 수 없었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공부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 답답한 건 내 몫이었다.

낯선 곳에서 매번 멘땅에 헤딩하듯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아가고, 적응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은 보이지 않나 보다.


그 힘듦을 늘 헤아려주고 안타까워해 주시는 마음을 알기에..

더더욱 엄마가 들어서 속상하실 이야기는 속으로 삼키게 됐다.

'이거 보면 더 좋아하시겠다.'

괜히 더 열심히 찍어 또 보내본다..


"참 아름다운 곳이구나. 넓은 세상 많이 보고 신나고 즐겁게 살아가렴.. 너희가 그렇게 즐겁게 사는 걸 보는 게 엄마의 가장 큰 기쁨이야."

예쁜 풍경 속에 있는 딸이 행복하길 바라시는 마음 잘 알기에.. 더 열심히 걷고 찍고 또 찍었다.

엄마랑 같이 손잡고 걷고 싶다.


언젠가 싱가포르에서 오래 살고 있는 지인분들과 서로의 눈물 버튼 엄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멀리 사는 딸이라 부모님이 갑자기 편찮으셔도 당장 달려가기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속상하다고..


그래서 다들 일부러 여행 다니고 즐겁게 지내는 사진을 자주 보낸다고 하셨다.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자주 바뀌는 카톡 사진도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걱정하실 엄마를 위한 거라고..


내 마음이 딱 그랬다. 이렇게 예쁜 곳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철없던 어린 시절.. 또 딸 낳았다는 이유로 시집살이 심하게 당하셨다는 이야길 듣고, 나중에 크면 비행기 태워 드리겠다고 큰소리쳤었다.

그런데.. 정말 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제주로 싱가포르로.. 비행기 타야 올 수 있는 곳에 살아 비행기 태워 드렸으니..


그런데..

엄마 마음도 나와 같은 마음이란 걸.. 안다.


전화할 때마다 건강하게 잘 있다 하시지만,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 힘들어하고 계신다는 걸 언니를 통해 알게 될 때가 많다.


두해 전 여름, 태풍 오던 날에.. 마트에 장 보러 가셨다가 빗길에 미끄러져 심하게 다친 것도 말씀 안 하셔서 나만 모르고 넘어갔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 넘어지며 머리를 부딪혀서 한동안 두통도 심하고 허리도 많이 아파 고생하셨단다. 그 일도 한참이 지난 뒤에야 말씀하셔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왜 태풍 온다는데 마트를 가셨어요? 다른 날 가지."

"이웃 할머니가 혼자 마트 가신다는데 어떻게 그냥 보내냐. 엄마가 운전해 준다고 같이 갔지."

이웃 할머니 도와주시려다 그리 됐다 하셨다.


속상하고 마음 답답한 일이 있어도 멀리서 듣고 걱정할까 봐.. 그 속상함을 다 전하지 않으셨다.

"다 괜찮다.. 우린 잘 지내. 네가 멀리서 힘들지.." 하시며 본인은 다 괜찮다 하신다.


멀리사는 자식은 엄마에게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나 보다.

엄마에게 내가.. 나에게 엄마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속 깊은 아픔은 삼키고 다 괜찮다~ 잘 지낸다~ 그러고 있나 보다.. 어쩌면 정말 괜찮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 엄마는 안 그러셨으면 좋겠다. 큰 도움 안될지라도, 힘들 때 힘들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이라도 속시원하게 하고 마음이라도 가벼울 수 있기를..


만약 내 딸들이 나와 똑같이 아픔을 홀로 삼킨다면.. 그 또한 많이 속상하고 마음 아플 거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처럼 할 테지만..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하지 않기를..

나는 되지만.. 엄마나 아이들은 다르기를...



꼭꼭 숨어 있어서 잘 안 보이지만, 누구나 저마다의 선물을 받고 태어났으니..

보물찾기 하듯이 찬찬히 잘 찾아보라고.. 잘 찾아서 내가 받은 선물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자는 울 엄마..


엄마 딸이라서 많이 감사합니다.

걸어오신 그 걸음 따라 걸으며.. 저도 그런 엄마이고 싶어요.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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