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아가리 파이터'로 전락하는 과정

Ⅳ.시비지심_ Revision_3. 언행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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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 박웅현의 강연에 참여한 적이 있다. 카피라이터로, 창의력 강사로 유명한 박웅현은 내가 닮고 싶은 사람 중 하나였다. 현역 시절, 회사 리브랜딩 과정에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도 있었고, 그의 책 [여덟단어]는 꽤 인상 깊게 읽은 책이기도 했다.


그의 그날 강연은 미리 준비한 강의를 하는 대신, 청중들의 질문을 받고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들으면 신선하지만 막상 돌아서면 대체로 잊어버리는 보통의 강연과는 다르게 인상 깊게 남는 부분이 있었다.


"저는 이제 책을 몸으로 읽으려 합니다."


몸으로 읽는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그가 밝힌 의미는 무의식적인 말과 행동의 불일치에 대한 일종의 자기반성이었다. 이전 책에서 새벽 5시에 기상해 수영을 하러 가는 즐거움을 그토록 찬탄하며 권유하듯 써놓고는, 언제부턴가 그 시간이 부담스럽고 싫어져 수영을 가지 않고 있더라는 고백. 결국 자신이 내뱉은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문득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이야기. 그리하여 말로 뱉은 것, 그리고 배워서 알게 된 것은 어떻게든 실천하는 삶으로 옮기겠다는 다짐이었다.


베스트셀러를 잇따라 출간하고 대중 강연을 하는 유명인조차 그런데 우리 같은 범인들은 오죽할까? 나 역시 수도 없었던 말과 행동의 불일치, 그 간극을 발견하고 못내 부끄러워졌더랬다. 알게 된 것을 그저 머릿속에만 담아두지 않는 일, 내뱉은 말은 어떻게든 행동으로 옮기는 일. 그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왜 세상에는 나 자신을 포함해 '아가리 파이터'가 그리 넘쳐 나는지 고개를 끄덕였던 하루. 더운 여름이었다.




사무실 현장에는 실없는 말을 반복하는 리더들이 적지 않다. 대체로 말이 많고, 잘 듣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의 대부분을 독점하다 보면 실언도 잦아진다. 무엇을 말했는지조차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은 낮다. 말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신뢰는 증발한다.


리더십 전문가 이창준은 "리더는 광장에 세워진 시계탑 같은 존재"라고 했다. 평상시 필드에서 자기 일을 하던 사람들이 수시로 쳐다보며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 기준으로 삼는 대상이라는 의미다. 묵직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가 때가 되면 적시에 신호를 보내는 그런 존재. 그런 의미에서 리더가 주는 메시지에는 시의적절, 간결 그리고 명확해야 한다.


고위직일수록, 인사제도와 관련된 임원일수록 그들은 더 높이 솟은 시계탑 같은 존재가 된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메시지화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한마디가 조직 내에 의미 있는 메시지로 일파만파 번지면서 '~카더라'가 되는 일은 얼마나 잦은가. 그 메시지가 적절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런 일이 반복될때 실없고 신뢰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들이 양산된다.


더 큰 문제는 고인물 리더들이 남들은 다 아는데 자기만 모르는 '맹점'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스스로 그런 상태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되면서 마침내 나락으로 떨어진다. 말과 행동의 괴리, 그 간극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균열로부터 회복하지도 못한 채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회사로부터 계약종료. 해고 통보를 받아 들고 절규한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모른다는 사실, 그 자체를 아는 것

박웅현처럼 '내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유명해지고 힘이 생기고 권한이 막강해질수록 혹시 라는 의심을 거두고 자기 확신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변에 온통 내 귀에 캔디 Yes맨만 득실거린다면 더 볼 것도 없다. 자기확신이 지나쳐 스스로를 온전해졌다고 믿게됐다면 '왜 변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느낄 리가 없다. 자연히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도 다른 세상이야기다. 어쩌면 내가 틀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 그 인식이야말로 진정한 변화를 위한 결정적 계기가 된다.


'더닝 크루거(Dunning-Kruger effect)' 현상은 너무 무지하고 무능력한 나머지 스스로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 즉 인지왜곡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몰라서 행복한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한 조직의 리더라면 '더닝 크루거 현상'을 늘 경계해야 한다. 인간은 불확실한 존재다. 언제든 틀릴 수 있고 실수가 있을 수 있다. 특히 혼자가 아닌 조직을 이끄는 자리에 올라 있다면, 똑똑하고 모든 것을 다 안다는(안다고 자부하는)자만심은 언제든 빠질 수 있는 달콤한 유혹이다.


자신의 언행을 제3자의 시선에서 돌아보고 타인 특히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편견없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리더의 말과 행동은 그 자체로 메시지다

확신할 수 없다면 말을 아껴라. 선명한 미래 방향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켜보고 타인의 의견을 듣고 내가 뱉은 말을 행동에 옮길 수 있을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야 한다. 일이 벌어진 후 '지나가는 말', '그냥 한말', '농담 삼아 한말' 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자리가 주는 무게, 책임감을 결코 가벼이 여겨선 안된다. 리더의 자리에서는 말을 뱉는 순간 실행을 담보한 약속이 된다. 행동으로 옮길 때만 신뢰가 쌓인다.


신뢰는 한 장의 종이와 같다. 구겨진 순간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 힘들다. 어찌어찌 방법은 있겠지만 그럴 바엔 차라리 깨끗한 새 종이로 대체하는 게 백번 낫다. 저 사람은 '말과 행동이 달라'라는 인식이 생기는 순간 리더의 자격은 박탈이다.


현명한 리더는 내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인식하고 감각할줄 안다. 그리고 가능성을 행동 수정으로 연결할 줄 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게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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