錄 In _ 프롤로그
나는 겁쟁이다. 나이 50 가까이 먹고 세상이 점점 무서워진다. 뉴스를 봐도 영화, 드라마, 소설에도 온통 빌런 투성이다. 그냥 나처럼만 살면 싸울 일도 없고 누가 누구를 상처 줄 일도 없고 별 탈 없이 잘 살 텐데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다.
17년, 기업에서 인사, 조직문화 업무만을 담당했다. 퇴사 후에도 조직과 사람을 연구하고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그룹 공채를 담당하며 수천 명을 면접했다. 조직문화 업무를 하며 사람, 겪을 만큼 겪어봤다.
그 끝에 ‘알면 알수록 모르겠는 게 사람’이라는 진리 하나는 확실히 얻었다.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 어디에나 이상한 인간들이 하나씩은 있는데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으면 혹시 내가 아닐까? 생각해 보라는 우스개가 마냥 우습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 말은 전적으로 틀렸다. 진짜 빌런은 ‘내가 이상한 거 아닐까?’라는 생각 그 자체를 못하기 때문이다.
빌런이란 말은 영화, 드라마 등 창작물에서 많이 쓰이고 또 유명해졌다. 말 그대로 악당이다. 악당은 히어로물이든 오피스물이든 로맨스물이든 긴장감을 유발하고 주인공의 각성을 촉발하는 필수 캐릭터지만 일상에서는 달갑지 않은 존재다. 그들이 끼치는 해악 또한 소소한 괴롭힘부터 강도, 살인, 전쟁에 이르기까지 폭도 넓다.
정말 이들 때문에 세상은 날이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을까? 인간은 원래 악한 본성으로 태어나는 걸까? 그래서 악의 총량은 늘어갈 수밖에 없는 걸까? 솔직히 나는 이들이 무섭다.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로 인식된 건 아닐까? 두렵다. 그래서 제대로 알아보기로 했다. 17년 사람 관련 일을 했던 경험과 퇴사 후 5년간 조직과 사람을 탐구하며 깨달은 나름의 통찰을 바탕으로 ‘빌런’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악당, 빌런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정말 괴로운 존재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냥 스타일이 안 맞아 티격태격하는 정도로 보일 수도 있고,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나쁜 인간이지만 가면을 써서 본심을 숨긴 채 착한 척하는 빌런도 얼마든지 있다.
전자라면 노력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다. 서로를 알아간다거나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저절로 좋아지는 일도 많다. 그래도 싫다면 다시 안 보면 그만이다. 단순히 상하관계 혹은 어려운 공적관계에서 생기는 삐걱거림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이들은 그저 합이 안 맞을 뿐 서로 진정한 의미에서 빌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라면 문제가 다르다. 단순히 나와 스타일, 성격 따위가 맞고 안맞고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생활 전체를 뒤흔들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진짜 나쁜 인간에 엮인다면 몸도 마음도 탈탈 털리는 건 시간문제다.
나는 빌런을 ‘색(色)’ ‘도(刀)’ ‘선(線)’ 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볼까 한다.
색은 다양성이다. 스펙트럼이다. 인간은 저마다 각자의 색을 타고 태어난다. 누구도 서로 같을 수 없으며 각자의 개성과 본성으로 살아간다.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는 마음이야 말로 빌런의 시작이다.
도는 의도성이다. 지성과 셈법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의도가 있다. 문제는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의도를 마치 칼처럼 휘두를 때 생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를 추종하며 타인을 도구화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이때 누군가는 반드시 피를 보게 되어 있다.
선은 인간성이다. 양심과 규율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으려는 의지다. 양심은 ‘타인에 대한 애착에서 오는 책임감과 의무감’이다. 양심이 결여된 존재는 오직 자기밖에 모른다. 이들은 언제든 선을 넘을 자세가 되어 있다. 타인이 완벽히 배제될 때 파괴적 빌런은 비로소 완성된다.
이들은 사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다.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사람은 악하게 태어난다. 나는 성선설도 믿는다. 사람은 선하게 태어난다. 애초에 악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선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다행인 건 성악설이 소수라는 점이다. 앞서 소개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존재를 빌런이라고 본다면 확률적으로 그들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양심이 결여된 존재, 반사회성을 띈 잠재적 범죄자, 소시오패스는 그 숫자가 공식적으로 나와있다. 이 분야 권위자 마사 스타우트에 따르면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소시오패스의 비율이 인구 통계학상 약 4% 정도라고 주장한다. 대체적으로 5~10% 수준으로 본다.
그러니 주변 사람 모두를 혹시 나에게 해를 끼치는 빌런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아니 그러지 말아야 한다. 늦은 시간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탄 남자가 이상한 짓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 애초에 악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크고, CCTV도 있다.
TV, 영화, 드라마에서 보는 사건사고는 충격적이지만 지극히 드문 일이라 화제가 될 뿐이다. 그래서 뉴스 News다. 괜한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선 사회 전체가 피곤해질 뿐이다. 불특정 다수 모두를 경계하다간 우리 모두 미어캣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조심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대다수는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전제될 때 혹 내 주변에 있을지 모를 빌런, 악당, 소시오패스를 선별적으로 알아보고 경계할 여유가 생긴다. 관심을 조금만 기울이면 이상한 사람은 이상한 티가 나게 되어 있다. 선을 넘는 악은 진부하고 클리셰로 읽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그런 존재로 각인될 염려도 있다. 워낙 못 믿을 세상, 뒤숭숭한 세상, 험악한 세상이라는 인식이 확산될수록 멀쩡한 사람이 빌런으로 둔갑되는 일도 잦다. 내가 빌런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혹은 내가 누군가에 빌런으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빌런에 대해 심도 있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제대로 알면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상식적이고 선을 지키려는 평범한 우리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다행이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