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측은지심(仁)_Overall
장면1.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마 부장은 검지손가락으로 신입사원의 머리를 쿡쿡 찌르며 말한다.
"지금 니가 하고 있는 게 뭔지 아냐? 사업놀이야 사업놀이!"
장면2.
"왜 반나절이나 시간을 끌어?"
"좀..마음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오랫동안 공들인 건인데..."
마 부장은 정 과장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 치며 말한다
"너 이 새끼, 언제부터 이렇게 감성적으로 굴었어? 여자하나 들어왔다고 이렇게 말랑하게 굴 거야?"
장면3.
"니네 일루 와!"
"부장님, 일단 저희 회사는..."
"뭐?뭐?뭐?"
마 부장은 해명을 듣지도 않고 전화기로 팀원들의 가슴팍을 쿡쿡 찌르며 성질을 낸다
드라마 속 과장이라기엔 영상에 달린 무수한 댓글들이 심상찮다.
"와~연기자가 아니라 진짜 부장님을 데려다 놓은 줄 알았어요."
"우리 회사 김XX이랑 똑같네..."
"너무 현실적이라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요~"
반면,
"회사라면 종종 있는 해프닝 정도인데 그게 뭐?"
"상사의 쓴소리 정도야 일상 아닌가?"
"마 부장의 말도 틀린 건 없어. 일을 제대로 알고 해야지."
대수롭지 않다거나 오히려 팀원들의 잘못이라는 반응들도 꽤 된다.
우리의 진짜 현실은 어떨까?
"열라 갈궈도 실적 나오는 일 잘 따오는 상사가 좋은 거야."
"아 그럼 자기도 좋고 나도 좋고 같이 승진하고 인센티브 나오고, 그러니까 결국 욕해도 사람들은 그런 상사를 원한다니까."
회사의 실무중추인 대리급들의 이야기다. 분하지만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기 힘들다. 적어도 회사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성과가 우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땐 할 말을 잃고 만다. '회사는 동호회가 아니고 자기계발하는 데가 아니!'라는 고인물 상사의 버럭질이 여전히 통하는 이유.
그렇다고 진전이 없는 건 아니다. 2019년부터 시행된 근로기준법 제76조 2항에 따르면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라고 명시하고 위반한 경우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해석의 범위다. 대체 업무상 적정범위란 어디까지인지? 정신적 고통은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등등 일반 구성원이 회사의 높은 분들을 상대로 '나 괴롭힘 당했어요' 라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물론 법적 투쟁으로까지 치닫는 극단적인 직장인 괴롭힘은 아직까지 소수에 그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란 말이 있듯이 대다수의 평범한 직장인들은 직장생활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겪지만 대체로 상식과 상호존중이라는 범위 안에서 충분히 조율될 수 있고 그렇게 해왔다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일터는 여전히 전쟁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선을 넘을 듯 말듯한 인격모독, 인신공격, 막말, 갑질등이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은 상태로 잠재적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존재한다.
전략, 전술, 매니저, 당근과 채찍 등 전쟁에서 기인한 용어들이 즐비하고, 열라 갈궈도 일 잘 따오는 상사가 좋다는 둥, 일을 못하면 상사로부터 저런 취급을 당해도 할 말 없다는 둥 체념성 동의가 만연한 현실이 그렇다.
'이성지능'이라는 종교
왜 이렇게 됐을까? 그건 우리 사회 전반에 마치 종교처럼 퍼진 하나의 믿음이 저변에 깔렸기 때문이다. 바로 '이성지능 중심사고'다. '머리 좋은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빗나간 엘리트주의.
학창 시절부터 살펴보자.
우리 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한 '국영수' 중심의 교육에 특화되어 있다. 정해진 정답을 달달 외워 빠른 시간에 풀어내는 '기예'에 가깝다. 학생들은 일어나 잠들 때까지 학교와 학원에서 끝없는 '국영수' 주입식 교육에 시달린다. 그 시간이 무려 12년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는 '인간의 지능은 총 8가지로 구성된다'는 '다중지능'이론을 주장했다.
다중지능 이론에 따르면 언어, 논리수학 두 가지 지능은 IQ(Intelligenct Quotient)로 분류될 수 있다. 학교의 커리큘럼으로 보면 말 그대로 국영수(과)다. 신체지능-체육, 공간지능-미술, 소리지능-음악 예체능도 아우른다. 나머지 세 지능 중 인간친화, 자기성찰 두 가지 지능은 EQ(Emotional Quotient)로 분류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학교에서 중점적으로 배우는 건 국영수(과) 중심의 IQ, 선택적으로 예체능이 전부인 셈이다. (입시경쟁이 이렇게 치열하지 않았던) 과거라면 운동장에서 뛰어놀며 친구들과의 협력, 희생 따위 EQ지능을 자연스레 익혔겠지만 오직 성적만이 전부인 입시지옥에서 EQ를 따로 익힐 기회와 장소, 시간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런 세태는 대학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바로 취업 때문이다. 초중고의 입시지옥보다 덜하긴 하지만 대학이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학원으로 변질된 지 오래라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애초에 타인에 대한 공감, 협력, 희생 등 EQ영역보다 극한 경쟁 속에 IQ 검증에만 열을 올렸던 이들이 대학에 들어가 갑자기 인류애를 발휘할 계기도 이유도 사실상 없는 것이 현실이다.
회사는 전쟁터, 밖은 지옥
대학을 졸업하고 바늘구멍 같은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면 그걸로 끝일까? 아니, 극한 경쟁은 사실상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죽하면 '회사는 전쟁터,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을까?
나는 그 말이 싫다. 20대 중후반부터 50대 중후반까지 인생의 황금기에 하루 8시간 이상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내 직장, 일터가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터라니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유치원부터 대학, 취업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극한 경쟁 속에서 타인은 동료, 친구가 아닌 그저 내가 밟고 일어서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살아왔다면, 어쩌면 '회사는 전쟁터'라는 끔찍한 전제를 이질감 없이 현실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적을 죽이기 위해 무기를 만지작 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서 묘사한 세 장면을 보고도 무덤덤하거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오히려 모욕을 일삼는 부장보다 일을 잘못한 팀원들 탓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끔찍한 이유다.
새로운 질문이 필요할 때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 특히 3년간의 팬데믹을 겪고 인간의 이성지능(IQ)을 아득히 뛰어넘는 AI가 등장한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했다. 과거처럼 인간을 도구화, 부품화하여 무조건적인 생산성만을 좇던 시대는 저문 지 오래다.
이제 소비자들은 단순히 성능 좋은 제품을 넘어, 기업의 철학, 가치관에 공감하고 열광하는 '가치 소비'에 눈떴다. 발전된 기술이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할 시대적 사명 앞에 놓였다. 창의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야 하는 본질적 변화 앞에 직면했다. 이처럼 개개인의 세밀한 취향과 니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결국,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다시 인간으로의 회귀, 즉 감성지능이다. 적어도 '이성 지능' 원툴이 아닌 '감성지능'까지 갖춘 균형 있는 인재, 리더를 원한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진정으로 소통하며,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
포심(4心) 리더십의 첫 번째 마음, 측은지심(仁)은 바로 이러한 본질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측은지심은 크게 건강한 자기애와 타인에 대한 공감, 연민으로 나뉜다. 이 시대 리더들이 첫번째로 갖춰야 할 측은지심 지금부터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