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측은지심_ Self Awareness_ 1. 자기객관화
'리더십엔 초대장이 없다'는 말이 있다.
리더란 타고나거나 특정 직책에 올라야만 되는 존재가 아닌,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 문장을 더 붙여서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는 없다'
고 말하고 싶다.
리더십의 본질적 정의는 '영향을 끼치는 사고와 행위'다. 그에 따르면 내 생각과 행동이 스스로에게 영향을 끼칠 때 셀프 리더십이 되고 타인으로 향할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리더십이 된다. 그 시작부터 나쁜 영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여며주는 첫 단추, 아무나가 아니게 만드는 최소한의 자격, 그게 바로 '자기객관화'다.
자기객관화는 자신의 생각, 감정, 기질, 행동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마치 타인을 보듯 스스로를 인식하여 장단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중요한 계기이자 밑거름이 된다. 수많은 리더들의 성장이 멈추고 고인물이 되는 결정적 이유. 비단 리더십뿐 아니라 살면서 맺는 모든 종류의 관계에 있어 시작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중요한 '자기객관화' 잘되고 있을까? 설마 내가 나를 잘 모를까 싶지만, 사실 만만한 문제는 아니다. 개인차는 물론 있겠지만 사회 전반의 자기객관화 수준이 높다고 보긴 어렵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자. 나는 누구인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뭘 할 때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는지 따위 내면을 살피고 그에 따라 무언가를 배우거나 대화하거나 적극적으로 실천했던 경험은 얼마나 될까? 그보다는 '대학입시'라는 목표를 두고 근면성실을 최고의 덕목으로 사회가 정해놓은 단 하나의 성공공식에 맞춰 앞만 보고 달려왔다. 서로 다른 적성과 기질, 취향에 따라 진짜 꿈을 꾸고 철저히 개인화된 과정과 방법으로 그 꿈에 다가가기보다는 오직 '좋은 대학 가기'라는 1차 관문을 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마치 경주마처럼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기가 당연시되고 그 관문을 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은 인생 낙오자로 사회적 낙인이 찍히곤 했다.
운 좋게 관문을 뛰어넘은 소수는 괜찮을까? 대학 입학과 동시에 이제는 취업이 문제다. 또다시 극한 경쟁이다. 대학의 낭만 따위는 간데없고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매년 더 나빠질 뿐인 취업난 역시 바늘구멍이기는 마찬가지다. 그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하면 이젠 정말 끝일까? 그럴 리가. 회사는 아예 생존을 위한 전쟁터다. 평가, 승진을 두고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살벌한 경쟁이 상시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다음은? 결혼, 육아, 내집마련...아...끝도 없다.
이 숨쉴틈 없는 레이스 속에서 나는 누구고 뭘 좋아하고 뭘 하면 행복한지 생각한다는 건 사치에 가깝다. 이거 정말 내가 바라는 진짜 꿈이 맞아?라는 의심이라도 들면 다행이다.
인간은 애초에 불완전한 존재다
소설가 박완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먹을수록 지난 시간을 공유한 가족이나 친구들과 과거를 더듬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같은 일에 대한 기억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 놀라면서 기억이라는 것도 결국 각자의 상상력일 따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 문구를 읽으며 아차! 싶었다. 과장해서 말하면 식은땀도 한 방울 흘렸다. 나는 어떨까? 내가 진실로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정말로 한치의 왜곡도 보탬도 또 뒤틀림도 없는 순수한 Fact 그 자체일까? 자신이 없어졌다. 글로 먹고사는 노련한 소설가도 자신의 기억이 온전히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고 경계하는 마당에 평범한 직장인일 뿐인 우리는 나 스스로를 어떻게 확신할까?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역시나 내게도 그런 일들이 분명 있었다. 아니 생각 외로 많았다. 학창 시절 친구와 함께 겪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먼 훗날 성인이 되어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서로의 기억이 너무 달라 놀랐던 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사실로 믿고 있던 어떤 정보가 알고 보니 A와 B가 교묘히 합쳐진 형태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일 등등, 내가 알고 있던 과거가 온전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평소 '나는 틀릴 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이 강한 편이라면, 그렇잖아도 시원찮았던 '자기객관화'에서 더 멀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보이는 게 달라진다
"이 팀장 말이야, 팀장 되더니 변했어. 그전엔 안 그랬는데."
직장생활 17년 차. 관리자급으로 승진을 하고 팀 하나를 맡으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핑계로, 더 급박한 문제들이 있다는 핑계로.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순간 문득 묻게 된다. 어? 나는 누구일까?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선뜻 답이 나오지 않자 점점 두려워진다. 내가 알던 예전의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싶어서. 아니 예전의 나도 누군였는 지 까마득할 뿐, 도통 떠오르지 않아서. 점점 좁은 성공의 사다리 위로 올라설수록 어쩌면 나 홀로 고립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따라온다.
주변 그 어디에서도 No라는 말이 들리지 않고 온통 Yes만 들려오는 순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의심이 들지 않는다면, 이거 큰일이다. 나라는 인간이 예수나 석가모니 같은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존재일리가 없지 않은가? 바로 그지점, 시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타인의 의견도 더 이상 묻지 않으면서 리더의 숙명 운운하며 자기합리화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흠. 아찔하다.
'높은 곳에 올라서면 보이는 것부터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권한과 책임이 동시에 주어지는 자리, 당연히 마음가짐부터 달라진다. 슬슬 회사와 경영진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자연히 시선은 윗사람 친화적이 된다. 직책을 받기 전 팀원들과도 곧잘 어울렸지만 더는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자리 자체가 내 지난 궤적의 성공을 증명해 주는 선명한 증거로 작동해 "나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어"라는 자아가 과대해지는 건 어쩌면 필연에 가깝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그 과정이 오롯이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거나 운이 따른 결과였음을 대차게 망각까지 해버리는 경우는 꽤나 잦다.
이제라도 내 스크립트로 살아라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반환점을 돌 때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레이스에 임해야 한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생은 길다. 백세시대에 4~50대의 나이는 고작 인생의 전환점에 불과하다. 이 시기의 직장인이라면 대체로 각자의 위치에서 리더의 역할(공식적인)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방식은 전적으로 타인이 만들어 놓은 정답, 사회적 대본(Social Script)에 의한 것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평가를 받고, 승진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 집을 갖는 일. 그 대본에 충실했으면 충실한대로 못 미쳤으면 못 미친 대로 의미는 분명 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론 무리다. 이제는 한 번쯤 멈춰서(Pause) 지금껏 미뤄뒀던 '나'를 진지하게 탐험해 볼 때가 됐다. 수십억 인류의 삶이 단 하나의 방식으로 정해져 있다면 그걸 누가 믿겠는가? 마찬가지로 5천만 대한민국 사람들의 꿈, 인생의 정답이 단 한 가지의 방식과 형태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누가 인정할 수 있을까?
멈춰 선 김에 남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대본(Social Script)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일, 의미 있는 일,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 나의 대본(My Script)을 진지하게 작성하고 그에 따라 인생후반전의 내 삶을, 진짜 리더로서의 직장생활을 새롭게 시작할 때가 됐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라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아무리 똑똑하고 스마트하고 이성적인 사람일지라도 과거에 경험한 모든 사건과 정보들을 100% 오차 없이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 아무리 어떤 조직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어도 혼자만의 역량이나 힘이었을 리 없다. 어떤 자리에서건 주변의, 타인의, 부하직원의 도움 없이 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입체화하기 힘들다. 혼자 날고뛰어봐야 1차원, 평면적 존재일 뿐이다.
자기과대화에 빠져 있고 주변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올라 회사와 구성원들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앞으로의 예정된 실패를 앞당길 뿐이다.
자기객관화를 하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 나 또한 인간이다.'
라는 진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나 또한 언제든 틀릴 수 있음을 알고 늘 경계하고 의심하는 것.
"무슨 말하는지 알겠고..."
"내가 다 해봤는데..."
"너 이 일 몇 년 했냐? 나 20년째야..."
이런 말들은 이제 접어두자. 어제, 오늘 100% 정답이었다고 내일도 정답일리 없다. 리더가 자리의 힘, 지금 당장 극복할 수 없는 물리적 경력차 따위를 부하직원들 앞에 무심코 내세우는 순간, 그 누구도 '아니'라고 입을 열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특히 '나는 절대로 틀릴 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본심에 깔고 있다면, 조직 내 침묵은 불 보듯 뻔하다. 용기를 내 제 의견을 밝히고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오히려 찍혀서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면 차라리 침묵을 선택하고 만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비겁함이 조직의 논리로 포장되어 굳건해지는 이유.
문제는 사건의 성격이다. 그저 사적인 일이라면 사소한 기억과 정보의 왜곡쯤은 해프닝으로 웃어넘길 수 있지만, 회사의 공적인 일에 그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어떨까? 중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위치에서 Fact와는 다른 잘못된 데이터나 주관적인 의견, 선입견 따위가 수시로 가미된다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가만있으면 중간이나 간다'는 마인드로 모두가 입을 다문다면? 그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아찔하긴 마찬가지다. 마치 도박을 하듯 매 순간 운에 맡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애초에 정확한 원인 자체를 찾을 수 없을 테니 과정을 통한 학습도 어렵다.
리더십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스펙이나 능력, 경력 그 자체보다 끝까지 자신을 의심하고 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점검하는 그 끈질김이라는 사실을, K상무는 몸소 증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