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측은지심_ Empathy_ 2. 감정이입
카카오카드가 이례적으로 성공한 이유는 면밀한 분석과 데이터, 숫자로 점철된 이성적 판단 때문이 아니라 "그저 예뻐서"였다.
"너 혹시 T야?"
언제부턴가 자신에게 공감 못하는 상대에게 이렇게 묻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술자리에서, 미팅자리에서, 하다못해 TV예능에서도 흔해졌다. 뜬금없는 MBTI열풍 때문인데, F는 감성적, T는 이성적 성향을 의미한다.
MBTI는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인사, 교육 담당자들에게는 익숙한 성격진단 Tool이다. 사람의 성격을 네 가지 축으로 나누고, 그 조합으로 16가지 유형을 분류한다. 네 가지 축이란 외향과 내향(E/I), 감각과 직관(S/N), 사고와 감정(T/F), 그리고 판단과 인식(J/P)이다. 문제는 MBTI가 공신력 있는 도구는 아니라는데 있다. 인간의 성격을 고정된 몇 가지 틀로 나누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I와 E가 번갈아 나올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P에서 J로 바뀌기도 한다. 한마디로 유사과학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MBTI열풍을 꽤나 의미 있게 지켜본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성향에 대해 요즘처럼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싶어서다. 모두 알면서도 오랜 시간 외면해 온 '타인과 함께 더불어 잘 사는 법' 직장에서는 '인간답게 일하는 법'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답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팀장님 혹시 T세요?"
자신의 의견을 탐탁지 않아 하는 40대 팀장에게 T냐고 묻는 20대 신입사원을 상상한다. 지극히 이성적이고 스마트한 엘리트로 알려진 팀장은 당황하며 어버버 댄다. 경직된 팀의 분위기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 팀장과 고인물들은 "하~요즘 애들 참" 혀를 차며 조직 내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한탄할까? 아니면 진지하게 '나는 정말 공감을 못하는 사람인가?'라는 자아 성찰에 들어갈까?
최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수평적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수의 레거시 기업들은 여전히 규율과 질서, 체계 안에서 돌아간다. 개인보다는 조직 전체를 중시하고 과거 급격한 양적 성장 시대에서 미덕이었던 근면성실, 일사불란, 극도의 효율성에 대한 향수를 그대로 간직한 리더들이 다수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회사와 일, 그 자체를 보는 시각은 꽤나 비인간적이다. '회사는 전쟁터,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당연한 듯 통용되고, '회사는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곳'이라는 체념이 팽배하다.
팬데믹과 AI등장 이전이라면 그럭저럭 통용되는 일이었다. 빠른 성장을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논리에 수긍했다. 약자들의 목소리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능력주의 라는 거대 담론 속에 묻히고 외면받았다. 배려, 공감, 위로 등 인간적 가치는 속도전과 극도의 효율성, 생산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한가한 소리'로 치부됐다. 그 사이 공감능력은 제로에 가깝지만 이성지능은 뛰어난 냉혈한들이 성과, 숫자, 눈에 보이는 지표를 내세워 승승장구 주류가 되면서 회사 내 갑질, 인격모독, 집단 따돌림 등 비인간적 문제들은 빈번해졌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일해야 할까? 전체를 위해 희생되는 소수의 피해자 그룹에 내가 들어갈 가능성은 없을까?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전체를 위해 감수하라는 사회적 강요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는 못하겠다. '나만 아니면'이 아니라 '남도 아니어야'한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될 수 없다(What cannot be measured cannot be managed)"
직장인이라면 한 두 번씩은 들어봤을 이 말은 피터 드러커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경영자들이 이 명언을 토대로 숫자와 데이터에 기반한 이성중심 경영을 강조해 왔다. 스스로 인간성은 별로지만, 머리회전은 뛰어난 스마트한 엘리트라고 소개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필요하면 피도 눈물도 없이 오직 결과만을 위한 냉정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능력 있는 경영자라는 믿음에 일조했다. 그 결과 오늘날 경영현장에서 성취감, 행복, 존중, 배려, 자아실현 등 숫자와 데이터로 측정하기 힘든 인간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등한시되어왔다.
그런데, 이 금과옥조 같은 명언이 피터 드러커의 것이 아니라면? 문장 자체도 정확히 그 반대의 주장을 위해 인용된 것일 뿐이라면 어떨까?
"It is wrong to suppose that if you can't measure it, you can't manage it – a costly myth.(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이런 신화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왔다)"
이 말의 주인공은 에드워드 데밍(Edward Deming)이다. 그는 통계학자이자 경영 컨설턴트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제조업 부흥을 이끈 품질경영(Quality Management)의 아버지로 불린다. ‘총체적 품질경영(TQM, Total Quality Management)’의 개념을 정립했고, 수치로 잡히지 않는 ‘사람의 동기와 조직문화’가 오히려 지속 가능한 성과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피터 드러커가 그런 말을 정확히 했건 안 했건, 그는 성과 측정을 위한 지표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사람이다. 반면 에드워드 데밍은 그 반대편에 있던 사람이다. 누구의 말이 맞는가? 를 따르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 적어도 모든 경영자나 학자가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될 수 없다"라는 말을 절대 진리처럼 여긴다거나 그에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나 역시 데밍의 입장에 더 가깝다.
'스마트’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칭찬의 수식어였다. 빠르게 계산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는 엘리트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문제는 이런 스마트함이 지능의 또 다른 한축인 감성지능과는 연계성이 없거나 아예 반대급부에 가깝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지나치게 IQ가 높으면 공감능력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문제는 기업 현장이 결코 숫자와 데이터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부의 고객은 물론 내부 구성원들도 숫자와 데이터로 점철된 회사의 목소리를 좀처럼 듣지 않는다. 이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스펙이나 기능을 나열한 그래프와 도식이 아니라 자신들의 니즈와 욕망을 담은 서사와 스토리다.
더구나 '가치소비'가 대세가 된 시대에 더 이상 기업이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기능이나 이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기업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 어떤 이상향을 제시하는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자신의 그것과 결이 맞는 기업에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한마디로 찐팬이 된다. 구성원들 역시 기업의 이름이나 연봉, 복지 제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언제 성취감을 느끼는지,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는 있는지, 무엇이 내 몰입을 방해받고, 또 마음을 무너지는 게 하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마음을 열고 세심히 귀 기울여 주는 회사, 리더를 따라가고 싶어 한다.
카카오카드가 업계의 예상을 뒤엎고 이례적으로 성공한 이유는 면밀한 분석과 데이터, 숫자로 점철된 이성적 판단 때문이 아니라 "그저 예뻐서"였다.
Soft on People, Hard on Work
나는 오래전부터 일과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을 이렇게 정리해 왔다. 이성중심 경직된 리더십에서 벗어나려면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건 이성과 감성지능의 균형이다. 부하직원이 좌절했을 때는 감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어주되 한편으로는 왜 일이 어그러졌는지 냉정하게 원인을 짚어주는 양면을 유연하게 발휘해야 한다.
이성과 감성을 오가며 균형을 잡는 능력인데, 사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특히 전형적인 이성중심 엘리트주의에 익숙해진 직장인이라면 직급을 막론하고 인간적 면모는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우선 이런 믿음부터 깨부숴야 한다. 인간적인 리더는 절대로 약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강하다.
"측정할 수 없는 건 관리될 수 없다"라는 피터 드러커의 확인되지 않은 말, 그에 따라 형성된 이성중심 사고방식에서 슬쩍 벗어나 "그런 신화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왔다"라는 에드워드 데밍의 말에도 관심을 기울여보자. 사람을 대할 땐 부드럽게, 일할 때는 단단하게 공과 사를 잘 구분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절제의 목적은 억압이 아닌 균형"
이라고 했다.
지나친 감정이입도 금물이다. 상대의 부정적 감정에 온 마음을 다해 공감하면 나 자신도 쉽게 지친다. 그런 공감은 오래갈 수 없다. 상대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은 하되, 적당한 거리감을 두어 균형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
감정의 해상도를 높여야 한다
공감은 단순히 “네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마음, 즉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진정한 의미의 감정이입이 가능해지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부정적인 감정을 단지 '짜증 난다'는 표현으로 뭉뚱그리면, 자기 자신도 왜 짜증이 났는지 종내엔 알 수 없게 된다. 그저 부정적인 감정만 남고 디테일은 사라져 버린다.
화가 났다면 원인을 파악해 사과해야 하고, 서운했다면 사정을 설명해 그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 두렵다면 곁에 머물러 안심시켜줘야 한다. 디테일을 모르면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 감정은 지문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내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과거 경험과 연결되면서 새롭게 구성된다. 경험의 빈도와 강도, 그리고 성찰 과정을 통해 이름 붙일 수 있는 감정의 종류가 늘어나면 감정의 해상도가 높아진다. 부정과 긍정, 불쾌와 유쾌라는 흑백 TV에서 총천연색 UHD TV를 보는 것 같은 디테일이 생긴다.
이런 감정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선 직간접적으로 타인의 입장과 처지가 되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현실에서는 그럴 기회가 많지 않다. 대신 책,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같은 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삶과 감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만화, 애니메이션을 추천한다. 애들이나 보는 '질 낮은' 콘텐츠라며 배척해 왔다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고쳐 먹어라. '동심'은 상상력과 공감능력의 보고다. 이런 경험이 리더의 감정의 해상도를 높이는 좋은 자원이 된다.
가끔은 망가져도 괜찮다
세상이 완벽한 인간은 없다. 나 역시 그렇다. 누구나 다 그 사실을 아는데, 홀로 내 부족한 면을 가리겠다고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일만큼 피곤한 것도 없다. 물론 때에 따라 적절히 가면을 쓸 수도 있어야 하지만,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전부를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완벽한 리더, 오점 없는 리더가 되겠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라. 리더로서 그 마음가짐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도 처음부터 완벽하면 독자들이 금세 흥미를 잃는다. 부족한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차츰 완성형으로 간다는 성장 서사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비집고 들어갈 구멍이 보여야 인간적으로 보인다. 때로는 약한 모습도 보이고 취약점도 슬쩍슬쩍 드러내라.
완벽해지고 싶어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가면을 적어도 퇴근 후에는 벗어라. 팀원들과 회식 자리를 갖고(물론 자발적으로) 개인적인 고민, 개인사도 털어놓고 팀장으로서 리더로서 나 역시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한 한 사람의 직장일 뿐이라는 속내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약점 잡힐까 두려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괜찮다. 한 사람의 평판은 단기간에 한 두번의 이벤트로 생기는 게 아니다. 떳떳하게 살아왔다면 가끔 스스로를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유대감은 그 빈구석에서 비로소 싹튼다.
Soft on People, Hard on Work란 결국, 공감의 힘으로 사람을 살리고 동시에 일을 완성하는 균형의 리더십이다.